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대학축제. 그 추억들

대학 생활의 가장 꽃은 역시 축제가 아닐까. 예대 다니는 우린 그 축제가 좀 특별했다. 예대관에 콘서트홀이 있었던 관계로 아무래도 다른과 보단 좀 화려했지.

지금은 유명 개그맨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도 그때는 나보다 한해 위 선배였는데, 참 재미있게 사회를 보셨더랬다. 예대축제. 과별 장기자랑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대학 최고의 볼거리였었다. 자리가 없어서 콘서트홀 자리는 물론 밖에서 티비로 중계를 하는 사태까지 있었거든.

난 89학번이었는데 우리기수가 이전 보다 가장 남자들이 많았다. 그래도 40여명 여학생에 남자들이 5명이었는데 말이다. (꽃밭속 대학생활.. 맘껏 부러워 하시라) 선배들이랑 우리 후배들이 모두 모여서 머리를 짰다. 계속 무용과가 4년연속 가져가던 장기자랑 트로피를 이번에는 꼭 탈환해 보자고.

머리를 짜다 짜다 만들어 낸게, <늑대의 호수>… 백조의 호수 음악을 그대로 쓰면서, 남학생들이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춰보자는 아이디어 였다. 모두들 그거 좋다면서 박수를 쳤고, 이 프로잭트의 핵심인 구성과 분장을 위해서 차곡차곡 준비와 연습을 시작 했다.

여학생들은 시장에 가서 우리들이 입을 발레복을 구입해 왔다. 토즈까지 모두 무용과에서 빌려왔는데, 정말 발레하는 사람들의 그것이었다. 물론 모두 여자용. 배타다 음악에 뜻이 있어서 입학한 통통한 상성이란 녀석은 어깨에 문신이 있었는데 그게 발레복을 입혀놓으니 그렇게 웃기더군.

그리고 혼을 부는 황수관 박사 닮은 재훈이 녀석은 그당시 유행하던 순악질 여사의 일자눈썹을 그려주었다. 그리고 수업마치고 보름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연습을 했다. 선후배 남자들까지 합쳐서 총 12명 정도가 관악실에서 발레연습을 했다. 물론 코믹하게 막 고쳤다. 서로 연습하면서도 서로 낄낄거리면서 배를 잡고 넘어갔다.

그리고 축제의 마지막날 .. 드디어 예대 장기자랑의 밤…

[#M_ 더읽기 | 닫기 | 무용과 녀석들 무척 자신만만하더군. 무슨 군무같은걸 준비해서 거기에 코믹한걸 넣었는데 지루했다. 우리 과가 바로 콘서트홀 위층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준비한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사전에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았다. 무용과 녀석들이 시작을 하고, 우리가 맨 마지막에서 두번째 정도였는데, 앞서서 애들이 하는동안에 우린 화장을 하고 무용복을 입었다. 그리고 선배가 사온 맥주를 몇병씩 들이켰다. 맨정신으론 도저히 못할것 같아서.

삐애로 만큼 진한 흰생화장. 머리에 쓴 예쁜 꽃관. 빨갛게 칠한 입술. 마스카라. 속눈썹. 그리고 올 누드에 여자 브라자를 입고 여자 팬티에 눈처럼 새하얀 무용복을 입고 발레 슈즈에 흰 스타킹 까지 입었다. 거울을 봤는데 정말 쇼킹하더군. 잘생긴 바순부는 문호는 그래도 좀 봐줄만 한데, 통통한 성악하는 상성이랑 혼 부는 재훈이는 정말 가관이었다.

드디어 우리차례…

깜깜한 무대로 뭔가 하얀 놈들이 막 나오니까, 첨엔 청중들이 수근대기 시작했는데, 불이 확 – 들어오면서 우리가 일자로 선채로 백조의 호수에 음악에 맞춰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보름동안 치밀하게 구성하고 웃기게 만든 늑대의 호수를 추기 시작하니, 박장대소는 물론이고 겁날정도의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이게 폭팔적인 반응이구나… 마지막 피날레인 꽃처럼 한명씩 예쁘게 다리를 있는대로 찢은 상태에서 두팔을 앞으로 고즈녁하게 모아서 앉을때 느낀 느낌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사진학과 녀석들은 갖고 있는 필름을 모두 다 써버렸다고 한다. 물론 우린 드디어 우승을 했다.

다시 연습실로 올라와선 서로 신나서 환호성을 지르고, 옷을 다 벗고 화장을 지운다음에 우승금 100만원을 갖고, 12명이서 학교및 단골술집에서 술을 다 마셔버렸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그냥 술술 들어갔다. 교수님들도 오셔선 너무 재미있었다고 그 큰돈에다 격려금까지 주셨다. 정말 기분이 째지는 밤이었다. 그리고 버스가 끊기기 전에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탔는데 축제 술판이 함께 파하는 터라, 적지 않은 학교애들이 함께 버스를 탔다. 그런데 날 보더니 버스안에서 막 박수를 친다.

아.. 이런게 유명세구나. 역시 유명해지는건 한순간 이구나. 거참. 허허.

좀 이상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술도 한잔 됐겠다,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버스를 타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가는 사람들도 나를 보고 막 웃는다.

이사람들도 다 보러왔었구나. 티비로 생중계 할때 교문앞에서 봤나?

집에 다왔다. 문을 열어주시는 어머님이 날 보더니 꺄르르 넘어가신다. 뭘 잘못드셨나? 왜 저러시지? 에잉. 맥주를 많이 마셨는지 방광이 터질려고 한다. 화장실 가서 오줌을 누면서 거울을 봤는데 나도 꺄르르 넘어갔다.

잊어먹고 속눈썹을 붙이고 왔더군. 그것도 엄지손가락만큼 큰 공연용 속눈썹을.

사족) 늑대의 호수는 대히트를 쳐서, 그후로 3년동안 예대축제때 우려먹었다. 인기가 좋아서 대운동장에서 하는 학교축제에는 다 불려갔고, 여대에서도 러브콜이 왔는데, 그건 도저히 못할것 같아서 사양했다.

사족2) 아이아빠가 되어버린 지금. 가끔 어딜 가거나 라디오.티비 같은데서 백조의 호수 음악이 나오면 혼자서 미친넘처럼 키득거리면서 웃는다. 추억이란건 그런건가 보다. 많이 부족하고 고뇌하고 방황했던 그시절. 하지만 그때만큼 재미있고 아름다운 때는 없었던것 같다. 청춘은 꽃과 같아서 지고나서야 만개(滿開)의 소중함을 깨닳으니 참 통탄스러울 뿐이다.
_M#]

7 thoughts on “89년 대학축제. 그 추억들

  1. “청춘은 꽃과 같아서 지고나서야 만개(滿開)의 소중함을 깨닳으니 참 통탄스러울 뿐이다. ”
    읽고있으려니까 괜시리 눈물이 나네요~~

  2. 핑백: WHAN_GU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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