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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독재 부순 힘으로 자본 독재에 맞서다

당할 수 없는 상대니 나서지 말자는 신부도 있었다. 민주화운동 선후배들까지 삼성의 입이 되어 사제단 앞에 섰다. 현직 최고위급 관료도 삼성의 뜻을 전하려고 신부들을 찾아왔다. 그러나 사제단은 ‘삼성 비리 의혹’을 세상에 알렸다.
지난 10월29일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삼성 문제’로 기자회견을 하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
1987년 5월18일 오후 6시30분, 서울 명동성당에서 광주 민주항쟁을 기리는 미사가 열렸다. 미사 말미에 김승훈 신부가 조용히 단상에 올랐다. 그러고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라는 성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김 신부의 목소리는 떨렸고, 신자들은 숨이 멎는 듯했다. 전날 김 신부는 함세웅 신부로부터 성명을 발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두 사제 모두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구속은 피할 수 없었다. 모두가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했다. 오직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등포교도소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는 내용을 들은 이부영(전 국회의원)은 민주화 운동 동지인 김정남(전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김정남 전 수석은 “이부영의 편지를 종합해 문서를 만들어 친한 야당 의원에게 갔더니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외면했다”라고 말했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었다. 김정남 전 수석은 마지막 기대를 사제단에 걸었다. 사제단은 민주화 운동 진영의 보호막이었고, 버팀목이었다. 

“사제단은 이 시대 양심이자 도덕성의 보루”

김 전 수석은 천주교 서울교구 홍보국장을 맡고 있던 함세웅 신부에게 편지를 썼다. 함 신부는 1976년 윤보선·김대중·함석헌 등과 함께 3·1민주구국 선언을 발표하는 등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었다. 함 신부는 망설임 없이 사제단의 성명을 준비했다. 김 전 수석은 김수환 추기경에게도 편지를 썼지만, 추기경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워했다.

수십 차례의 회의와 모의 끝에 사제단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흘 만에 정구영 서울지검장은 고문살인범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재수사를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했다는 책임을 물어, 노신영 총리와 내무·법무 장관, 검찰총장, 치안본부장이 경질됐다. 사제단의 성명은 6월 항쟁의 결정적 도화선이 됐고,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경찰의 몰락을 가져왔다. 사제단 고문 황상근 신부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도덕의 힘이, 정의가 불의를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고,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라고 말했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를 발동해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마저 봉쇄했다. 그런데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였다는 이유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는다. 사제들이 전국 각 교구를 순회하며 기도회를 열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됐다. 당시만 해도 가톨릭은 박정희 정권의 폭압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독재 정권과 결탁한 주교들은 사제단의 활동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민청학련 사건을 시작으로 인혁당 사건, 3·1명동사건, 오원춘씨 사건, 최종길 교수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부산 미국 문화원 사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문규현 신부·임수경 방북 사건…. 사제단은 온몸을 던져 독재 정권에 저항했다. 거리에서,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형무소에서 가장 약한 자의 편에 서서 가파른 절벽 길을 피하지 않고 걸어왔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사학과)는 “사제단은 이 시대 양심이자 도덕성의 보루였다. 양심과 정의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라고 말했다.


1987년 1월26일 명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100여 명이 박종철군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위).지난 10월18일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50)가 사제단을 찾았다. 김 변호사는 사제단을 찾기 전에 여러 시민 단체와 언론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삼성과 싸울 수 없다고 했다. 

사제단의 고민도 컸다. 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는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을 듣고 기도했다. “삼성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비참하게 쫓겨나면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했던 성서 구절을 떠올렸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감수해야 한다며 ‘하나님, 제발 꾀돌이 아히도벨의 꾀를 뒤엎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돈과 권력으로 은폐 조작하는 삼성의 불의의 꾀를 엎어주십시오’ ‘정말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함세웅 신부는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을 발표하며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고 발표할 때의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뜻밖의 사건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그리고 우리 사제들에게 새로운 은총의 기회를 주셨다. 그 기회를 제때 포착하지 못하면 신앙인이나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래서 결단하게 되었다.”

삼성과 검찰 꾸짖을 단체는 사제단뿐

함세웅 신부는 20년 전 동지인 김정남 전 수석과 이부영 전 의원을 불러 상의했다. 둘은 조심스러웠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이니 나서지 말자는 사제단 신부도 적지 않았다. 기자회견 직전까지도 회견을 막아야 한다는 신부가 있었다. 더구나 사제단에 손을 뻗치는 삼성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사제단에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을 보고 신부들은 적지 않게 놀랐다. 신자들은 물론 민주화 운동의 선후배와 정부 고위 관료들까지 나서 삼성의 입이 됐다. 똑같은 말을 했다. “지금까지 지켜온 사제단의 명성에 흙탕물을 튀길 것이다.” 심지어 현직 최고위급 관료도 삼성의 뜻을 전하러 찾아왔다.


운데 선 이들 중 오른쪽이 함세웅 신부.하지만 사제단이 아니면 삼성과 검찰의 오만을 꾸짖을 단체가 없다는 데 동의했다. 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는 “삼성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는 단체가 없었다. 삼성이 신부들의 뒤를 캐거나 약한 신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감안했다. 중요한 건 사제 정신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20년 만에 사제단이 나섰다. 나서야만 했다. 그래서 지난 10월29일 사제단은 ‘삼성그룹과 검찰은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사제단 김영식 신부는 “이 사회를 어지럽히는 삼성과 검찰 문제는 지금까지 싸웠던 그 어떤 문제보다 더 어렵고, 힘들고, 중요하다. 삼성의 고백과 검찰 수사를 위해,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 성직자의 길을 걸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제단 대표를 맡고 있는 전종훈 신부는 “20년 전 독재 정권에 맞섰던 사제단이 이제는 경제 민주주의와 경제 정의를 위해 나섰다. ‘자본 독재’에 맞서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전 신부는 “사제단이 사라지면 이 시대에 기댈 곳이 없어진다. 진실이기에 이길 수 있다는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결코 지면 안 되는 싸움에 나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제단은 돈 가진 자들이 오만하지 않고, 검사들이 돈 가진 사람에게 비굴하지 않고, 국민이 돈 중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묵묵히 걸어갈 것이라고 한다. 임시 총회와 운영위원회가 열리고, 전 교회의 동참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사제단의 행동에 대해 삼성 고위 관계자는 “민주화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유신 시대에 등불이 된 분들이 왜 기업 일에, 그것도 한 개인의 하소연을 가지고 나서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 10월26일 각 언론사 산업부장들은 전 MBC 앵커 이인용 전무의 주도로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을 견학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몇 안되는 독립언론과 종교인의 양심 이외엔 모두 돈에 노예가 되어버렸나. 부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길… 사제단에게 존경을…. 

[베일 벗는 BBK 의혹] 이명박 ‘전 BBK 회장’이시지요?

1999년 설립부터 재재반박까지… 명함・정관・하나은행 계약서 등 증거 나와, 앞으로 자금 흐름 밝혀져야

▣ 특별취재팀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국회 국정감사를 계기로 다시 불붙고 있는 ‘BBK 사건’ 의혹은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 같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한 이 의혹 드라마에는 김경준(한때 이명박 후보의 동업자・미국 LA 구치소 수감), 에리카 김(김경준의 누나로 이명박과 친분 관계), 김백준(이명박 측근), 이상은(이명박 큰형), 김재정(이명박 처남), 이진영(이명박 비서 출신) 등 숱한 주・조연급 인물들이 등장한다.

△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BBK투자자문의 관계를 보여주는 정황증거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올 7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이 후보.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주가조작에 동원된 LKe뱅크, BBK 계좌

일반인들에겐 낯선 사이버 금융회사와 역외펀드, 페이퍼컴퍼니 따위가 거론되는 것은 드라마의 복잡성을 더한다. 유력 대선 후보와 연관된 사안이라 금방 ‘정치적 쟁점’으로 불거지고, 잇단 의혹 제기와 반박에 이은 재반박, 재재반박이 꼬리를 문다. 확인된 사실과 미확인된 주장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사실과 주장을 가려내기 쉽지 않은 혼돈지경이다.

정치적 공방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을 건조하게 재구성하면 대략 이렇다.

‘미국 국적자인 김경준은 1999년 4월 BBK투자자문(주)을 설립해 그해 11월 금융감독원에 투자자문업으로 등록한다. 투자자문업 등록에 즈음해 개설한 2개의 역외펀드 MAF(Plc・공개주식회사), MAF(Ltd・유한회사)에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 645억원을 끌어들였다. 실적은 그리 좋지 못했던지 투자 유치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고 BBK투자자문은 문서 위・변조로 투자자문업 등록을 취소당한다.

고전하던 김경준은 2001년 4월 2개 역외펀드의 자금 일부로 국내 창업투자 회사인 뉴비전캐피탈(주)을 인수한 뒤 상호를 (주)옵셔널벤처스코리아로 바꾸고 대표로 취임했다.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코리아가 외국인들의 투자를 받았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400%까지 끌어올렸다는 혐의로 2002년 4월 금감원에 의해 검찰에 고발당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소액투자자 5200여 명이 600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김경준은 그에 앞서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도피 과정에서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자금 384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혐의에 대해 김경준은 이명박 후보가 주도한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으며, 이 후보 쪽은 김경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이 후보가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에 관여돼 있느냐 없느냐이다. 이 논란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주가조작이 이뤄진 시기(2000년 12월~2002년 1월)에 동원된 수십 개 계좌 가운데 한 줄기는 ‘BBK 계좌’, 또 하나의 줄기는 ‘LKe뱅크 계좌’이다. LKe뱅크 계좌를 통한 주가조작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복잡하다. 이명박 후보 쪽에서 주가조작은 김경준의 단독 범행이며 이 후보는 몰랐다고 주장할 뿐, LKe뱅크의 공동 대표였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 회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사실을 대표이사 회장이던 그가 몰랐을 리 없다는,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온전히 떨치지 못하는 배경이다. 이 대목은 <한겨레21> 668호(2007년 7월17일치)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 국회 정무위 소속 정봉주 의원이 10월28일 하나은행 쪽의 공식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이명박 후보와 BBK의 관련성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창업 뒤 복귀 인터뷰

LKe뱅크와 달리 BBK투자자문을 둘러싸고는 이명박 후보와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는 기초사실 자체가 논란거리다. BBK는 조세회피 지역에 역외펀드인 MAF를 설립한 통로이다. 더욱이 미국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AM파파스’를 통한 돈세탁 고리로 이어진다는 의혹을 낳고 있어 관련성 자체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이 후보 처지에선, LKe뱅크와 맺은 관련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고약한 사안이다. 사실, BBK 사건을 둘러싼 공방의 핵심은 결국 이명박 후보와 BBK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었느냐는 점이다. 이명박 후보를 상대로 제기되는 새로운 의혹은 모두 BBK 관련성을 보여주는 물증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그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BBK와 이명박 후보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정황은 이미 많이 제시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대표이사 회장’과 ‘BBK투자자문’이 나란히 적혀 있는 명함과, BBK투자자문의 이명박 의결권을 명시한 정관이 남아 있으며, <한겨레21>을 비롯한 많은 언론매체에서 이를 확보하고 있다. BBK투자자문을 자매회사로 소개한 LKe뱅크 브로슈어(홍보 소책자)의 존재도 웬만큼 알려져 있다. 여기에도 이명박 후보는 대표이사 회장의 직함을 달고 김경준 대표이사 사장과 나란히 등장한다. LKe뱅크와 BBK투자자문을 창업해 증권사 대표로 복귀한 것으로 소개된 인터뷰 기사(<중앙일보> 2000년 10월16일치, <월간중앙> 2001년 3월호 등)도 여럿 있다.

이런 정황 증거들에 대해 이 후보 쪽은 부인으로 일관해왔다. 정관과 명함은 위조되거나 사용된 적이 없는 것이고, 언론 인터뷰 기사는 오보라고 주장해왔다. 브로슈어의 존재에 대해선 가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좀 다른 뉘앙스의 발언도 있어 아직 분명치 않다.

<한겨레>가 입수해 10월26일치에 보도한 MAF 펀드(Ltd) 소개 브로슈어는 이명박과 BBK투자자문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물증으로 여겨진다. 이는 <한겨레21>이 이미 보도한 ‘LKe뱅크코리아’의 브로슈어와는 다른 것이다. MAF 펀드를 독립된 회사로 소개한 이 브로슈어에 이명박은 회장으로 소개돼 있으며 김경준은 사장으로 올라 있다. 또 BBK투자자문은 ‘MAF 펀드의 관리・운용’을 맡는 구실로 돼 있다. 이 회장・김 사장은 MAF 펀드 브로슈어의 소개글에서 “MAF 펀드는 1999년 10월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시장위험 중립형 펀드로서 설립 이후 코스피(KOSPI) 지수를 59.86%포인트나 상회하는 수익을 올렸다”고 자랑하고 있다. 브로슈어 발간 시기는 MAF 펀드를 설립한 지 1년 뒤인 2000년 10월로 찍혀 있다. ‘이명박 회장’을 내건 펀드가 개설돼 1년 동안 시장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돈을 끌어들이고 있는 동안, 이명박 후보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정봉주 의원이 공개한 하나은행 자료에도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10월25일 브리핑에서 “(문제의 브로슈어는) 김경준의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서 e뱅크증권중개 및 LKe뱅크의 청산 작업에 돌입해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폐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폐기’의 사실 여부도 논란거리이거니와 폐기된 브로슈어라는 해명은 의도와 달리 허점을 남긴다. 거기에 실린 내용(이명박-김경준-BBK 관계, MAF 펀드 설립 사실 및 운영 실적을 담은)을 알고 있었고, 내용 자체를 부인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이는 이미 제시돼 있는 또 다른 ‘e뱅크코리아’ 브로슈어에 BBK투자자문을 자매회사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이명박 후보-BBK 및 MAF’의 밀접한 관계를 뒷받침하는 재료로 여겨진다.

물론, 이 후보와 BBK투자자문의 관계가 뚜렷하게 확정된다고 해도 이를 곧바로 ‘주가조작 관련’으로 몰아갈 수 없다. BBK투자자문과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 사이의 관계는, BBK의 계좌가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에 동원된 것뿐이며 이 후보와 주가조작 관계를 곧바로 증명하는 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언론 보도와 통합신당 쪽의 의혹 제기는 한 차원 높은 쪽으로 진전됐다기보다 BBK와 이 후보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정황을 좀더 풍성하고 세밀하게 만드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은 논란의 ‘질적 도약’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변화는 있다. 이 후보와 BBK의 관계를 보여주는 정황증거가, (이 후보와 이해충돌을 빚고 있는) 김경준의 발언 같은 이 후보 쪽의 반박에 취약한 근거가 아니라 이 후보 쪽에서 나온 진술이나 문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후보의 법률대리인인 김백준씨가 올해 4월 김경준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제출한 6차 수정 소장도 그런 예의 하나다.

<한겨레21>이 입수해 확보하고 있는 이 소장에서 김백준 대리인은 “이들 회사(LKe뱅크, BBK투자자문, e뱅크증권중개, MAF)는 법적으로 관련돼 있지 않지만, ‘자발적이고 협력적이고 상호 이익적인’ 관계였다”고 밝힌 대목이 나온다. 또 “LKe뱅크, BBK투자자문이 사무실을 공유했다”는 사실도 적시돼 있다. 이명박 후보와 BBK의 관련성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셈인 이런 기록은, (이 후보가 회장으로 있던) LKe뱅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됐던 사실과 맞물려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정봉주 의원(통합신당)이 10월28일 공개한 하나은행 쪽의 공식 문서 또한 이명박 후보와 BBK의 관련성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하나은행이 2000년 6월22일 작성한 ‘LKe뱅크 출자 및 업무협정 계약서(안)’를 보면, LKe뱅크가 BBK 투자자문의 주식 100%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하나은행은 당시 LKe뱅크에 5억원을 출자한 바 있으며, 이 후보는 당시 LKe뱅크의 대표였다.

또 하나 달라진 모습은 이 후보와 BBK 관련성을 넘어 자금 흐름과 관련된 의문점이 집중 제기되고 있는 대목이다. 박영선・서혜석 의원 등 통합신당 쪽에서 잇따라 제기하는 의혹에는 BBK투자자문 및 MAF 펀드와, 또 여기에 투자한 회사들과 관련된 자금 흐름 및 돈세탁 의혹에 엮인 내용이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BBK 논란이 양자 사이의 관련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분위기다.

2001년 이상은씨 계좌에 입금된 147억원

세간의 주목에서 어느덧 멀어졌지만, 7월19일 한나라당 검증청문회에서 한 검증위원이 이명박 후보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던진 적이 있다. “김경준은 미 법정 항소심에서 다스(이상은씨와 김재정씨가 함께 설립한 회사)의 돈을 (투자)받은 적이 없다고 하고, 다스는 190억원을 줬다(MAF 펀드에 투자)고 한다. 위원회가 ‘계좌’를 들여다보니 김재정씨가 90억원, 이상은씨가 60억원을 (2000년 12월29일) 각각 보험만기로 돈을 빼낸다. 그 돈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6월(2001년) 이상은씨 조흥은행 계좌로 147억원이 몽땅 입금된다.” BBK투자자문과 이명박 후보 관련 인물・회사 사이의 명쾌하지 않은 자금 흐름의 일단을 보여주는 이 질문에는 답변도, 추가 질문도 이어지지 않았다.

금감원, 이명박 조사하지 않았다

관련 없음 확인이 아니라 애초에 대상 아냐… 검찰조사도 마찬가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쪽에서 BBK투자자문과 무관하다는 주장의 유력한 근거로 드는 것은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조사 결과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이 10월23일 현안 관련 브리핑에서 밝혔듯 “2001년 금감원 조사, 2002년 검찰 조사에서 이 후보는 BBK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확인됐다”는 게 이 후보 쪽의 공식 해명이다.

문제의 금감원 조사는 김경준 대표의 BBK투자자문과, 이명박 회장・김경준 사장의 LKe뱅크의 계좌가 동원된 (주)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당시 금감원 조사에서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코리아 대표로 재직한 2000년 12월부터 2001년 1월 사이에 고가매수 주문 등의 방법으로 시세를 변동시키는(주가조작) 거래를 한 혐의를 받아 검찰에 고발당한다. 이명박 당시 LKe뱅크 회장에 대해선 별도 조처가 내려진 게 없다. 이로써 이 후보와 BBK의 무관함은 판명난 것일까?

금감원의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이명박 LKe뱅크 회장은 조사에 포함됐다가 무혐의로 판정받은 게 아니라, 애초 조사대상에서 배제돼 있었다. 이는 미국에서 진행 중인 김경준과 이명박의 소송 과정에서 확인된 많은 한국 및 미국 검찰 기록에 나타나 있다.

이 후보가 당시 주가조작에 계좌가 동원된 회사(LKe뱅크)의 대표이사 회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가조작 및 BBK 관련성은 아직 판단 유보 상태라는 게 사실에 가깝다. 검찰의 조사 역시 금감원 조사에 따른 고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주가조작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에 계류돼 있다. 기소중지 상태인 김경준이 입국하면 이 후보도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이 후보 쪽은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수천 명인데, 이 후보를 고소하지 않았다”는 점도 무혐의의 근거로 들지만, 피해자의 고소 역시 금감원의 조사를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BBK 관련 사건에서 이명박 후보가 면죄부를 받은 게 1건 있긴 하다. 2000년 BBK에 50억원을 투자했던 (주)심텍이 이듬해 10월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씨를 상대로 낸 고소 사건에서였다. 이 사건에선 돈을 돌려받은 심텍이 도중에 소를 취하해 종결 처리됐다. 이는 이 후보가 BBK와 무관하다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BBK와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정황증거로 거론돼왔다.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와 관련해선,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는 안이 제기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올 6월 10명의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이 감사 청구안은 “핵심 인물인 김경준에 대한 소환조사도 하지 않은 불완전한 조사였다”며 금감원 조사의 적절성에 대해 감사원의 전반적인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Ultra Mobile PC. 삼성 Sens Q1

2006년 3월 9일. 마이크로소프트는 코드명 Origami 프로젝트를 정식으로 공개하였다. 코드명 Origami는 Windows XP Tablet Edition이 구동되는 Ultra Mobile PC 제작 프로젝트로, 삼성과 ASUS 등의 업체가 하드웨어를 제작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2006년 4월. 드디어 KIECO에서 삼성의 Ultra Mobile PC인 Q1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미 알려진대로 Q1은 키보드가 탑재되지 않은 Real Tablet 기기이다. 유선형의 디자인에 검은색 유광 플라스틱을 사용하여디자인 된 외형을 가지고 있으며, 탑재된 액정은 800 x 480 해상도의 7 인치 액정이 탑재되어 있다.

Tablet기기에는 감압 입력이 지원되는 전자유도식 디지타이저가 탑재되지만, Q1에는 감압식 터치스크린이 채용되었다. 감압 입력이 지원되지않는다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지만, 손가락으로도 쉽게 터치스크린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장 일단이 있는 방식이라 할수 있다.

뒷면에는 Q1을 세워둘 수 있도록 받침대가 장착되어 있다.
키보드를 사용할 때 화면을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세워주는 역활은 기본이고, DMB 시청과 동영상의 감상을 보다 편리하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초소형 제품이지만, 현재 삼성 노트북에서 제공되는 AV 활용을 위한 부가기능인 AVS Now와 SRS 기능은 그대로 제공된다.

확장 포트의 구성에서 재미있는 점은 근래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멀티 카드 슬롯 대신 CF 슬롯을 탑재하였다는 점. PCMCIA슬롯이나 Express Card 슬롯을 장착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주변기기의 확장이 가능한 CF 슬롯을 내장한 것이다.

왼쪽 측면에 위치한 Powered USB 단자는 외장형 ODD를 연결하기 위한 단자이다. 읽기 기능만 제공하는 ODD의 경우에는USB 자체 전원만으로도 작동이 가능하지만, 고배속 ODD나 DVD 레코딩이 가능한 ODD의 경우에는 USB 자체전원만으로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USB 단자 위쪽으로 추가적인 전원 단자를 준비해 둔 것이다.

CPU로는 900MHz로 작동하는 Celeron ULV CPU를 탑재하였다. 900MHz로 작동하는 모바일 셀러론 CPU는Banias Core를 사용한 Celeron M 333과 Dothan Core를 사용한 Celeron M 353의 두 가지가있는데, 출시 시기상 1MB의 L2 Cache를 가진 Celeron M 353 이 탑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메인보드 칩셋은 GMA900 그래픽 코어를 내장한 Intel의 915GMS가 탑재되어 있다. 메모리 확장을 위한 슬롯은 단 하나만 제공되며, 기본 사양으로 512MB가 장착되어 있다.

하드디스크로는 HITACHI 에서 제작한 1.8 인치 크기의 하드디스크가 장착되어 있다. 샘플 제품에 탑재되어 있는 하드디스크의용량은 30GB 이지만, 현재 개발되어 있는 1.8 인치 하드디스크의 최대 용량이 80GB 이기 때문에 고용량 하드디스크를탑재한 모델의 출시도 기개해 볼만하다.

그 외 지상파 DMB 수신 모듈의 내장과, Bluetooth 2.0 어뎁터도 Q1 내부에 내장하고 있다.

Origami 프로젝트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사용자들은 사용시간에 상당한 기대를 보였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하드웨어의 구성이 기존의 노트북과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사용시간의 혁신적인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Q1에 기본 탑재된 배터리의 용량은 11.1V 2600mA 용량을 가진 3셀 배터리로, 3시간 내외의 사용 시간을 가질 것으로예상된다. 기대에 못 미치는 사용시간은 옵션으로 제공되는 8 셀의 대용량 배터리 팩으로 해소가 가능할 것이다.

전용 주변기기로는 USB GPS 수신기와 USB 타입의 데이터 케이블, 차량용 어뎁터 등이 제공될 예정이다. Q1과 함께 전시된 키보드는 USB 케이블로 연결하는 방식이었고, 블루투스를 이용하는 옵션은 아쉽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Q1은 외국에서 발표된 799유로 보다는 조금 저렴한 가격에 국내에서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라 한다.

꽤오래전에 출시되었던 VAIO U 모델과 큰 차이가 없는 성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DMB 수신기의 내장과 WindowsXP Tablet Edition을 탑재하여 활용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강점을 가진 기기라 할 수 있겠다.

출처 : 앤펀

홈표핑에서 지금 침튀기면서 팔고 있군. 무선인터넷. DMB에 네비게이션 기능. 휴대간편. 카피씨용으로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