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대미 북한 핵무기 공갈협박 시츄레이션” 에 대한 참고

오래전 1962년도에 미국의 정찰선(미국측 시각), 혹은 미국의 간첩선(북한측 시각) 푸에블로라는 배가 원산앞바다에서 북한에게 잡힌다. 미국측은 정찰활동이었다고 하지만, 미쳤다고 북한 영해까지 들어가서 정찰활동을 하냐. 내가 봐도 시발 명확한 간첩질이지. 시발넘들.

휴전협정 체결 50주년(27일)을 앞두고 평양의 근로자들이 (대동강변에 전시)

16일 68년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이 나포한 미국 해군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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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북한이 이 배를 나포를 하자 미국이 발칵 뒤집어 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미국은 북한을 을러도 보고 겁도 주고 별 짓을 다하지만, 북한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중국에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그런데 결국 북한은 중국말도 듣지 않는다. 결국 이 외교전에서 미국은 보기좋게 항복을 하고, 미국대통령은 북한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게된다. 그리고 그 댓가로 미 승무원은 미국으로 되돌아 오지만, 결국 배는 북한에게 돌려받지도 못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참패였다. 물론 국제사회에선 개망신을 당하고…

이 푸에블로 사건으로 인해, 베일속에 가려져있던 북한의 실체가 미국에게 등장하게 된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소위 <개념>이 잡히게 되어, 미국의 대북한 외교 개념이 처음 서는 순간.

한마디로 북한이란 나라는 중국의 헤게모니안에 속해있지만, 한국의 그것과는 달리, 외교에 있어서는 중국말도 듣지 않는 그런 나라구나라는. 당시 이런 시각은 푸에블로 사건으로 인해 불꽃튀는 정보전과 외교전에 참가했던 당시 미국의 고위관료의 자서전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 북한. 북한은 그런 나라다. 한마디로 이 <푸에블로>사건으로 인해 <우린 빡돌면 중국이고 니네 미국이던 말 안들어. 씨발. 한번 해볼테면 해바. 시발넘들아> 이런식이다.

북한을 쳐볼려고 워게임을 몇번이나 해본 미국. 수백만이 죽고 미군사상자만 수십만이 되는 상황이 계속 도출되는 상황에서 요걸 때려줄 수도 없고, 이렇게 저렇게 겁도 주고 을러도 보지만 씨알도 안먹히는데다, 큰형님 중국 눈치도 보이는 상황인데다… 아휴~ 미국. 얼마나 약오를까?

뭐 고구려의 후예들답게 오래전부터 강대국/거대국에게도 절대 고개를 굽히지 않는 그들의 깡다구는 뭐 역사가 증명해주지 않겠어? 일일히 역사책을 뒤집어 보지 않아도 말이지. 외세 불러다 삼국 통일한 우리 블러드 타잎으론 정말 따라갈래야 따라갈수 없는 대단한 깡다구란 말이지. 미국이란 겨우 몇백년 된 신생 국가가 동네 깡패 수준이라면, 수천년 역사의 고구려의 그것은 전국구 조폭의 연륜이다. 감히 우리 한반도의 위대한 고대국가였던 고구려 동지들의 깡다구를 어떻게 따라오겠어. 쓰읍.

암튼 각설하고, 그런 고구려의 후예 북한이 또 최근에 미국을 갖고 놀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미국은 북한에게 외교전에서 62년 푸에블로 사건 이후로 한번도 이겨본적이 없다. 그리고 솔직히 국제사회의 오만방자한 망나니 국가 미국이 북한에게만은 계속 연패하는 모습이 좀 고소한것도 조심스럽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언젠가 조국이 통일되면, 외교랑 국방은 북쪽 형제들이 맡았음 하는 바램도. 푸힛.


“1월 23일 美역사에 수치스러운 날”
[연합뉴스 2005.01.22 18: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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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정일용 기자 =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2일 미국 간첩선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37년 전(1968년) 1월 23일은 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의 역사에 매우 수치스러운 날들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중 앙통신은 이날 `수치를 모르는 미국”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당시 조선 영해에 침입해 정탐행위를 감행하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 호가 이날 영웅적 조선 인민군에 의해 나포됨으로써 미국의 날강도적인 본성이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논 평은 “미제는 파렴치하게도 온갖 거짓말을 꾸며대며 오히려 공화국(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해 나섰다”며 “그러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하는 공화국의 초강경 앞에 결국 미국정부는 정탐과 적대행위에 대해 엄숙히 사죄하고 앞으로 어떠한 함선도 조선 영해를 침범하지 않도록 할 것을 담보한다는 문건에 1968년 12월 서명했다”고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

논평은 이어 “이것은 오만한 미제에 있어서 커다란 교훈으로 됐으나 미국은 수치를 느낄 줄 모르는 나라였다”고 말했다.

푸에블로 호가 나포된 지 1년쯤 뒤인 1969년 4월 대형간첩비행기 EC-121기, 같은해 8월 `직승간첩비행기(헬리콥터)” OAH-23G를 각각 북한 영공에 침입시켜 정찰행위를 하다가 북한군에 격추 당한 사실을 예로 들었다.

이 후에도 서해사건(1974.2), 동해사건(1974.6), 판문점총격사건(1984.11) 등 반북도발을 지상, 해상, 공중에서 30여년 동안 계속했고 최근에는 `신작전계획 5026”, `작전계획 5027-04” 등을 수립, 핵전쟁까지 감행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논평은 “미제가 수치를 느끼고 분별있게 처신할 대신 계속 전쟁열에 미쳐 날뛴다면 푸에블로 호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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