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소주


처음 술을 배운날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 하다. 대학 입학해서 전공교수를 배정받은날, 우리 클라스가 뒷풀이를 하던날 이었지. 고등학교때 까지는 맥주도 마셔보지 않았던 내가, 그날 밤 아마도 소주 3병은 마셨었다. 거의 반강제 였었지. 교수나 선배나 지금 생각해도 개십새끼들이었다. 반죽음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서 기절하다시피한 나를 뉘이면서, 아버지는 밖에 있는 선배들 들으라고 고함을 고래고래 치셨었지.

그리고 그이후로.. 대학교를 졸업할때 즈음, 위에 구멍이 한 두어번 났었고 자다가 가끔 위산이 역류해서 캑캑 거리는 수준까지 발전 했었구.

그런데 참 희안한게 군대야. 군대가니까 그렇게 아프던 위도 안아프고 술이 막 말술로 들어가더라. 안주는 새우깡이나 반쯤 식은 짬뽕국물이었는데도 오바이트도 안나오더군. 군대때는 내가 술을 마신게 아닌것 같아. 깡이랑 악이랑 분노가 마신것 같아.

그리고 뭐 .. 사회나와선… 그냥 적당히 마신것 같다. IMF 터지기 전까진. 적당히 분위기 맞추면서 적당히 몸생각 해가면서.

[#M_ 근데… | 근데… |

요즘은 내가 먹고 싶어서 마신다. 그동안의 정황을 아는 내몸은 이제 내가 마시고 싶을때만 술을 찾는다. 그래서 잦지는 않지만 제법 마시는 내 몸이 참 대견하다.

내가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술. 내가 먹기 편해서 먹는 술의 각본은 대충 이렇다. 안주는 뭐 대체적으로 고기다. 냉장고 안에 있는 고기들 대충 다 끌어모아선, 냉장실에 있는 파슬리. 감자. 버섯 남은 것들 싹싹 끌어 모아 짬뽕으로 프라이팬에 넣고는, 적당히 소금뿌리고 갈은 마늘 넣곤 죽어라 볶는다.

소주는 물컵에 주로 담아서 먹는데, 소주 한병은 물컵 두잔정도면 다 비워지는 정도. 3-4번 샷에 한병을 다 비운다. 이렇게 두병을 마신다. 이젠 쓰지도 않다. 그냥 술술 들어간다. 한 10분이면 두병 다 마신다.

그리고 오래전엔 그렇게 좆같이 보이던 술처먹고 전화하는 인간이 바로 내가 되버렸다. 취하기전에 절대 전화하지 말자고 어금니 꽉 깨물고 마시기 시작하면, 어느새 취해선 전화를 걸고 자빠졌다. 시발.에이.한심한넘.


오빠. 나 슈퍼갈건데, 뭐 필요한거 없어?
소주나 두병 사와라.
오빠. 냉장고 안에 맥주 있잖아. 됐어. 다녀올께.

그리곤 다녀와서 가영이 씻기고 잠든 꼭지. 밤에 출출해서 시리얼이나 먹을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소주 두병이 냉장고 안에… 사다놨구나. 근데 왜 사왔다고 말은 안했을까.

그런데 갑자기 그순간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라는 영화가 이해가 되버렸다. 여주인공은 무지 남주인공을 사랑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술을 사다준다. 몸생각해서 이리 저리 노력도 해보지만, 결국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술을 마시게 해준다. 몸생각하는것도 사랑해서이고, 술 사주는것도 사랑해서 였구나. 좆도 모를때는 왜 저년이 저렇게 죽을줄 알면서도 술을 사다줄까 이해가 안갔었거든.

사랑이란건.. 참 알다가도 모르는 거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그것은 신의 경지의 것이기 때문에 하부구조의 인간의 논리로 분석이 안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좆도 아닌 인간이 그걸 분석한다는 거 자체가 모순이다.

냉장고속의 소주 두병이 웬지 내게 이렇게 말하는것 같다.

꼭지는 아직도 너를 사랑해. 이 바보야. 근데 좀 작작 처먹으래.

인간의 언어라는 펜촉으로 표현하지 못할 더더욱 섬세한 것들이 이세상엔 너무 많다. 그 섬세한 것들은 영화라는 언어속에도, 음악이랑 그림속에도 종종 숨어있다. 오래된 악기가 섬세한 연주를 더 잘 표현하듯이, 나이 먹어갈수록 느껴지는 이 감성들.. 억지로 씨부렁 거릴려고 하지 말자. 독일 어느 철학자 말마따나..
_M#]

9 thoughts on “아내와 소주

  1.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가 아니라 “베니스에서 죽다”를 보세요…
    개씹쌔뀌들이 운영하는 이 조까튼 세상을 수수방관할 수 밖에…

  2. 근데 감독님. 전 이 개십쌔뀌들을 응징하고 싶거든여. 졸라 제게 리스크가 와두여..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여? 일본도로 하고 싶거든여. 권총도 깔끔하고 좋지만서두…

  3. 때를 놓쳐서 이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맘에 확 다가오네요. 보아님과 피맨님의 글로 왜 제가 뒤로 자빠졌을까요? 유쾌한 글은 아니지만, 왠지 위트있는 꽁트를 본것 같네요.
    ” 개씹쌔뀌들 ”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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