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한계와 컴플렉스

도올의 한계는 그의 그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사유가 규정되어 나오는것이 아니라, 그의 사유들을 위해 방대한 지식들이 이용되며, 때로는 조작(노자를 웃긴 사람이란 책 참조)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사유는 다분히 입신양명을 꿈꾸며 외지에서 왕의 부름을 기다리는 선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그런 권력들에 대해, 구애과 토라짐을 반복하고 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그의 두가지 컴플렉스 때문인데, 자타가 인정하는 천재 컴플렉스와 아울러 역사 컴플렉스가 바로 그것 이다. 그는 언제나 그가 딛고 있는 역사에 있어서 중앙에서 철저히 배제된 이른바 주변인(周邊人) 이었다. 그는 그런 이유로 인해 역사의 가운데에 있는 사람과 현장들을 부러워 하고 흠모하며, 기회가 있을때 마다 그 가운데에 서거나 편입(編入)되기를 꾀한다.

최근까지의 그의 글과 행위(최근의 기자활동)를 통해 보아도, 어떻게든 그 역사의 가운데에 편입되려 애쓰고 있는 듯 하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동아에 10년전에 기고했던 <노태우 대통령에게 아뢰옵니다> 라는 글 외에, 자신의 문화부 장관으로 기용해달라는 글을 기고했다가 정권으로 부터 반응이 없자, 하루아침 그 태도를 바꾸어 정권을 비난하는 글을 기고한 그의 행보와 아울러….

역사의 격동의 현장이나 인물을 탐방할수 있는 권력을 지닌, <기자>라는 언론 권력에 편승해, 그의 텍스트를 끼워넣는 형식으로 영합(迎合)하는 옷바꿔 입기 방식도 스스럼 없이 사용하는 비굴함을 보인다. 또한 이런 격동기속의 극적인 편승을 위해 그는 기꺼이 (지식인이 경계해야함에도 불구한) 쇼맨쉽까지 갖추는 열의를 보인다. 그는 은둔형 학자라고 하지만, 그 누구보다 미디어를 잘 이용하는 지혜로움도 그는 그리 숨기려 하지 않는듯 하다.

결국, 그의 욕심과 컴플렉스로 인해 그의 그 방대한 지식들은 자신의 일신을 위한 사료로 전락해 버렸으며, 또한 그런 그로 인해 그는 역사를 그의 그 대단한 학문들로 뚫어보는 학자가 아닌, 역사의 시류에 묻혀 흘러다니는 필연적 오류들을 생산하며, 그리 존경스럽지 않은 컴플렉스 투성이 학자로 자리매김 해 버린 것이다. 이것의 세칭 <지식 장사꾼>으로 추락해버린 지금의 그의 운명이며 한계이다. 그래서 그는 학자임에도 무겁지 않다. 그래서 그는 무척 가벼울수 밖에 없다.

사족) 도올의 문제가 되고 있는 당시 기고는, 그의 당시 역사 해석의 오류일 뿐이지지,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성의 부재나 사기행각은 아니란 내 생각. 그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그의 그런 이유들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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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이전 위헌판결’ 등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예민한 정치사안이 터질때마다 글을 써 주목을 받아온 도올 김용옥씨.

그가 이번에는 10년도 더 된, 1990년 신동아 1월호에 기고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 관한 칼럼때문에 인터넷에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도올은 ‘노태우대통령께 아뢰옵니다’라는 장문의 이 칼럼에서 “6.29선언은 역사적 필연이자 노태우의 실존적 결단”이라고 높게 평가한 뒤 노 전 대통령에게 “개인의 의리보다는 역사의 의리를 ㅤㅉㅗㅈ아 5공을 청산하라”고 주문했다.

▽“내 아내 보다 노태우를 더 사랑한다”▽

하지만 정작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칼럼의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표현 방식.

“나는 나의 아내를 사랑한다. 그런데 나는 이 순간 노태우를 더 사랑한다. 노태우는 이미 개인이 아니다. 그는 개인은 개인이로되 보편 세계사적 개인이다. 철학자인 나는 그 노태우라는 개인의 보편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나의 아내보다도 더…, 아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도올은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색다르게 풀이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갓 태어나 우주의 기를 쐰 당신에게 태우(泰愚)라는 매우 좋은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제가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관계로 작명도 많이 하고 성명철학에도 일가견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오나 태우라는 이름은 썩 좋은 이름이며 미래에 대해 형안이 있는 자의 작명이 옳습니다. 당신께서 대통령이 되신 것이 아마도 이름 석자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그러나 곧바로 “태우는 대지(大智)의 태우인가, 정말 문자 그대로 별 볼일 없는 큰 바보인가? 민주의 운세를 휘잡으면 태우는 큰 지혜가 될 것이며, 왕정의 잔운에 엎히우면 태우는 큰 바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태우는 조선의 자랑스러운 대통령”▽

도올은 또 노 전 대통령의 헝가리 국회 연설을 거론하며 “(연설할 때)모짜르트의 오페라 연주를 바라보는 ‘살리에르’처럼 저는 위대한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민중혁명의 전기를 마련하신 우리 조선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그다지도 멀던 동쪽 동토의 심장부에서 열연하시는 모습을…”이라고 칭송하면서도.

“그런데 그 모습을 흠모하는 제 가슴엔 서운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무엇인가 짙은 감동과 감격이 전달되질 않았던 것입니다. 저기 서계신 저 분이 진정 이 역사의 고뇌와 함께 성장한 분이시라면, 이 민중의 쓰라림을 자기 삶 속에서 구현해온 분이시라면, 영국인에게 ‘처칠’처럼, 인도인에게 ‘간디’처럼 그런 분이시라면…”이라고 아쉬움을 덧붙였다.

도올은 6.29선언과 관련, “불알친구인 전두환 대통령의 믿음을 저버리고 국민적 열망인 직선제개헌을 따낸 실존적 결단”이라며 “그 감격은 8.15해방의 감격보다 더 짙은 ‘의식화된’ 거국적 감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의기양양하게 제 고향 이순신 사당이 있는 데까지 둘러보고 왔지요. 우리 모두는 당신의 결단을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제 은사선생님은 ‘노태우만세’를 끊임없이 외치며 감격의 술을 퍼 잡수시다 못해 코가 다 깨졌으니까요.”라고 표현했다.

▽“전두환은 궁예, 노태우는 왕건”▽

도올은 이어 ‘변소간에 앉아 있으면 쿠린내가 나지 않는다’면서 용기를 갖고 5공과 군인정치를 청산하라고 주장했다.

“혹자는 전두환씨와 당신을 궁예와 왕건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87년6월 전씨가 당신을 대통령후보로 지명했을 때 당신의 두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것은 친구의 우정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아니라, 그동안 친구 두환이 밑에서 감내해야만 했던 수모와 불확정적 상황이 당신의 지략으로 막을 내리는 순간에 핑 도는 감회, 그리고 삶의 마지막 성취인 대권을 눈앞에 둔 감격의 눈물이 아니었겠습니까? 폭군 궁예 밑에서 새 왕조 창건의 찬스만 노리고 있었던 덕장 왕건의 수모와 야심! 우리 국민은 환히 다 알고 있지요.”

“전두환, 정호용, 박준병은 물론 당신도 죄인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음으로서 당신과 친구들을 용서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죄인들의 의리를 처절하게 배반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배반을 통해서만 죄인들은 역사의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 자신이 7공 앞에선 백담사의 운명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가 보장하겠나이까?”

도올은 5공 청산을 위해 변명이 아닌 회초리를 맞으라며 “광주 금남로에 높은 제단을 쌓고 어떤 무명의 할머니로 하여금 전두환씨의 종아리에 피가 맺히도록 때리게 하십시오. 그리고 전씨가 내려오면 친구인 당신이 바로 그 자리에 올라 회초리를 맞으십시오. 그대의 눈에는 승자의 눈물이 고일 것이외다!”라고 충고했다.

도올은 이어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너무도 울고 또 울었습니다. 당신의 편인 민중의 신의를 배반하지 마십시오. 민중과 학생의 욕을 얻어먹더라도 저는 당신의 아름다운 6공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칼럼을 끝맺었다.

▽“속뜻을 보라” “정권에 아부하는 지식인” 인터넷 논란▽

그러나 이 글은 일부 인터넷과 언론에 많은 부분이 생략된채 소개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누리꾼 ‘qjelee’는 “도올이 노무현 대통령에게만 아부하는 줄 알았더니 용비어천가를 불러 댄 역사가 길구먼, 이쯤하면 곡학아세, 면종복배의 대표적 인물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wolf’는 “도올이 자칭 사상가라고 말하지만 시대의 조류를 타고 권력에 아부하는 것 이외에 민중의 아픔을 위해 노력하거나 시대의 부름에 응하다가 옥고를 치렀단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chinsu’도 “바뀌는 정권마다 아부하며 사는 대표적인 지식인. 만약 보수 진영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도올(石)이 과연 그 에게도 아부성 글을 쓸 것인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글 잘 올렸다’는 “그 당시 감히 대통령에게 이런 글을 올릴 생각이나 할 수 있었던가? 그 당시 상황과 글속에 있는 내용을 자세히 되새겨 보라”고 반박했다.

‘노동1호’도 “도올의 글은 노태우에 대해 지나친 겸손의 극칭을 사용했음은 분명하지만, 그 메시지는 지극히 옳은 말 뿐임으로 이 글로 어용 지식인 운운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라고 주장했다.

‘독자’는 “그 시절에 도올과 신동아가 이 글을 쓰고 올리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아는가”라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전율까지 느꼈다. 격려의 박수라도 쳐야 도리”라고 주장했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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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도올의 한계와 컴플렉스

  1. 이곳 쥔장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도올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지만 명확하게 표현할수 없던 이야기들을 통쾌하게 짚어주신것 같습니다요.

  2. 하지만 부분이 전체가 될 수 없듯이 도올선생의 이러한 일면도 전체의 한 부분일거라고 생각해봅니다. 그의 방대한 지식은 ‘지식장사꾼’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그러한 지식장사꾼도 이 세상에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체를 아울러서 부분을 설명해주는 그의 모습은 전율까지 일으키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그의 이러한 모습은 끊임없는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이룬 결과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음번 정권때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사뭇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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