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크리스마스. 나의 크리스마스.

2004년 12월 6일. 내방 앞동의 어느 집에서 반짝거리는 트리

내게 있어 크리스마스는 “미국이란 나라의 향수”다. 국민학교때 우리 가족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셨던 미군아저씨(런아저씨)의 집에 가서 크리스마스를 맞았었다. 전형적인 미국의 크리스마스…. 당시 산처럼 보이던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쌓여있던 수많은 선물들과 식사전에 기도를 하던 의식(당시 우리가족은 모두 무신론자였지)도….

런 아저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우리들을 불러, 트리밑의 선물을 하나 하나 나눠주셨고 한아름 되던 그때 선물을 가지곤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당시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이었다.

이후 런 아저씨는 한국의 티비모델(양말선전에 한번 나왔던 분으로 기억한다)분과 결혼을 하셔서 미국에 가셨고, 아버지는 이후 크리스마스 행사를 씨맨스 클럽(외국인 전용 레스토랑)이나 미군부대 안에서 보내게 하셨다. 그건 내가 대학다닐때까지 계속되었었는데 그때 당시엔 그게 참 이해가 안갔다. 당시 현실(?)에 눈을 뜰때라 그건 정말 도망가고 싶기 까지 했었다. (미군 장교식당에 미군보다 더 쪽수가 많게 모여선, 서로 눈치보고 두리번 거리면서 식사를 하는 우리 동족들의 모습도 정말 싫었고…)

하지만 겨우 걸을줄만 아시던때에 6.25를 맞아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셨던 당신. 부산으로 내려오셔서 연탄배달을 하시고, 별이 보이는 집 지붕아래에서 잠을 청하셨던 청년기. 희망이라곤 없으셨던 당시 따듯한 정을 느낄수 있었던것은 당시 임시수도 부산에서 미군들이 주관하던 크리스마스때가 아니었을까.

얼마전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를 보곤, 임시수도 부산에서 미군들이 주관하는 크리스마스 행사때, 수천명의 전쟁고아들과 아이들이 죽처럼 끓인 전지분유와 초컬릿. 그리고 빵을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볼수있었다. 때국물이 흐르고 코가 늘어붙은 그 얼굴들이 그날은 아주 행복해 하는 모습도 볼수 있었거든. 그 순간 아버지가 이해가 가더라구.

당시 미군들은 임시수도 서울에서 성대한 크리스마스 행사를 많이 했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는 미군들이 빠질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제법 성공해서 기반을 잡은 당신의 위치… 그런 추억들으로 살아가는 당신의에게 그런 회항(回航)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겠지.

그런 기억 또한 대물림을 하는것인지, 아직도 내겐 적지않은 크기로 남아있는 크리스마스. 그리고 미국에 대한 향수. 그리 특별하거나 특권적으로 묘사하고 싶지는 않지만, 반짝반짝 점멸하는 트리를 볼때면, 아직도 난 런 아저씨 댁에 있던 산처럼 큰 트리가 기억난다.

사족)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의 크리스마스는 .. 별 감흥이 없다. 단지 이번달 은행대출분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나면, 그 순간 이후부터 난 크리스마스겠지. 그것도 매달매달 말이지. 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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