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국무장관의 방한에 부쳐…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가 1939년 만주 국경 분쟁 시 소련군에 붙잡혀 붉은 군대(Red Army)에 강제로 편입됐다. 그 다음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 독일군은 그를 대서양 방벽(Atlantic Wall)을 건설하는데 강제 투입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말하는 언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판명되었으며 미 육군 정보부대에 자신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 해안에서

[#M_ more.. | less.. |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카랑타 마을에 낙하한 미 101공정 여단 506연대 2대대 E중대 1소대 부소대장 로버트 브루어 중위는 해안 경계를 서고 있던 4명의 아시아계 독일군을 포로로 잡고 놀랐다.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독일어를 알아 듣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 이들이 한국인임을 알고는 더욱 놀랐다. 1938년 조선에서 강제 징집되어 1939년 일본과 소비에트가 벌인 몽고 국경 노몬한 전투에 보내진 이들은 다시 소비에트군에 잡혔다. 이어 1941년 모스크바 근처 쿠르스크 전투서 독일군에게 다시 생포돼 히틀러의 수비군인 된 것이었다.

브루어 중위는 그 후 50년 뒤인 1994년에 나온 스테판 앰브로스의 ‘D-데이, 2차대전의 극적인 전투’를 위한 인터뷰에서 그날의 충격을 담담히 말했다. “그들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한국으로 돌아갔겠지요. 그들은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에 남북한 어디에 징집돼 다시 싸웠을까요? 그들은 북한군이 되었다면 미국군과 다시 싸웠을지 모릅니다. 20세기 변화무쌍한 전쟁의 상징이 아니겠습니까?” 브루어 중위는 ‘D-데이’의 작가 앰브로스가 ‘전우'(2000년 스필버그가 제작한 TV시리즈물)를 쓸 무렵인 92년, 대령으로 예편되었다. 동북아에서 CIA를 돕는 일로 복무한 그였다.

아이젠 하워, 닉슨 대통령의 평전을 쓴 앰브로스는 ‘D-데이’를 쓰고 난 58년 후인 2002년 10월 폐암으로 죽었다. 그는 ‘미국의 전쟁’, ‘서부개척사’ 등 미국인에게 가장 많이 읽힌 30권의 책을 쓴 작가이며 뉴 오레앙스 대학 역사학 명예 교수였다.

‘히틀러 독일군 속의 코리안’은 94년 앰브로스의 책이 나온 후 끈질기게 추적되고 있다.‘forum.axishistory.com’에는 2002년 12월 이들 4명의 코리안 독일군에 대한 사진과 함께 세계의 군사 역사 탐구자들에게 “그들을 찾았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axishistory.com’에는 ‘독일 군복을 입은 코리안’의 행방 찾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회가 연일 떠들고 있는 ‘친일 규명법’에는 로버트 브루어가 잡은 ‘독일군복의 코리안’ 처럼 한(恨) 많은 한국인에 대한 논의는 없다. 예를 들어, 1954년 5월 11일 오키나와 비행장 서해상에서 특공기를 몰아 산화한 가미가제 조종사 탁경현(卓庚鉉 ㆍ일본명 : 미츠야미 히로부미) 일본군 소위가 ‘친일인가, 애국자인가’에 대한 논의도 없다.

9월 10일 나온 오오누키 에미꼬(위스콘신대 연구 전임 교수)의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를 옮긴 광운대 일본학과 이향철 교수(히토츠바대 경제학 박사)는 24세로 전사한 탁 소위에 대한 이야기를 추적하다 눈시울을 붉혔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20여년간 일본 근대를 연구한 그는 이전까지만 해도 특공대 속에 한국인이 있었다는 것은 ‘친일’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사쿠라가 지다’의 저자 오오누키 박사가 ‘사쿠라’라는 일본어의 상징을 조작, 오용해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학도병 중심의 특공대를 만들어 전세를 뒤집으려 했다는 논거에는 찬성하면서도 석연치 않았다.

그는 육군 특공대의 훈련기지가 있는 가고시마 현 치란에서 특공대의 활약상을 다룬 ‘반딧불이(호타루)’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팻말 옆의 작은 돌비석을 발견했다. “아리랑 노랫소리로 멀리 어머니의 나라를 그리며 진 사쿠라 사쿠라”가 적혀 있었다. 비석을 세운 이는 설명했다. “한반도의 유족들은 황군으로 죽은 특공대원이기 때문에, 한국의 처지가 어려운 것을 알고, 일본인이야말로 진심으로 이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해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일본 특공대에서는 1944년 10월 25일부터 3,843명이 산화했다. 이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16명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모두 17∼27세의 젊은이로 연희, 경성법률, 교오토 약학전문대학 출신 등 엘리트들이었다. 특히 ‘특공대의 어머니’로 불리는 육군 특별지정식당 토메야의 여주인 토리하마 토메와 그의 딸 레이꼬가 보고 느낀 탁경현 육군 소위의 ‘조국’과 ‘모국’에 대한 염원, ‘사쿠라’대신 ‘아리랑’을 택한 이야기 등은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코오토 대학 약학부 출신인 탁경현은 1920년 경남 사천군 서포면 출생으로 어릴 때 일본에 왔다. 그는 1943년 육군비행학교 치란 분교에 특별 조종 견습 사관으로 입교 당시,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나는 조선인입니다”라고 밝혔다. 1945년 5월에 비행 학교 졸업 후 1년 반만에 다시 치란에 나타났을 때 그는 특공대의 지원자였다. 과묵하고 고독한 그는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그는 사이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잃고 ‘모국’ 또는 ‘조국’까지 잃은 조센진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연로한 아버지만을 둔, 그리고 ‘사쿠라’ 대신 ‘아리랑’을 죽음의 시로 택한 조센진이었다.

그는 출정 전날 토메야 식당에 나타나 토메와 레이꼬에게 말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니, 조선 노래, 아리랑을 부르고 싶다. 불러도 됩니까?” 그는 군복 깃을 세우고 부끄러운 듯이 모자를 당겨 얼굴을 가린 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 토메, 레이꼬, 탁경현은 부둥켜 안고 대성 통곡을 했고 그의 모자 밑으로는 눈물이 비오듯 했다.(도쿄에서 ‘사스마오고조’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레이꼬의 회고)

노르망디의 독일 군복 차림의 코리안, 아리랑을 부르며 산화한 특공대 조센진. 논의중인 ‘친일 규명법’에는 이들의 한 맺힌 모국애, 조국애도 규명되어야 한다.

– 박용배(언론인)

루벤스가 그린 안토니오 꼬레아
「조선 남자」는 1983년 11월 29일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인 32만 4000파운드(약 6억 6000만원)에 팔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루벤스는 이 드로잉을 회화를 위한 습작이 아니라 독립적인 완성작으로 제작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림 속 주인공과 어떤 경위로 접촉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데 1979년 국내 한 일간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이탈리아 남부 카탄차로 인근에 위치한 인구 1천여 명 남짓의 알비(Albi)라는 작은 마을에 코레아 성씨들로 이루어진 집성촌이 있는데, 이들의 조상이 바로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에게 노예로 팔려 로마에 와 정착한 ‘안토니오 코레아’란 이름의 조선인이라는 내용이었다. 민족의식이 남다른 한국인들에게 이 기사는 흥미롭고도 놀라운 사실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4년 뒤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의 드로잉「한복 입은 남자」가 경매에서 고가로 팔린 사실이 국내에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이 그림의 주인공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기 시작하였고, 자연스럽게 안토니오 코레아와의 관련성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안토니오 코레아의 여정을 예상하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듯 하다.

들도 산도 섬도 죄다 불태우고 사람을 쳐죽인다. 그리고 산 사람은 금속줄과 대나무통으로 목을 묶어서 끌고 간다. 어버이 되는 사람은 자식 걱정에 탄식하고 자식은 부모를 찾아헤매는 비참한 모습을 난생처음 보게 됐다. 적국인 전라도라고 하지만 검붉게 치솟아 오르는 연기는 마치 이런 상황을 분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감옥에 넣어 물을 먹이고, 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달군 쇠를 대어 지지는 것은 이 덧없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일본에서 포르투갈 상인들이 왔는데 인상(人商·인신매매상)도 있다. 그들은 본진의 뒤에 따라다니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들여 줄로 목을 묶어 모아서 앞으로 몰고 가는데 잘 걸어가지 못하면 뒤에서 지팡이로 몰아붙여 두들겨 패댄다. 아방나찰이라는 지옥귀신이 죄인을 벌주는 것이 이와 같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다.

– 1597년 6월 일본 구주 안양사의 주지 게이넨이 우스키성의 영주 오오타 히슈우의 군의관으로 조선에 와 8개월 동안 목격하고 경험한 <일일기>(日日記)의 내용 중

인용: 이순신 내부의 적과 싸우다..중에서


제발 외세 똥구멍좀 그만 빱시다. 국민들 운명이 위의 자료들처럼 요리조리 왔다갔다 하잖수.중국에서 사신이 올때나, 지금 미국에서 사신이 올때나 암튼 열심히 빨아주고, 뭐 얻어먹을거 없나 정신이 없는 나라꼴 보니 한심하고 안타까와서 하는 말이오. 강해지는게 정녕 그렇게도 두렵소? _M#]

2 thoughts on “파월 국무장관의 방한에 부쳐…

  1. 저 `독일 군복을 입은 코리안`의 이야기는..부끄럽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나는 건데요. 올해 내한도 한 꽤 나이드신 일본 출신의 재즈 연주자 토시코 아키요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재즈신에 데뷔후 바로 낸 작품이 孤軍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필리핀인가…에서 2차대전이 끝난 줄 모르고 계속 무인도에서 산 일본 군인에 관한 일종의 다큐 음악이었습니다. 의도를 했건 아니건 재즈 신 사이에서는 그 앨범의 제목이 궁금해서 찾다 보면 자연히 저러한 이야기를 알게 되겠죠. 어찌되었든 일종의 `사정 알리기`로써 저게 작용한 것이라 했을때요.

    저희는 무얼 했던 걸까요.

    (빌려쓰던 블로그 서버가 폭파되어서 트랙백 대신 여기에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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