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서 마당이나 쓸어!

절에 들어간지 얼마 안되어 있을때 공양(식사)을 하고 있었는데, 티비에서 데모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선생. 이선생도 데모 해봤어?

함께 식사하시던 종정스님이 미소를 띄신 얼굴로 부드럽게 물으신다.

네. 큰스님.

허허. 그랬구만.

미소를 지으시며, 식사를 계속하시는 큰스님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뭐든지 물으면 답을 해주신다는 주위 행자스님에게 들은 말이 생각나서, 이건 대답을 하실수 없을꺼란 되바라진 발상으로 큰스님에게 질문을 던진적이 있었다.

큰스님. 정말 궁금한게 있는데요, 대학의 운동권 학생들이나 사회의 운동을 하는 분들이 서로 운동중에 노선문제 때문에 많이 갈라지고 싸우는데요, 큰스님께서는 과연 어느 노선이 맞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때였다. 탁! 갑자기 큰스님이 수저를 놓으시더니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신다. 그리곤 갑자기 큰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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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생.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거야? 거 똑똑한줄 알았더니만, 말도 안되는 거지 깡깽이 같은 질문만 하고 있어. 그런 질문 할 시간있음 밖에 나가서 마당이나 쓸어!

흠칫 놀란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공양을 다 마친채로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실망을 금치못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그냥 말씀하실 거지, 웬 고함을 치는거야. 젠장. 투덜투덜… 크게 깨닳은 사람이라서 생불(生佛)이라고 칭송을 받는 분이 뭐 저래. 우씨.

그때즈음 인기척을 느껴서 뒤를 돌아보니, 해안스님이 내 맘속까지 다 보고 계셨는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신 채로 뒷짐을 지고 빙긋 웃고 계시다가, 내가 돌아보자 합장을 하곤 어디론가..


산사의 밤은 정말 고요하다. 이불을 덮고 누워있으면 이름모를 새들의 울음소리와 부엉이 소리만 스테레오로 들린다. 그리고 바람소리도 건물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머리속이랑 가슴속이 휑 – 하니 비어버리는 느낌이 참 묘하다.

이선생님 주무세요?

옆자리에 누워서 종이에 빽빽하게 적어놓은 경을 외시던 해안스님이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부자리에서 이쪽으로 기어오신다.

오늘 놀라셨죠? 흐흐. 괜찮아요. 저도 처음에 그랬었어요. 그래도 이선생님은 답변이라도 받으셨잖아요. 전 꿀밤맞고 답변도 못받고 그랬어요. 허허.

무슨 답변이예요. 답변 못받았는데요? 욕만 디지게 얻어 먹었어요.

그러자 해안스님이 다시 빙그래 웃으신다.

이선생님. 대사님이 답변 해주신거예요. 그 뜻을 모르시겠어요? 정말 이선생님 똑똑한줄 알았더니만 바보네. 바보.. 흐흐.

다시 내 인상이 굳어질려고 하자, 장난기 어린 미소로 웃으시던 해안스님이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손등을 토닥 토닥 쳐주신다. 손이 참 따듯하다.

농담이예요. 농담. 제가 설명해드릴께요. 허허. 사실은 그 질문 저도 첨에 여기와서 큰스님께 드린 질문이었거든요.

아직도 표정이 풀리지 않은 내 앞에 좌선을 하고 앉으신다. 난 엉거주춤 이불에서 뾰루퉁한 모습으로 베게를 끌어앉고 엎드렸다.

이선생님. 그런 운동하는 목적이 뭐예요?

부드러운 미소로 내게 물으신다. 내가 대답했다.

참 세상 만들려고 하는거죠. 평등한 세상. 분단된 나라도 통일하고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아름답게 화합하고 살아가는 세상여..

그렇죠? 그런데 그런 통일된 조국이랑 화합하고 아름다운 참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등돌리고 어떻게 싸울수가 있어요? 노선이라는 것가지고.. 그런세상 만들려는 사람들이면, 모두 하나가 되어서 만들어야지요. 노선 다른 사람들은 등돌리고 그러던데, 그사람은 통일조국에서 함께 화합하고 살아갈 사람들 아닌가요?

정말 옳은 방법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면 노선이란 것으로 싸우고 분열할 이유도 없고, 그건 화합을 하고 하나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바른 방법이 아니란 반증이지요. 싸움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 주장이 있답니다. 중요한건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예요. 오로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모순입니다. 이선생님. 어떻게 노선이란 걸로 싸우고 분열하는 사람들이, 통일되고 화합하는, 평등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냐는 말씀이지요. 대사님의 일갈의 요지는 <질문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씀이예요. 그러니 말도 안된다는 대사님 말씀이 맞지요.

멀뚱멀뚱해 하고 있는 내게, 해안스님은 말씀을 이어가셨다.

마당이나 쓸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 아세요?

아뇨. 모르겠는데요.

이상하게 내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진다.

6.25때 나라를 지킨 사람들은 그렇게 배운 분들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임진왜란때 의병들도 마찬가지 지요. 글도 모르는 분들이 왜구들과 공산당들과 싸우고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지키신 거랍니다. 똑똑하고 대단한 이론가들이 나라를 지킨게 절대 아니란 말씀이예요. 산에 올라가라면 올라가고 뛰라면 뛰다가 총맞아 죽은 많은 분들이 나라를 지키신 거예요. 단순히 나라 안망하게 하겠다는 그 일념 하나 가지고 말이지요.

그렇게 싸우고 등돌리는 노선이란 것보다 중요한건 결국 행하는거 아니겠어요? 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완벽한 노선도 상념(想念)의 파편(破片)에 불과합니다.거창한 소리들 적당히 하고, 어서 자신이 할수 있는 가장 작은 행함부터 묵묵히 행하라는 뜻이지요.

절에서 마당을 쓰는 일은 가장 작고 기본적인 행함의 본보기 랍니다. 마당을 쓰는데 빗자루로 쓸던 삽으로 쓸던 그게 뭐가 중요해서 싸우는건가요? 행하는게 중요하지 방법은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결국 목적은 마당 쓸려는건데 왜 빗자루랑 삽을 들고 내가 옳네 니가 틀리네 싸우냐는 말이지요.

이선생님. 불교에선 모든 결과는 과정의 산물로 봅니다. 과정없는 결과는 없지요. 과정속에 결과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과정이 아름답지 않으면 결과도 아름답지 않아요. 아름답게 화합하고 통일되서 운동해야지, 결국 이선생님이 처음에 말씀하신 그런 통일되고 아름다운 참세상이 오지 않겠어요?

말씀이 끝나자 마자 해안스님은 하품을 하시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게 합장을 하시고는 피곤 하시다면서 이불속으로 들어가셨다. 나도 다시 이불에 누웠는데, 파란 달빛에 녹은 검은 나무 그림자들이 바람이랑 함께 온 방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이 깊어질때까지 그 춤들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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