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아옌데”라는 대통령

칠레 정치가. 발파라이소 출생. 칠레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으며 급진적인 학생운동가이기도 했다. 1933년 칠레사회당 창당에 참가했으며, 그 뒤 하원의원, 인민내각의 보건장관·상원의원·상원의장을 지냈으며, 사회당의 중진으로서 활동하였다. 70년 선거에서 인민연합 후보로 출마하여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칠레 정치가. 발파라이소 출생. 칠레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으며 급진적인 학생운동가이기도 했다. 1933년 칠레사회당 창당에 참가했으며, 그 뒤 하원의원, 인민내각의 보건장관·상원의원·상원의장을 지냈으며, 사회당의 중진으로서 활동하였다. 70년 선거에서 인민연합 후보로 출마하여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반제국주의·반과두세력(反寡頭勢力)>이라는 강령 아래 미국계의 광산을 비롯하여 내외 주요기업의 국유화와 본격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쿠바·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개혁정책은 근로자나 저소득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으나, 칠레의 사회주의화를 두려워한 미국정부와 국내의 보수세력으로부터 끈질긴 저항과 압력을 계속 받았다. 73년 9월, 군대와 경찰이 공모하여 일으킨 쿠데타에 그 스스로도 무기를 들고 직접 투쟁하다가 죽었다.

9월11일 새벽 발파라이소 주둔 해군병력들이 발파라이소市의 左翼 인사 3000여 명을 체포하는 것을 시작으로 행동을 개시한 칠레 軍部는 순식간에 칠레 전역을 장악했다. 아옌데는 쿠데타軍의 해외망명 종용을 묵살하고,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宮으로 달려갔다. 여기서 그는 對국민 고별연설을 남겼다.

이것이 내가 국민 여러분들에게 연설하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이 순간 나는 인민에 대한 충성을 목숨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칠레의 군인으로서 맹세를 배반한 자들에게는 도덕적 형벌이 내려질 것입니다. 그들은 힘이 있고 나를 부술 수도 있지만, 사회의 전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본인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누군가 이 암울하고 쓰라린 순간을 극복해 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좀더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 여러분들과 함께 믿습니다. 칠레여, 영원하라!

방송연설을 마친 아옌데는 카스트로가 선물한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쿠데타軍에 저항했다. 쿠데타軍의 전폭기가 모네다宮을 폭격했다. 정오가 조금 지나 쿠데타軍이 모네다宮에 진입했을 때 아옌데는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옌데를 지지하는 무장 민병대들이 간헐적으로 쿠데타軍에 저항했지만, 곧 분쇄되었다.

칠레의 右派 정치인들은 과거 1930년대 초 칠레 軍部가 그랬던 것처럼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위기 극복을 위한 軍部의 일시적인 출동으로 이해하고, 쿠데타를 환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군사정권의 정치적 후견인 내지 자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짧은 기간 동안의 軍政 뒤에는 자신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빗나갔다. 軍部는 左翼 세력뿐 아니라 右翼 정파들도 권력으로부터 배제시키고, 이후 16년간 鐵拳(철권) 통치와 자유주의 경제를 접목시킨 독재정치를 펴나 갔기 때문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