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대학생활.그 추억들 [03] – 오바이트가 살렸다

신입생때 선배란 존재는 정말 공포의 대상이었다. 군기잡는건 당연한 거지만, 당시 우리 선배들은 몽둥이 찜질을 많이 했었다. 그 첫 몽둥이 찜질의 절정은 바로 <신입생 환영회>.

오케스트라 101 연습실(방음되는 완벽한 넓은 공간)에서 방과후에 <신입생환영회>가 있으니 신입생들은 한명도 남기지 말고 남으란 선배의 말에, 이미 줏어들은 정보들로 인해 충분히 우리는 쫄아 있었다.

야.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 그냥 몇시간 견디면 된다. 겁먹지 말자.

그래도 그 악명높다는 고등학교 악대부생활을 해본 혼부는 재훈이가 능글 능글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우리 5명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리고 방과후.. 우린 아무말 없이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으로 우리 6명은 오케스트라 101 연습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마자 우린 … 아 시발. 정말 쫄수밖에 없었다. 굳은 표정의 선배들이 일렬로 서있었고 그 옆에는 우리를 쓰다듬어줄(?) 야구배트가 3개나 피아노 옆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교내 식당에서 사온듯한 숫자를 셀수 없이 많은 소주들과 바가지. 양동이들도 보였다. 누가 이야기를 안해줘도 머리속엔 선배들의 시나리오가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바로 우리윗 선배기수들의 한딱까리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지금은 교수로 활동하고 계신 여러 형들의 얼굴이 몽둥이 찜질로 인해 이미 새빨갖게 상기되어 있었다.

뭐해. 자식들이.. 어서 가운데 한줄로 안서?!

가장 연장자인 영부형이 고함을 지르자, 우린 후다닥 한줄로 섰다. 그리고 선배가 야구 배트를 들었다. 뭐 일장연설이 시작됐다. 별로 앞뒤 안맞는…

에. 그러니깐… 지금의 시대는 민주화를 위해… 그래서 선후배가 한몸이 되어… 우리학교가 어떤 학교냐면… 경제를 살리고… 예술의 그 참뜻은… 내가 이래뵈도 왕년엔… 술좀 작작 마시고… 영어공부 열심히…

HITE 맥주를 히테라고 읽는 놈이었던 그 선배는 참 많은 쓸데없는 말을 하곤, 한손에는 야구방망이를 든 채로 피아노 앞에 있는 소주세트(?)앞으로 용감하게 걸어가더니 소주병두껑들을 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학교안 식당에서 얻어온듯한 플라스틱 물 바가지에 그 소주들을 붓기 시작했다. 한바가지에 3병 반정도가 들어갔다.

마셧!

[#M_ 더 읽기 | 닫기 | 처음 그 잔을 받게 된건 맨 오른쪽에 서있었던 바이올린 하는 대영이였다. 아아… 대영이…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였던 대영이는 예고를 졸업한 녀석이었다. 전공에서 보듯이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 그리고 술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그런 아이..그 아이앞에 몽둥이를 든 선배가 대영이의 코앞에 바가지를 들이대고 있었다.

대영이는 몇번 고개를 숙인채 눈을 깜빡이더니 그 바가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곧 사약을 받는듯한 비장한 표정으로 그 바가지에 입을 댔다. 바이올린만 켰던 그 작고 하얀 손이 소주 3병 반이 들어간 바가지를 들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이게 대학이란 말인가. 이런 좆같은 곳이.

한 두어모금 마셨을까 견디기 힘든 표정으로 대영이가 바가지를 얼굴에서 내렸다. 그러자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와. 이 새꺄.

대영이를 데리고 선배는 연습실 모퉁이로 갔다. 그리고 녀석을 엎드리게 한후, 몽둥이 찜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선배는 이미 이런 일들에 익숙한 모양이다. 자세와 그 강도가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빡 – 빡 – 박자와 타이밍을 잘 조절하는 선배의 테크닉에, 방음잘되기로 유명한 101 연습실에는 거의 스테레오 이어폰을 쓴것처럼 타작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악! 윽! 아야! – 똑바로 안엎드리? 허리 다친다. 똑바리 엎드리! – 아악! 악! 아야! 으윽!

한 50여대를 치고 나서야 매질은 멈췄다. 그리고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대영이는 생애 처음 해봤을법직한 원산폭격을 한채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피아노 옆에 그렇게 널부러져 있었다.

상기된 표정의 영부선배. 지금 돌이켜보면 때려죽여도 시원찮은 그 십새끼의 표정은 군대 첨 들어간날 내무반안을 군화발로 휘젓던 그 조교새끼 이후로 가장 증오스러운 면상이었다. (이후 이 선배와 난 거의 4년간을 으르렁 거리면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모두 그새끼에게 있다.) 난 그의 얼굴에서 짐승을 보았다.

자. 다음. 마셧!

약간 힘들었는지 숨을 고르면서 목소리로 영부형이 바가지를 들이댄것은 성악하는 성현이였다. 지금은 졸업후에 연주활동을 하는 성현이. 능글능글 지금은 불여우가 다 되었다는 소문이 들리지만, 그당시엔 무척 순진하고 착했다.

성현이는 고개를 푹 – 숙이고 있었다. 눈은 울먹울먹 금방이라도 펑펑 울어버릴듯했다. 턱 근육도 떨리고 있었다. 이런 술을 다 마실수도 없지만, 다 마셨다간 생명과도 같은 성대가 남아날리 없다.

두손으로 바가지를 받은 성현이는 차마 바가지에 입을 대지 못하고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때즈음 이제 체력이 다해가는지, 머리를 박고 있는 대영이가 씩 – 씩 –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쭈. 안마셔? 이새끼들이.. 89학번 새끼들 완전히 빠졌구만. 우린 다 마시고 병원 실려갔었어. 이새끼들아. 니네들 남자들 많다고 지금 쪽수로 개기는 거야? 이새끼들 봐라?

영부란 인간은 이런 인간이었다. 마시면 병원에 실려가는걸 알면서 자기네들도 마셨기 때문에 후배들도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 말종. 아직도 난 이새끼가 용서가 안된다. 게다가 이후에 이놈이랑 난 같은 전공교수에게 배우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녀석과 내가 졸업한후 어느 연주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그순간까지도 난 녀석의 면상앞에서 이를 갈고 있더군. 난 잊고 있었는데 내 자율신경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암튼 성현이는 그때까지도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선배가 성현이에게 바가지를 뺏았다. 그리고 녀석의 멱살을 잡는 순간.. 바로 그 순간…

선배님. 제가 마시겠습니더!

서있는 우리를 비롯한 101 연습실안의 모든 눈들이 상성이에게 집중되었다. 상성이.. 작고 통통해서 마라도나 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성악전공자. 머리는 곱슬곱슬해서 고집세 보이지만 참 성격은 좋은 녀석이었다. 가정적으로 힘든 일이 많아서 그런지 무척 시니컬한 부분이 있었고, 나중에 함께 목욕하면서 알게된 사실인데, 녀석의 왼쪽 어깨에는 웬 문신도 본것 같았다.

지금은 이태리에서 잘 잘고 있는걸로 알고 있고, 부모님의 유산을 많이 받아서 제법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는 상성이. 녀석은 한창 어려울때 학비랑 생활비를 벌기위해서 배를 탔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은 거친게 별로 없는 성격을 재학기간 동안 보여줬었다. 근데 이녀석이 갑자기 소리를 친것이었다.

어? 그래? 묵어.

상성이는 선배의 손에서 그 바가지를 받자마자 벌컥벌컥 한숨에 다 마셔버렸다. 마치 물을 마시듯이. 그 순간 선배들 눈이 똥그래 졌다. 난 안다. 선배 지네들도 죽었다 깨도 저렇게는 마시지 못할거란 사실을.

소주 3병반. 그걸 원샷으로 다 마시고 나자 마자, 그 덩치좋은 상성이 몸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빛이 무시무시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술이 몸에 퍼지는지 숨소리도 마치 들녘을 뛰어다니다 잡힌 멧돼지처럼 거칠이 지기 시작했다. 아니.. 녀석은 멧돼지였다. 한 몇분간 숨소리가 그렇게 거칠어 지더니, 붉던 몸색깔이 이젠 검어지기 시작했다. 녀석의 얼굴은 이제 눈만 보이기 시작했다. 살기를 띠다 못해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안될듯한 그 눈… 내가 봐도 너무너무 무서웠다.

선배님. 한잔 더주이소.

상성이의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녀석의 목소리엔 살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 그.. 그래.. 자. 묵어.

영부가 쫄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이전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뒤에 서있던 선배들도 평정심을 잃는것 같았다. 벌컥. 벌컥. 벌컥. 벌컥…. 상성이는 이번에도 그 잔을 다 비웠다. 한번에 소주 7여병을 원샷해버린 것이다. 술을 다마신 상성이는 영부형을 꼬나보기 시작했다. 사실.. 꼬나보기 전에 영부형은 이미 몽둥이를 내려놓고, 머리박고 있는 대영이를 뒤쪽 의자에 앉혀놓은 상태였다. 그렇다. 새끼들은 쫄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이렇게 술을 마시면 사람은 죽는다. 상성이는 아까 그 멧돼지의 그것으로 계속 서있었다. 숨소리는 더 거칠어 졌다. 녀석을 말릴수 없다. 그 자리는 영부를 비롯한 녀석들이 만든 자리이고, 그걸 말렸다간 자기들의 의지를 부정하는 볼쌍스런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러다간 죽는다. 어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근데 바로 그때였다.

선배님. 기분도 좋은데 노래한곡 하겠습니더.

그렇다. 그건 깡이었다. 우리 동기들이 처절하고 치욕스런 기분을 함께 느낄때, 상성이 그녀석은 그 치욕을 견딜수가 없었던 거다. 그리고 녀석은 동지나해와 러시아 해역에서 참치를 끌어올리고 바다와 추위와 싸워대던 그 깡을, 이젠 공부만 하면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던 대학에서 어쩔수 없이 다시 꺼낸 것이었다. 그 깡.. 녀석의 그 깡앞에 들이댈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자그마치 소주 7병을 원샷한 녀석의 그 무서운 깡앞에.

어? 그래. 야.. 이새끼 맘에든다. 그래. 불러봐. 자 모두 박수쳐!

영부는 이미 방자가 되어있었다. 녀석은 초조해 하고 불안해 하고 있었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지만, 이미 단박자로 떨기 시작한 스탭의 불안함으로 녀석의 심리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 있었다. 뒤쪽에 있던 선배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그 상황에서 상성이는 그 큰 손으로 박수를 쳐대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꽃퓌이이는.. 동배백 서엄에에..

노래를 부를때 선배들은 이미 모두 녀석이 서있는 앞으로 와 앉아 박수를 치고 있었다. 상성이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춤까지 춰대면서 제법 흥나게 노래를 불러댔다. 물론 우린 그대로 상성이의 뒤에 쫄아서 서있는 상태였다. 아아.. 상성이 노래가 끝나면 다음은 나다…. 사건이 터진건 바로 그때였다.


푸아아아아아아아악!!!!!!!

녀석이 앞에 앉아있던 영부 이하 선배들의 박수치던 면상에 오바이트를 한것은. 그러고 보니 우린 101 연습실에 들어오기 전에, 학교앞 식당에서 두부와 김치전이랑 곁들여서 비빔밥을 먹었었다. 아아.. 소주와 그 내용물들의 조합의 향기는 정말 대단했다. 게다가 상성이 그 덩치에 참 잘도 먹는 녀석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밥 나오기전에 나오는 생 당근에 된장을 몇개나 씹어먹은 상태다.

상성이의 오바이트를 모두 뒤집어쓴 선배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연습실을 모두 뛰쳐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 오물들이 화장실에서 수습이 안되는지 결국 모두 뿔뿔히 흩어져 집으로 향했다. 나중에 상성이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녀석은 오바이트 할때 골고루 선배들에게 분배(?)하기 위해 제법 노력을 했다면서 히죽거렸다. 그렇다. 상성이는 그런 놈이었다.

그렇게 신입생환영회는 잘 나오는 굵은 똥 바로 끊어버리듯이 중간에서 끝났다. 그리고 선배 지네들도 쪽팔렸는지 그 사건은 함구령이 떨어졌지만, 한 학기가 끝나기 전에는 교수님 이하 타학과 애들도 히히덕 거릴정도로 소문이 다 나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즈음부터 우리가 우리돈내고 마시는 자리 외에 술로 선배들에게 재학기간 동안 고문을 당하는 일은 없었던것 같다. (얼차려는 몇번 받았지만, 이것조차 차후 기술할 89학번들의 쿠데타로 유명무실 해져 버렸다. )

상성아. 지면을 빌어서 정말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잘 살고 있냐? 장가는 갔는지.. 지금 뭐하면서 사는지 … 니 오바이트가 우릴 살렸써. 새꺄.

<89년 대학생활.그 추억들 [03] - 오바이트가 살렸다-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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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89년 대학생활.그 추억들 [03] – 오바이트가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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