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Think

2018 제주 4.3사건 70주년, 우리가 몰랐던 제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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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dropcap size=”4″]내[/su_dropcap]가 처음 4.3 항쟁을 알게된 때는 대학때 갔던 제주도 MT에서였다. 그때 가이드 하셨던 분이 젊은 분이셨는데 낮엔 열심히 안내해주시고, 저녁 술마실때 퇴근 안하시고 술자리에 어울리셔서는 그 얘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광주항쟁보다 더 꼭 꼭 숨겨왔던 그 이야기. 제주 4.3. 그 진실엔 국부라고 일컬어지던 이승만. 그리고 당시의 기득권력이었던 친미로 돌아섰던 친일파 권력들. 현충원에 애국자로 묻혀있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의 중앙 교회권력들이 다 엮여 있었다.

그때는 광주항쟁도 입밖에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믿기지 않는 잔인한 학살의 이야기들을 마치 동화를 듣기라도 하듯 남의 세상 이야기 처럼 숨죽여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마 그 후부터 제주도에 갈때부터 아름다운 광경들이 내게는 처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70여년간 숨죽이며 살아온 제주도 사람들. 당시에는 총칼에. 지금은 자본의 힘에 눌려 제주에 살지만 제주의 주인이 아닌 그들….  이제서야 진실규명과 위로를 받는 그분들…

pale blue dot 창백한 푸른 점

pale-blue-dot

 

[su_quote cite=”칼 세이건 1934.11.9 – 1996.12.20 “][su_dropcap size=”4″]여[/su_dropcap]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 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su_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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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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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정의가 강처럼. mb 개시키야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라.

나는 꼼수다, 김어준, 김용민, 주진우, 정봉.jpg

그리고 나꼼수 맴버들 정말 고맙습니다. 나라를 구하셨어요. 경의를 표합니다.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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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mann – Kinderszenen Op.15, “Scenes from Childhood” | Vladimir Horowitz

[su_dropcap size=”4″]나[/su_dropcap]는 안다. 이 거장의 눈물을. 인생의 무게.

이 곡 처럼 한낱 아름답고 짧은 소풍이었음을.

I am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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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light114

[su_dropcap size=”4″]생[/su_dropcap]존프로그램 나가고 난후였던 쯤으로 기억한다. 방송국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새삼 방송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느끼게 되는 경험을 많이 했다. 결론 부터 얘기하면 방송은 마약이다.

그 약의 부작용은 정말 무섭다. 남들이 알아봐주는 단맛. 그리고 다양한 부가적인 재미들은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하지만 나는 인기절정의 연예인들이 하락하며 망가지는 모습을, 평생을 방송국에서 근무하셨던 아버님의 옆에서. 또 내가 직접 근무하며 그 안에서 꾸준히 봐왔다. 이것들은 모두 허상이며 구름이다.

그리고 아울러 그때쯤 같은 생존프로그램 출연한 인성이하 특정인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벌이는 추태들도 보았다. 그들에게 당한 사람들은 내게 연락을 해와선 피해입은 이야기를 했다. 종도씨와 나는 이런 예상치도 못한 연락으로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다. ( 그걸 듣는 것도 고역이다. 부산의 유명맛집 동호회 관련인이 연락와서 생존프로에 출연했던 한 인물의 기행에 가까운 갑질이야기를 들을때는 정말 역겨워 견딜수가 없었다. 방송이란 마약이 저렇게 까지 사람을 망쳤을까)

그런 이유로 나는 출연이후 더 사람을 피하고 혼자 다니기 시작했고, 그 결정은 지금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피할수없이 좋은 기억들과 인연들도 겪었고 또한 불쾌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도 많았다. 그때 받은 수많은 불쾌한 기억들은 결국 상처로 남았다. 그 상처를 준 사람들은 주로 같은 서바이벌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였다. 수많은 시기와 비하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숨긴채로 날 공격하고 비난했는데 참 비열하고 사악했다.

난 부화뇌동 附和雷同 해서 싸우기도 했었지만 결국 후회하고 다시 철저히 혼자가 되는 길을 택했고 사람들의 시선에 띄지않기 위해 노력했다. 방송에 나온 나는 나의 모든것이 아닌데다, 필요이상으로 과장되어 나타나는 부분들은 내겐 부담으로 쌓여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공황장애 같은 병에 고통받는다는 사실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후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생존을 묘기대행진으로 만든 장본인중 한명임을 무거운 마음으로 고백한다. 가장 기본적인 생존상식도 알리지 않고 생존이란 전문가들만 하는 것이란 그릇된 개념을 퍼트리는데 일조했다. [su_highlight background=”#97f3ef”]종도씨와 나는 그 이후 생존 묘기대행진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누구나 할수 있는 생존을 위해 노력중이고, 의도가 건강하지 않은 (거의 대부분이다) 방송제의들은 모두 거절하고 있다. 우리는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는 한사람이라도 살릴수 있기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su_highlight]

[su_quote]나는 내 주제를 잘 알 안다. 나는 전문가도 프로도 아니다. I am nothing. 그래서 언제나 더 공부하고 노력한다.  [/su_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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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이후 공익에 도움이되는 방송에만 출연중인 김종도씨 (출처 : 김종도씨 홈페이지중 10만원으로생존배낭꾸리는법 ) http://blog.naver.com/kjongdo/221217749488

다시 고백하지만,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프로는 더더욱 아니다. 단지 종도씨같은 뛰어난 생존전문가를 만나게된 운좋은 허당일 뿐이다. 나의 생존실력은 언제나 머리와 지식만큼 손발은 따라가지 못하는 쩔뚝이다. 언제나 진지하려고 해도 티비에 나온 나는 우습고 어설프다. 감정조절을 하지 못해 징징거리는 모습은 내가 보아도 한심하고 안타깝다.

끔찍한 저질 체력은 또 어떤가. (티비로 본 내 배와 살집이 너무 끔찍해 그때부터 운동을 하고 살을 빼기 시작했다) 나의 왼쪽손목은 예기로인해 인대가 파열되어 보우드릴 같은 기본 생존기술도 구현하지 못한다. 게다가 난 알콜문제 까지 있어 절주를 위해 노력중이다.

나는 그래서 깡을 키운다. 이것만은 자신있다. 깡은 의지보다 강하다. 깡에는 의지에 포함되는 논리가 필요없다. 그리고 언제나 공부하기 위해 노력한다. 깡과 공부는 자신있다.

이런 헛점 투성이인 내가 종도씨는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했을까. 하지만 종도씨는 얼굴한번 찡그리지 않고 날 돕고 내편이 되어주었다. 그는 생존기술만큼 인성도 정말 훌륭한 동료다. 그는 사복입은 군인같다. 진짜 남자중 남자다. 남자가 남자에게 빠질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해준 사람이다.

그러던 중 작은 인연으로 시작된 일로 또 부담을 껴안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동향의 동생뻘 되는 분. 그리고 몇병의 술이 그 원인. 도와주고 싶은 맘이 과욕을 부른것 같아 지금도 부끄럽기 이를데 없다. 또한 종도씨 명성에 티끌 묻히는것 같아 맘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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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 시리얼

종도씨와 둘이서 함께 출연했다는 이유로 생존달인이라고 소개된 것이 스패셜판에 내 이름을 영광스럽게 올리게된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 본사에서 한국출시 기념으로 시리얼 넘버 XXX. 스패셜 맴버 버전을 보내주었다. 전세계 3개밖에 없는 메모리얼 버전인데 하나는 종도씨. 하나는 나. 그리고 남은 하나는 스페인 쿠드만 본사에 보관한다고 한다.

(이전 유럽판매버전과 비교해보니 한국출시버전에는 더 많은 신경을 쓴것이 보인다. 우선 강재의 마감 자체가 다르다. 유럽판매버전과 달리 강재 전체가 매끈하고 더 맑고 깨끗하다. 같은 강재지만 좋은 원재료로 신경써서 제작했다는 느낌이 와닿는다. 한국출시 버전에 더 신경을 쓴듯하다)

한 10여분 나가는 방송중 한 꼭지. 그리고 종도씨가 괜찮으니 부담가지지 말고 출연하라는 연락을 받은 수년전 그날 이후… 내겐 일생에서 잊지못할 많은 일들을 겪게 되었다. 그 일들중 또 잊지 못할 일이 이렇게 내게 생겼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염치없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타향살이 하는 동향 동생분의 사업이 잘 되길 바라는 맘을 피력하기가 참 조심스럽다.

아 내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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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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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quote cite=”조성만 열사”]한반도의 통일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막아져서는 안됩니다.분명한 사실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남북공동올림픽을 거부할 집단은 현 군사정부와 그 밑에서 민족을 팔아먹는 사람들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올림픽은 민족화해의 장이 되어야만 합니다. ” [/su_quote]

 

[su_dropcap size=”4″]굴[/su_dropcap]욕(남에게 억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 과 오욕(명예를 더럽히고 욕되게 함) 의 분단 반세기. 외세의 속박을 끊고 우리끼리 손잡고 반 제국주의 자주. 평화 통일의 민족 사명을 완수하자.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우리는 하나.

성만이형. 잘 계시지요? 잊지않고 있습니다.

EDC 로써의 나이프의 이해 그리고 착각들

본 내용에는 실제 칼부림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 심약자등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su_dropcap size=”4″]E[/su_dropcap]DC (Every Day Carry : 개인 일상 상비용품) 의 요소에는 각 개인의 업무와 환경에 따라 다양한 필요장비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 장비들은 그런 이유로 획일화 (劃一化) 되어있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장비는 꼭 어떤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역으로 장비들을 보면 그사람의 직업과 환경. 성격. 취향등을 추론(推論) 할수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모든 다양한 EDC 들중에서 주로 빠지지 않는 요소(要素) 들중 하나가 바로 나이프이다. 나이프는 랜턴과 아울러 개인의 EDC 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구성요소중 하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EDC로 소지하는 이 나이프의 용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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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C 에서의 나이프의 정의. 그리고 호신(護身.self-protection).

EDC 에서 나이프는 다양한 필요로 소지하게 된다. 어떤곳에 갇혔거나, 무엇이 고장났거나 하는 상황에서 그곳을 탈출하거나 수리를 하게 될때의 필요에 의해, 잘라내거나 나사를 돌려 풀어내거나 하는 특정 작업에 나이프는 요긴하다. 나이프의 칼날과 칼날의 끝부분을 이용해 베거나 자르거나 나사등을 돌리거나 혹은 핸들 끝부분의 브래이커등을 이용해 유리를 깰수도 있다. (이런 사용용도가 집적된것이 바로 멀티툴의 등장이다)

[su_quote]이렇듯 EDC에서 나이프는 본연의 기능은 물론이고 그 기능을 응용해 사용목적을 달성하려는 툴(Tool) 로 이해 되어 사용되어야 한다. [/su_quote]

그리고 또한 나이프는 호신기능을 빼놓을수 없다. 또한 이 부분에서 많은 EDC 사용자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오인되거나 혹은 안일한 마음으로 나이프를 사용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다. [su_highlight background=”#a3f3f2″]결론 부터 이야기하면 나이프는 훌륭한 호신용품이다. 하지만 사용자의 큰 책임과 지식이 필요하며, 이 글을 기획한 된 이유이기도 하다[/su_highlight]


자료1)
2013년 MBC 칼부림뉴스

EDC 나이프로 호신을 위해 칼싸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1. 위의 영상에서 보듯 대부분의 칼부림은 피해자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습격(襲擊) 이다. 이런 습격에서 자신의 나이프를 이용해서 대응하는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 또한 나이프는 다른무기와 달리 첫습격에서 피해자 대부분이 치명상을 입게된다. (대응을 위해 나이프를 뽑기는 커녕 맨손으로 공격을 막기에 급급하다) [su_highlight background=”#a3f3f2″]영화에서 보는 화려한 나이프 파이팅이란 현실에선 없다. 영화속 장면들에 빠져 EDC 구성에 나이프를 포함한다면 큰 착각이다. [/su_highlight]


자료 2) 슈퍼마켓 CCTV 자료에서 보는 나이프 습격

2. 맞서서 나이프 빼들고 대응하다간 정당방위는 커녕 가해자 (加害者)와 함께 콩밥 먹게 된다.  설령 나이프를 빼들었어도 정당방위 (正當防衛) 는 인정되지 않으며, 방어 과정중에 상해를 입히거나 사망에 이를 경우에는 최고 무기징역에서 사형까지 선고 받게 된다.

이미 유사한 사건에 대한 수많은 판례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일례로 칼을 휘두르는 사람을 넘어뜨려 칼을 뺏은후 주먹으로 폭행을 했던 사건에 대해서 재판부는 칼을 뺏고 넘어뜨려 제압하는 데까지만 정당방위이며, 주먹질은 폭행이라며 유죄를 선고한 사례가 있다. 하물며 칼을 들고 덤빈다고 칼을 꺼낸다면 정당방위(正當防衛)는 고사하고 안봐도 비디오인 쌍방상해(雙方傷害). 상처 입혔으면 유죄에 최대 살인미수 (殺人未遂)로 실형감이다. (물론 이런 판결에 동의하는것은 아니지만 법은 법이니 어쩔수 없다. 개인적으로 미국처럼 칼들고 집에 들어오면 죽여도 정당방위어야 한다고 본다 )


자료 3) 나이프는 습격이 대부분이기도 하지만 대응은 커녕 공격자의 팔을 잡아 막는 등의 방어도 거의 불가능하다. 즉시 자리를 피해 도움을 청하고 신고 하는것이 최선이다. 절대 맞서지 마라. 

3. 나이프 습격은 실제 방어가 거의 불가능하다. 가해자의 공격은 즉각적. 일방적으로 들어온다. 이 공격을 방어하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격자의 팔을 잡아 방어하는 시도는 거의 무의미 하다. 어떻게든 그 자리를 피해라. 그다음 도움을 청하거나 신고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4. 나이프를 꺼내 보여주며 위험을 피하려는 시도도 아예 생각하지 마라. (특수) 협박죄(脅迫罪)로 콩밥먹게 된다. 일례로 어떤 미친놈이 버스안에서 자리 비켜달라고 칼을 꺼내서 보여준 사건이 있었는데, 지금 깜빵가서 변소 청소 하고 있다. 칼을 꺼내 보여주면서 강요. 혹은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는 행위는 (특수) 협박이 성립된다. 설령 위협을 느끼거나 공격을 예상하더라도 섣불리 나이프를 꺼내지 말고, 자리를 피하던지 아니면 차라리 주먹으로 맞짱을 떠라.

[su_quote]나이프 습격을 당할 경우에는 맞서지 말고 즉시 자리를 피해 도움을 청하거나 신고해라 [/su_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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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C용 나이프는 멀티툴의 개념으로 소지하는 것이지 무기가 아니다

정리하며

수술용 메스를 꺼구로 잡으면 사람을 찔러 죽이지만, 똑바로 잡으면 사람을 살린다. 나이프를 쥔 사람의 의지가 결국 그 나이프를 흉기로 만들던지 아니면 사람을 살리고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소지자를 잠재적 범죄예비자로 규정하는 현재의 도소법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예기(銳氣)를 이용한 상해 살인사건은 도소에 적용되지 않는 식칼류에 의해 일어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법은 법이다. 합법적으로 EDC로 나이프를 입수 및 휴대해야하며, 또한 소지한 이유로 더 편리하고 안전할수 있지만 또한 지혜롭고 신중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러번 밝혔던 내 개인적인 경험을 다시 적어본다. 한참 술을 마시고 다닌적이 있었다.  만취했던 어느 새벽의 일이다. 휘청휘청 걷는데 두명이 계속 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오는 느낌. 걸으면서 옆을 봤더니 가게 유리에 비춰진 뒤에 따라오는 덩치큰 두놈 인상이 험상궂다. 신호등 앞에 섰는데도 뒤쪽에서 인기척이 계속 느껴졌다.

[su_quote]아 이놈들 뒤에서 치겠구나.  아리랑 치기… [/su_quote]

돌아보지 않은채로 주머니에서 EDC 폴딩 나이프를 꺼내서 계속 칼날을 폈다 접었다 폈다 접었다 찰칵 찰칵 소리를 냈다. 그랬더니 뒤쪽 인기척이 조용히 사라졌다. 눈마주치고 칼을  들이대지도 않았고 대화가 없었으니 협박도 아니고 휘두른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의 가족이 상해를 당하고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 납치 / 감금의 상황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 . 머나먼 이국땅에서 억울한 죽을 맞은 김선일씨의 상황에서 위의 조건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꼭 사용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1. 내 가족이나 내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2. 감옥갈 각오하고 3. 과감하게 사용하되 4. 치명상 부위를 피해 사용하는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아울러 위의 4가지 사안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모든 행동은 나의 책임이며 법앞에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앞서 여러번 강조했지만 [su_highlight background=”#a3f3f2″]EDC 나이프는 멀티툴의 개념으로 소지하는 것이지 절대 무기(武器) 가 아니니 착각(錯角)하지 말자.[/su_highlight] 

영화 1987 두번째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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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_dropcap size=”4″]엄[/su_dropcap]니랑 딸아이 데리고 심야영화 보러감. 나는 두번째 1987 감상. 9시 50분 심야인데 자리가 없음.

영화 1987중 포승줄에 묶인 고문경관들과 검사 만나는 장면에서 하정우의 대사.

[su_quote cite=”하정우 (검사역) “]면회실에 고양이좀 놔야겠어. 쥐가 살이 포동포동 쪄가지고 말이야.[/su_quote]

1987 영화의 메시지. MB를 잡으라는. 수많은 민초들의 개썅마이웨이정신이 빛나는 영화. 1987. 사실 이영화는 수많은 선배 문꿀오소리들의 개썅마이웨이정신이 빛나는 영화다. 압력와도 들이받는 하정우 검사. 기관원이 감시해도 기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의사. 보도지침 있어도 들이받는 기자들. 그리고 그리고… 물어 뜯기고 고문당하고 자리에서 짤려도 자기 양심대로 자기 갈길 가는

개’썅’마’이’웨’이’정’신

 

담담하게 영화보시다가 대공요원들이 교회 쳐들어가서 목사님 두들겨 패는 장면 보신, 카톡 수구문자 전문 수신자 교회권사 울엄니 뚜껑열리심.

[su_quote cite=”황여사 (울엄니) “]학생들 아니었으면 어쩔뻔 했냐. 전두환이 저놈은 왜 안죽여? [/su_quote]

눈물이 그렁그렁 하며 딸아이 재잘재잘.

[su_quote cite=”이가영 (아기새) “]아빠. 진짜 저런때가 있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고문하는 장면에서 너무 무서워서 눈을 감았어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아빠랑 촛불 함께 들고 나간거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런데 아빠도 싸울때 저렇게 맞았어요? [/su_quote]

날시퍼런 블랙리스트 탄압속에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이 영화에 참여한 용기있는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처음볼때는 몰랐던 부분. 두번째에 드디어 … 깨닳은 사실하나.

이한열 열사의 시계와 손석희 JTBC 사장의 시계가 같다.  손석희 앵커는 87정신으로 아직도 싸우고 있다. 손석희 앵커가 5.18 기총소사 고발등… 왜 아직도 그 시대 언저리에서 외치고 있는지 이제 알것 같다. 그의 원동력은 광주와 87항쟁인듯 하다.

영화 끝나고 나오는 <그날이 오면> 노래에 당시 항쟁영상과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생전모습들 나오는데 한명도 나가는 사람 없음. 옆에 무뚝뚝한 갱상도 아저씨 하아…하아… 한숨쉬면서 울음 참는 모습. (그냥 나처럼 그냥 편하게 울지)

두번째 보면서 느낀건데…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없음. 카메라가 초반에는 하정우 검사 따라다니다가 그다음 출연자인 기자로. 교도관으로. 여대생으로. 이한열로 계속 옮겨다님.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그리고 마지막 앤딩 크래딧 장면에 백만 시위 참가자 사진들 나간후에 오른쪽에 <그리고>라는 타이틀 아래로 강동원등 출연자 이름과 아울러 앤딩크레딧이 올라감. 이 영화의 주인공은 국민이었고, 그다음 출연자들이란 감독의 배려.

정말 잘만든 영화임. 나는 두번째 보는데도 박종철 아버지가 강에서 우시는 모습부터 눈물 터짐. 아 오늘 한잔하고 자야겠다.

<사족>

그리고… 뽑았으면 지키자.

또 잊지말자.

 

1987 보다 펑펑울음

[su_dropcap size=”4″]관[/su_dropcap]객전체가 펑펑 울음. 이한열역 강동원 영원히 까방권. 앞좌석 아줌마 둘 초반에 바스락거리면서 뭐 먹으면서 보다가, 이한열 최루탄 맞는 장면에서 울기시작해서 엔딩크레딧 까지 울음.

엔딩 크레딧 올라갈때 87항쟁장면이랑 <그날이오면> 노래 나가는데 사람들 한명도 안나감. 애기 데리고 한번더 보러갈 생각.

집에 걸어오는 동안 계속 눈물. 이 영화 천만 가뿐히 칠듯.

아기새의 친구

[su_dropcap size=”4″]아[/su_dropcap]기새는 외동으로 커서 그런지 친구를 너무 좋아한다. 학교 끝나면 친구들이랑 노는게 이 아이의 삶의 낙이며 기쁨의 원천이다. 집에도 많이 놀러와서 맛난 것도 만들어주고 그랬다.

그러던 어제쯤인가 엄니가 하는 얘기. 아기새 친구중에 아버지에게 무지 맞고 사는 애가 있다고. 그 아이가 제일 친하다고. 오늘 방학식 하고 장학금도 50만원이나 받은 기분 좋은날. 저녁 먹으면서 조심스레 물었더니 울먹울먹 하며 얘기한다.

예전에 우리집 와서 하루 자고 스파게티 먹고갔던 덩치큰 여자애. 아버지가 하도 때려서 친구집을 전전다고 한다. 주로 술에 취하면 때리는데 온몸이 멍투성이에 한번은 코뼈가 부러졌다고.

갈비뼈랑 등. 종아리에 멍투성이라 불쌍해 죽겠다고. 그리고 술깨면 빌고 취하면 때리는 전형적인 알콜중독자 폭력루틴. 매일 헤꼬질에 폭언. 이주에 한두번은 경을 친다고 한다.

엄마는 이혼해서 외국에서 일하신다고. 아 그래서 … 저번 통화때 한국 들어온 엄마란 분이 아기새랑 자기딸이랑 밥사주는데 고맙다고 인사를 내게 연거푸 하셨구나.

왜 아빠한테 그동안 얘기안했냐고 했더니, 그 친구가 사람들이 아는걸 원치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잘못이라고 얘기해줬다. 그리고 아빠가 안 이상 그냥 못넘어간다고 말해줬다. 아기새랑 작전을 짰다.

1. 상처 사진을 모두 사진으로 찍어서 본인도 보관하고 아기새에게도 보내라고.

2. 언젠가 한번 또 심하게 폭력을 행사할때 아빠에게 알려달라고.

3. 그 날이 오면 가영이 데리고 그 아이 집으로 출동해서 경찰에 <가정폭력 신고> 하고, 출동한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증거사진도 함께 제출.

4. 혹시 출동했는데 때리면 그대로 맞고 폭행으로 함께 고소. 그리고 그 장면 딸아이에게 증거로 영상촬영.

내가 안 이상 … 술쳐먹고 아이 때리는 새끼는 용서 못함.

 

다시 불러 손잡다.

[su_dropcap size=”4″]오[/su_dropcap]래전 테터툴즈로 04년 부터 09년 까지의 xml 자료를 저장하고 있었다 (더 전에도 한 4년 운영했었는데 실수로 날려먹음). 그리고 DB의 D짜도 모르는 내가 짬짬히 공부를 해오면서… 결국 xml 데이터를 복잡한 과정을 거쳐 컨버팅 한 후, 지금 운영하는 워드 프레스로 옮겨서 지금의 것들과 시간대에 맞게 합쳤다.

작업을 하며 시간이 지나버린 컬럼 재료들은 모두 과감히 정리를 하고, 그동안 지내온 삶들과 생각들을 다시 작업중에 본의 아니게 반추 하게 되었는데, 지금 보니 어찌 그리 찌질 했었는지 모르겠다. 저때 좀더 참았더라면. 지금 아는걸 저때 알았더라면… 뭐 이딴 후회와 반성. 그리고 약간의 한숨과 눈물 글썽거림의 시간을 가지며 결국 작업을 성공리에 마쳤다.

그리고 그 과정중에 살며 잊고 있었던 다양한 개새끼 년놈들과 아울러 고마운 사람들도 떠올라, 이들 안위(安危)의 궁금함과, 아직도 번개 안쳐맞고 살아 숨쉬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큐리어스도 생겼다.

어떤것은 부끄럽고 어떤것은 슬프며 또 어떤것은 너무너무 찌질하고 설익은 지난 삶의 에테르들 범벅이다. 하지만 저런 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파킹 그레이트 개찌질한 내가 있는게 아닌가 싶어, 여자 고등학교 앞 용감한 바바리 아저씨 처럼 과감하게 다 훌러덩 공개해 버리기로 맘먹었다.

어짜피 내 위인전은 죽을때 까지 발간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웹공간에 찍 – 소리라도 한마디 남기는것이 내 후세와 내가 알아온 세상에 유의미한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서사적 결정이 맘을 굳히게 만들었다. (거의 반평생을 산밑에서 미립자처럼 살았지만, 그래도 죽을땐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서사적으로 처연하게 뒈지고 싶은 숫컷의 본능 같은)

몇번 SNS에도 썼지만, 모든 개인의 처음은 다 찌질하며 또한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부끄러워 하지 않을때, 우리는 이념전쟁 보다 더 무서운 차원의 동질감을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고등학교때 친구가 오래가는 법이다). 경쟁적으로 잘나려 하기 보단 반대로 우리가 알고보니 모두 찌질함을 깨닫았을때 맘에 더 편안해 지며 어색하지 않는다.

짬날때마다 거의 이십여년 전의 나와 만나 화해 하려 한다. 그리고 전처 (前妻)를 비롯해 당시 힘든 생업(生業)과 불안한 미래등에 드럽게 갈굼 당하면서도, 서사적 사명감으로 꿋꿋하게 일상을 기록한 당시의 내게 잘했다는 칭찬을 하고 싶다. 그때의 너는 막연한 희망 같은걸로 그렇게 버티며 기록했나 본데, 역시 20여년이 된 지금도 그닥 인생 뭐 없다. 이 불쌍한 새끼야.

한동안은 오래전 나를 다시 불러 손잡고 한잔하며, 빠진 개털 같았던 올해를 조용히 정리하려 한다.

MBC 스페셜 >내 친구 MBC의 고백> 171214

 

[su_dropcap size=”4″]마[/su_dropcap]봉춘이 알아서 머리를 박으며 거의 자학수준의 자아비판을 하고 있음. 그 두번째 자아비판 시리즈. 씨바. 광주시민들 폭도라고 하고 두환이 빨아준거 연장선이라고 나는 보고 있음. 너희는 언제나 앞장선적 없어. 무임승차만 했지.

80년 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흘린피. 우리가 들었던 촛불 승리이후, 너희는 언제나 무임승차만 했지. 돈 별로 안드는 번지르르한 반성문 몇장과 배경음 깔린 악어의 눈물로 어째 퉁치실려고?

그때나 지금이나 너희의 변함없는 평균연봉은 1억이고, 너희에게 언제나 우린 그저 만만한 돌아서면 잘 잊고 용서도 잘하는 계도가 필요한 천한 개돼지들 이었지.

사연 그만 팔고, 기계적 중립 개소리 박쥐짓 그만하고 반성문 쓸 시간에 세월호 진실 찾아내고, MB나 잡아. 무임승차 전문 마봉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