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해야 하는것들에 관하여

“사진의 생명력은 논리 이전의 감동에서 나오는 것이다.”

때론 세상의 정의가 불한당처럼 여겨진다
최민식·조은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헐벗고 가난한 사람을 카메라에 포착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극빈층을 너무나 선명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한때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작품을 압수당하기도 했다는 사진가 최민식.

사진가 최민식의 인생을 확 바꾸어 놓은 것은 1955년에 우연히 접하게 된 스타이켄의 <인간가족 The Family of Man>이다. 그 책의 갈피에는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감동적인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당시 그는 오래 전부터 목마르게 기다리던 소식을 접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때부터 그의 카메라는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치열하게 움직였다. 거기에는 소외된 이웃이 있었고, 그는 인간의 삶을 밝히기 위한 작업을 계속 해나갔다.

사진가 또한 가난했다.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좌절과 절망을 여러 차례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까지 돈을 위한 사진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가난과 불평등 그리고 소외의 현장을 담은 자신의 사진이 ‘배부른 자의 장식물’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오로지 진실한’ 사진예술 작업이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오히려 그는 팔리지 않는 사진에 미칠 수 있었던 점, 가난한 삶에 공감하며 함께 아파하고 슬퍼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 시인 조은의 글이 들어간 사진집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샘터 펴냄)를 내며 독자들에게 다짐했다.

노상에서 굴을 팔다가 '정의'라는 힘에 의해 끌려가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다(1972년 작품)” tt_link=”” tt_w=”374px” tt_h=”478px” tt_alt=”” />

[#M_ 내용 더보기| 닫기 | 이 책을 출간하면서 사진가는 새로운 체험을 했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핵심적인 의미’를 발견한 모양이다. 사진가는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인 조은씨가 내 사진에 새로운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어 준 것이 그것입니다. 조은씨는 내가 미처 사진 속에서 발견해내지 못했던 것들, 소소하지만 살아 있는 의미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불러내주었습니다.”

시인이 사진에 글을 입혔기 때문에 독자들이 사진 속의 인물과 그 공간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사진가는 믿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축복된 일이라고 했다.

가령 노상에서 굴 파는 아주머니가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모습이 담긴 사진에는 시인의 이런 입김이 들어가 있다.

‘불순함이라고는 없는 노동에 저토록 수모를 당해야 하다니/때로 세상의 정의가 불한당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누나 등에 업힌 채 어머니 젖을 먹고 있는 젖먹이 사진에는 이런 입김이 들어가 있다.

‘왜 어머니의 팔은 아이를 품어줄 수 없는 것일까요? 왜 어린 소녀는 힘에 겹게 누군가를 업고 있는 것일까요? 왜 업힌 아이는 불평 없이 먹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을 먹고 있는 소녀의 사진에는 이런 입김이 들어가 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의 아이도 배가 고팠나 봅니다.’

시인은 사진가가 찍은 사진에 걸맞은 짧은 글을 쓰는 작업을 마치기 전까지 장르가 다른(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 사진가와의 만남을 뒤로 미루어 두었다.

시인은 “평생 한길을 걸어온 그를 작업에 앞서 만나면, 그의 정신력에 눌려 내 몫의 일이 힘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 일본을 거쳐 부산에 정착해 비주류의 고독한 작업에 몰두한 사진가 최민식은, 지금까지 ‘인간’ 시리즈를 열두 권이나 펴낼 만큼 늘 ‘인간’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어 작업했다.

그의 작품성은 오히려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았다. 심지어 영국 <사진연감 Photography Year Book>에 작품이 수록되고 ‘스타 사진가’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밟아주지 않는다’ 등 삶과 죽음에 대한 묵시론적인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1988년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하여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조은은 어느 날 최민식의 리얼리즘 사진 세계에 푹 빠져들게 된다.

“최민식 선생의 사진은 인간의 불행이라는 악성 바이러스를 꿋꿋이 이겨내게 하는 항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사진이 가진 힘이자 덕목 중 하나이지요. 그가 치열하게 사유하며 선택한 세계는 많은 부분이 어둡고 암울합니다. 그러나 그 세계와 맞선 그의 시선은 더없이 따뜻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세상의 부조리와 맞서되, 그는 전투적인 사람이 아니라 온화한 사람입니다.”

부자들의 저편에는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1969년 작품)

어느 날 시인은 이념이 강한 한 잡지에서 매우 인상적인 사진을 보고는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펌프질을 하는 두 아이의 모습이 음영으로 처리된 사진이었는데, 사진 아래에 저작권자가 표기되어 있지도 않았고 본문 어디에도 저작권자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그 뒤 시인은 최민식의 사진 작품집에서 그와 똑같은 사진을 발견하고 너무 기뻐했다. 얼마 뒤 “최민식 선생은 누가 자신의 사진을 좀 쓰자고 하면 조건 없이 선뜻 승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몹시 놀란다.

남의 창작물을 그냥 쓰면서 저작권자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잡지사의 문화적 소양에 답답해하는 한편, 이 사진가의 신념과 따뜻한 마음에 감탄했다. 그 일을 계기로 사진가와 시인의 예술정신이 만나는 ‘특별한 사진집’이 기획되었고 그 작업이 이번에 비로소 열매를 맺은 것이다.

시인의 시각으로 새롭게 사진을 해석해 가난한 자의 슬픔을 더 증폭시켜 준 이번 사진집에는 1950년대 후반에서 2004년까지의 여러 가난한 사람 모습이 담겨 있고, 특히 소외받은 어린이들의 사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순박한 어린이는 어느덧 40대 초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1965년 작품)

무리지어 앉아 있는 고아들, 배고픔에 떨고 있는 아이들, 개밥통 같은 데 담겨 있는 음식 같지도 않은 음식을 먹는 아이들. 오로지 ‘부(富)의 축적’을 ‘인생’이라고 잘못 배우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아이들의 모습과 ‘가슴 아프도록 창백하게’ 쓰인 시인의 글을 보고서도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릴 것인가.


지금이 웰빙의 시대라고 외치면서 먹고. 바르고, 입고 누리기전에, 30년전의 이 사람들과 똑같은 처지의 이웃들과 내 아들딸 같은 그들의 자녀들이, 아직도 노동자.도시빈민과 노숙자. 결손가정. 소년소녀가장. 혹은 또 다른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혼자 잘살고 잘먹고 살기에는 우린 너무 미안해 해야 한다. 웰빙을 말하기 이전에 우리는 이들을 사랑해야 만 한다.

그들은 투명인간과 같아서, 우리 주위에 버젓이 있음에도 우리가 보려 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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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것들에 관하여

  1. …이런, 오늘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오지 않았던 책이군요..
    이 책이 잊으면 안 되는 불의에 관해 다시 떠올려 주게 해 주지 않을까 기대중입니다.

    그런데, 글이 정말 멋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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