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7-0501 제주와일드 올레 2/3

[su_dropcap size=”4″]장[/su_dropcap]기운행에는 나름대로의 미학 美學 과 아울러 다양한 유용성이 존재한다.

  1. 평소 생각하던 스킬들을 모두 연습할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부여된다. 하나하나 모두 꼼꼼히 실험해보고 연습해 볼수 있다. 시간에 쫒기지 않아도 된다.
  2. 먹을것은 얼마를 어떻게 가져갔던지 간에 4-5일 안에는 다 소진된다.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므로 차라리 처음에 그닥 준비하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홀가분 하다.
  3. 길에서 먹고 잘 경우 놀라울 정도로의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4. 인내와 끈기. 뻔뻔함과 같은 맨탈스킬도 수련이 가능하다 (씻지않은 채로 일주일여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기만 하거나, 비오는날 물바다속 텐트안에서 버티는 등의… )
  5. 먹고 자는 모든 일상의 행동들이 장기운행에선 각각의 전쟁이다. 이는 차후 여행이 끝났을때 잊고 있었던 소소한 일상의 감사함으로 치환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는 이번에서 부터 이전에도 꾸준히 시도했던 도전에서 번번히 패배했다. 꼼꼼한 계획을 세우고 언제나 시도 하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착오들과 변수들을 체크하며, 더 나은 다음도전을 예비할 것이다.

마지막 3번째 글은 그런 이유로 나의 이번 장기운행에서의 소소한 노하우들과 장비운용에 대한 부분들을 분석하고 반성하여 공유할 생각.

2번째 리뷰에선 기분이 좋았을때 찍었던 영상들을 잘 찍었던 못찍었던 간에 하나도 빼지않고 소소한 설명들과 함께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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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전에서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이 영상을 카톡으로 보냈었는데, 한결같은 질문이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 사실 이 질문은 우문이다. 이런 데는 제주도에는 천지빽까리로 많다. 그냥 소변누고 오면서 보기 좋길래 찍은 영상일 뿐.

 

 

최소한달 길에서 먹고 자는 와일드 올레를 함께 하자는 SNS를 올릴때… 사실 내 맘은 누가 이런 험한걸 지원하겠냐고 생각했던게 사실이다. 그리고 남자도 아닌 여성분이 지원했을때 좀 많이 당황했던것도 사실이었고.

특히 내용중에 ” 다분히 독선적이고 말이 없는 무뚝뚝하며 독재를 할것이다” 라는 문구를 보고서도 지원한 학원 원장이신 재은씨는 나도 참 만나기 전엔 궁금했다. 그리고 함께 길에서 겪은 재은씨는 나만큼 무뚝뚝하고 우직한 캐랙터였다. 개인적으로 못난 <선배- 재은씨가 날 그렇게 불렀음> 지만 .. 감히 웬만한 사내보다 믿음직스러웠고 훌륭한 <후배> 였음.

하도 내가 못해준게 많아서… 꼭 다음에 혹시 또 함께 여행을 할 경우엔 이번처럼 고생하지 않고 <누리면서> 하는 여행을 하자는 약속을 했던 기억. 위 영상은 사진찍으려다 실수로 동영상 촬영 버튼을. 암튼 올레 초반이었는데 이땐 재은씨나 나나 참 싱그러(?) 웠다. (이후엔 눈꼽 더덕 더덕 붙이고 오늘은 응아를 잘 했니 안했니 서로 표정도 안변하고 대화를 하는 단계까지).

 

 

이번 올레여행의 백미. 꽃이었던 순간이다. 페친이었던 서선영 페친님께서 찾아오셔서 특수부위 고급 돼지고기를 사주셨다. 돼지 특수부위가 이렇게 다양한지도 처음 알았지만 이렇게 맛있는지도 처음 알게 되었다.

정말 뻔뻔하게도 고기 사주러 오시는 분께 쌀도 좀 있으신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했더니, 파하핫 웃으시면서 반찬거리랑 함께 가져다 주셨다. 그중 직접 캔 말린 고사리는 물에 불린후 살짝 데쳐 밥에 참기름. 간장이랑 비벼먹었는데 눈물나게 맛있었다. 아 진짜 야생 고사리는 입속에서 춤을 추는 거구나.

고사리 볼때마다 서선영 페친님이 생각날것 같다. 꼭 이 은혜를 어떤 방법으로든 갚을 생각이다.

 

 

아재의 병신력은 계속된다. 원래는 사진을 찍으려고 했었다. 서선영 페친님과 헤어질때 사진을 찍으려고 했었다. 내가 봐도 난 참 병신력이 뛰어나다.

 

 

이 장면엔 다양한 스토리가 녹아있다. 일단 첫날 협재해수욕장에서 잘땐 경치좋은 바닷가 바로 앞에 쳤었다. 그런데 다음날까지 비와 바람이 몰아치면서 재은씨의 텐트 폴대는 부러져버리고 만다. 우선 뒤쪽 계수대쪽으로 대피를 한 후에, 다시 해안가 뒤쪽 방풍림 뒤로 대피를 해서 하루를 더 텐트에서 날씨가 나아질떄 까지 버티게 된다. (전국적으로 이때 강풍경보가 뜰정도였으니 어련했겠냐는. 게다가 어찌나 쌀쌀한지 4월인데 손을 호호 불 정도였으니)

부러진 재은씨의 텐트폴은 내 텐트의 비상용 폴대커버로 이어붙였지만, 재은씨는 감정을 숨길줄 모르는 친구. 잔뜩 우울해 있어서 기분 풀게 해주고 싶어서 한 영상속 액션.

그리고 주로 식량을 도맡아 패킹해야 했던 재은씨는 무게에 무척 민감했는데, 농담반 진담반으로 베넉용 밀가루를 빨리 소진하지 않고 항상 패킹시키는 나를 아마도 맘속에서 많이 욕했을거 같다. 게다가 맛은 뭐 그닥이어서 미식가 수준의 입맛을 가진 재은씨는 표현은 안했지만 힘든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어, 지금도 이 부분에선 참 미안하다. 난 맛보단 우선 배를 채우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재은씨. 맛없는거 계속 먹여서 미안해요. 쏘리 쏘리.

협재에서 이런 이유로 2일을 묶여 있었고, 그 벌은 협재에서 떠나는 날 내칼에 내손가락을 베이는 것으로 치르게 된다.

 

 

제주엔 곳곳에 세월호의 아픔이 녹아있다.  이름모를 어느동네의 담장에 그림으로. 평생을 제주도에서 살아온 친절한 버스운전사님의 앞유리창에 노란리본 스티커로. 4.3 추모공원의 수많은 노란리본들로…

 

 

걷는동안 가장 몸이 힘들었던 코스는 9.10 코스였지만, 맘이 가장 힘들었던 코스는 7코스였다. 7코스엔 수많은 호텔들이 있었고, 많은 추억들이 묻어있었다. 7코스에선 해가지는 장면을 찍을때만 고개를 들었던 것 같다.

 

 

가파도 청보리 축제를 보고 하루 비박을 한후 배를 타고 나오는 모습. 이 배엔 가파도 이장님이 함께 타고 계셨는데 정말 자신의 삶의 터를 사랑하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가 최고예요. 다른데 다 돌아봐도 전 여기가 제일 좋아요. 제가 사는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요” 

맞아요. 이장님. 가파도 참 예뻐요. 저도 한때 여기서 살고 싶었지요. 문자 보냈던거 기억하시냐니까 하도 문자가 많이와서 기억 안나신다고 하셨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억 안나신다니. 웬지.

 

 

올레 출발 하루전에 갖고 갈까 말까 배낭에 넣었다 뺐다 하기를 여러번 했던 옵티머스 하이커 플러스 버너. 최종 3회 총결산 리뷰때 밝히겠지만 정말 안가져 가기를 잘했음.

 

 

이번 올레때 주로 사용했던 트란지아 방풍 버너와 트란지아사가 프리머스사에 의뢰해서 제작한 전용 옵니퓨얼 버너. 이건 잘 선택해서 가져갔다는 결론. 총결산 리뷰때 자세한 사용기 쓸예정.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해도 <실전>에선 다양한 변수들이 나타난다는 교훈을 가르쳐줌.

 

 

여행말기쯤인데 이때 호우주의보가 내려서 장대비가 쏟아짐. 산방식당 바로 다녀온 후였던 걸로 기억. 이때는 이미 재은씨랑은 헤어져서 혼자 운행할때인데, 34키로 배낭에 죽어러 걷던때라 몸이 일단 만신창이었고, 가벼운 몸살기운이 겹친 상황.

제주도는 바람과 비가 징역살이 시키는 것이란 사실을 이때 깨닳음. 비가 방향성을 가지지 않고 사방팔방에서 제주도 바람과 협동으로 뒤통수와 싸다구를 함께 때리고 치며 덤벼드는 경험을 했음.  이번 제주도 행에서는 특히 강풍 주의보와 호우주의보 휴대폰 비상알림을 함께 받게 되는 경험을 하게된다.

이건 사람이 이겨낼 비비람이 아니란 결론을 내리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몸을 피할 결정을 함. 다행히 오랫만에 샤워도 하고 장비도 점검하고 몸도 추스리는등 여유를 가짐.

 

 

비바람 덕에 비수기인 게스트 하우스에 대피한 올레꾼과 여행객들이 몰려 왁자지껄 했다. 3인이상 치맥파티가 가능한데 내가 오기전까지는 모두 파토가 났었다고 스탭분이 알려주셨는데, 내가 간날은 날씨덕에 근사한 치맥파티를 했다.

이미 한번의 올레완주를 했고 다시 도전중이지만, 게하에서 이런 아기자기한 즐거움은 이날 처음 알게되었다. 팔도의 남녀들이 모여 다양한 주제로 한잔하며 대화하는 즐거움이 소소했다.

이날 먹다 남은 닭은 스탭분이 나를 위해 챙겨주셨는데, 다음날 훌륭한 점심과 저녁 식사가 되어주었다. 이분들 다 여행 잘 즐기셨기를. 그리고 짧은 인연이었지만 부디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시길!  (스탭분이 간호사분이셨는데 관련 대화 많이 나눌수 있어 즐거웠음)

 

 

운행의 중간쯤으로 기억되는 곳. 제주도엔 정자가 많아서 운만 좋으면 영상처럼 텐트치고 자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특히 뉘역뉘역 해가 질쯤에 파김치가 되어 우연히 만나는 저런 정자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 비할데 없었다.

운행 후반쯤엔 몸은 만신창에 걷다 지친터라 힘이 딸려 저녁식사를 할 체력도 바닥이나 일단 겨우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누워 잠을 자느라 저녁을 굶고 자기가 일쑤였다. 그러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꼽도 떼지 못하고 아침은 물론이고 점심까지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하는 상황이라 바빴다.

먹고 난 밥은 락앤락 비닐에 넣은후 패킹을 한후 또 길을 떠났다. 운행의 마지막 날. 공항근처 게하에서 빨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하는데 배낭 구석에서 락앤락 비닐에 찌그러진 쌀밥덩어리가 보였다.

” 아 이걸 내가 어떻게 먹고 다녔지…” 

내일이면 집에 돌아갈 몸. 게하에서 목욕을 하고 빨래를 끝낸 후엔 비닐봉지속의 저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만일 내일도 걸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정자 아래 텐트속이었다면 달랐겠지.

사람이.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서있는 자리에 따라 이렇게 사람이 간사해진다.

 

 

8코스를 마친후인데(꺼구로 돌고 있으니 8코스 시작점이며 7코스 종점)… 배낭을 풀어놓지 마자 한발짝도 움직일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때 몸 컨디션이 가장 바닥이었다. 스탬프 찍는 장소 바로 뒤에 운동장과 정자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렇게 한참을 누워서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있었다. 이날 밤에 살살 노크만 하던 몸살기운이 본격적으로 찾아와 이불을 껴안고 부들부들 떨면서 밤을 지냈다. 그리고 텐트 바로 앞에 있던 .. 이름도 아직도 잊을수 없는 <올레 흑돼지구이>집에서 풍기는 고기굽는 냄새로 인해, 몸살과 아울러 맨탈이 무지무지 망가졌었다.

가서 사먹으면 그만이지만, 다짐을 어기고 싶지 않아 끝까지 먹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여기서 2일을 텐트속에 누워 앓았다. 다음날에 100여미터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서. 빵과 12개 들이 계란. 우유. 라면두개. 팥이 들어있는 500원 동전 보다 조금 더 큰 전병 6개를 사와서… 계란만 남기고 다 한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는데, 먹으면서도 이게 다 들어가는게 신기했다.

이때쯤 잠잘떄나 휴식때 입던 반바지가 커져서 혁띠를 안하면 그냥 훌러덩 내려가 버리는 기적(?) 을 경험하는데, 집에와서 체중을 재어보니 8키로가 빠진것을 알게 되었다.

 

 

올레 7코스의 종점이 바뀌었다. 이전 완주때는 편지보내는 바람동산이었는데, 그곳에서 좀더 가서 도착하는 도시내의 <올레여행자센터>라는 곳으로. 난 이곳이 무척 맘에 들었다. 1층은 카페겸 식당이고, 2.3층은 게스트 하우스였다.

나는 이곳에서 이번 운행을 마감했다. 원래 8시에 전체적으로 빨래를 수거해서 한번에 세탁을 한다음에 밖에 내어 놓으면 자기꺼 가져가는 것이 룰인데, 내가 입실한게 9시쯤이었다.

2층침대가 있는 다인실이었는데 바지와 양말을 벗자마자 몸에서 짐승의 냄새가 났다. 내 기억으론 짬날때 잠시 수건에 물뭍혀서 냉수만찰만 하면서 일주일 넘게 버텼던게 냄새의 이유였던거 같다.

방쓰는 다른분들께 너무 미안해서 샤워를 마친후 새옷으로 갈아입고 몰래 세탁실에 들어가서 불을 끄고 조마조만한 맘으로 룰을 어기고 세탁을 하는 장면이다. 도전과 힐링이 목표였던 한달여간의 기간중에, 가장 가슴 졸이던 순간이었다. 결국 몰래세탁은 성공했다.

본의 아니게 룰을 어긴것에 대해 <올레여행자센터>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미안해요. 정말 어쩔수가 없었어요.

7코스와 7-1코스. 그리고 6코스의 시작점인 <올레여행자센터> 옆엔 작은 식당들이 있었는데 뭐 그리 추천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예상한대로 가격은 비쌌다. 3화의 총정리에서 거론할 예정이지만 올레코스주변의 식당은 이용하지 않는것이 좋다. 모두 비쌌다) 이번 운행의 종점이라 홀가분한 맘으로 짐정리와 빨래를 마친후 간단하게 뭔가 사먹으려 나갔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하나 했다.

경험 이야기 풀기전에 우선…. 이때 내 컨디션은 한마디로 최악이었고 바닥중 바닥이었다. 몸살기운. 그리고 슬슬 신호가 오는 무릎상태. 강풍에 날아가는 타프 고정하려다 넘어져 다친 오른쪽 다리의 통증 (이 부분은 여행이 끝난 현재 9일차 인데도 쑤신다. 근육부분을 돌에 바로 찍혀서 그런듯) 과 34키로 배낭때문에 무리가 온 허리 등등….)  게다가 그리 잘 먹고 다니지 못했고. 끼니도 자주 걸렀다.

이런 상태에 센터 바로 건너편에 한방닭백숙 집에 보였다. 고기를 한번 먹어줘야 겠다는 생각에 (운행 전 기간동안 재은씨와 고기 한번 구워먹고. 페친님이 쏘신 고기외엔 삼겹살은 먹지 못함. 주로 쌀밥에 김치. 소소한 반찬. 햄 구워먹었던게 전부) 백숙집에 가서 백숙을 시켜서 먹었다.  그리고 인삼주라고 하기엔 좀 부실한 술같은것도 한컵 나오길래 마셔줌.

그런데 … 이걸 먹고 게하에서 자는데 온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후끈후끈 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전에 정글촬영때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잡아먹었던 코브라 백배 독을 가진 바다뱀 먹고 잘때도 겪었던 현상.

” 아. 내 몸이 아주 쇠약해 있었구나. ”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9일이 지나, 이글을 쓰는 지금도 내 몸은 회복이 완전히 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첫날은 배낭 벗고 나서 씻은후, 먹지도 않고 다음날 저녁까지 죽은듯이 내 침대에 누워 잤는데… 끙끙 앓는 소리를 내가 내고 있는걸 내가 잠결에 들었다.

내가 반성하고 분해하는 부분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장비와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했고, 또한 제주도에 가기전에 하루에 스쿼드 300개. 푸쉬업을 100개를 하며 대비를 했지만 결국 나는 이번 운행에서 만신창이 되어서 돌아왔다.

이 실패에 대한 분석은 최종 3편에서 처절하게 자아비판하는 심정으로 고백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했다. 가파도 청보리밭에서 하루를 잘때… 밤새 청보리밭과 바람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녹색의 바다 가운데 서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댓가없이 배풀어주시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친절과 미소도 잊혀지지 않는다.

퇴근하면서 식당 문 안 잠그고 식당에서 맘대로 물쓰고 바닥에 깔고 자라시던 의자 박물관 여실장님. 밭에서 새참드시다 공짜로 밥이랑 반찬 내어주시던 아주머니. 본인 젊으실때 무전여행 경험 얘기해주시면서 드시던 해물라면 나눠주시던 맘좋은 아저씨. 걷다가 드시라면서 치맥파티 끝난후 몰래 남은 닭들 챙겨주시던 레몬트리 게하 간호사 출신 스탭님. 오랫만에 만나서 우체국까지 태워다주시고 맛있는 떡볶이에 서비스로 차랑 김밥 주셨던 … 추억의 장소 뿌리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그리고 그리고…

[su_quote]죽을만큼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즐겁고 행복했다.[/su_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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