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봉알. 그리고 키치문화

연예인이 먹고 살기 위해 얼굴 뜯어 고치는 일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남편이 다마를 박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 황봉알

우리나라의 엄숙주의는 종교계에서 시작해서, 정치계. 그리고 학계까지 그 역사와 뿌리가 대단한데, 주로 득세권의 계급들이 이 엄숙주의를 이용해서, 그들의 권력과 카리스마를 보호하거나 치장한다.

엄숙주의의 폐해는 결국 비판을 잠재적, 혹은 조직적으로 막거나 탄압 (폭력. 공포를 이용)하는 형태로 유지되는데, 일례로 특히 최근의 서태지라는 신진 문화권력자의 자신의 키치 Kitsch 노래(컴배곰 뮤직비디오 이재수 고소사건)에 대한 대응을 보면 잘 알수 있다.

초기 서태지는 기존 사회.문화구조에 대한 과감한 키치 Kitsch와 불복종. 은유라는 도구를 이용해 결국 문화권력의 거두가 되지만, 결국 그가 쟁취한 권력구조속의 본인에 대한 자생적 비판. 키치. 은유 시도를 탄압함으로써, 그가 얻어낸 문화권력의 부흥기를 재 구축한 자신만의 엄숙주의를 이용해 위선적으로 배신. 탄압하고 결국문화계 기득구조의 상부에 제왕적으로 군림하게 된다.

또한 이 사건을 보기전에, 결국 그가 제시했던 그런 숭고하기까지 했던 이슈들은 자본의 논리와 병합. 귀결되고 말았다는 결과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또한 그 병합과 귀결은 지금까지 그의 행보를 볼때 서태지 그가 원하고 꾀했던 것이며, 그는 순수한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야수와 같은 자본주의 활동을 전담하는 전문세력을 소유하고 있는 <야누스>로 군림하는 치밀하고 비열한 방식을 사용한다.

요컨데, 이재수의 서태지 키치사건은, 그런 서태지라는 문화 권력자의 권력를 유지하는 <엄숙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정치적 행위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구조들에 대해, 내부(제도권)에서의 개혁이 불가능한 경우 이를 비판하고 거부하는 비 제도권내 비판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는데, 인터넷 자본과 결합된 새로운 키치 Kitsch 언론의 거두중 하나가 바로 <황봉알과 김구라> 들이다.

이들의 말은 값싸고 가공되지 않았으며 저질이지만, 우리가 언제나 대하고 있는 거짓들에 대해 솔직히 분노하고 비판하는 <진실>과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결국 이런 키치 Kitsch 가 주는 교훈과 목적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모든 크고 작은 개인에서 국가권력까지의 올바르지 않은 권력화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코미디언 같은 검사. 장난끼 많은 선생님. 욕잘하는 코미디언. 설걷이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 남편. 잘못을 시인할줄아는 정치인. 오래전 전쟁과 학살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국가와 같은, 다양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있는 휴머니티즘이 넘치는 세상은 아닐까.

참고) 유승준 병역사건에 대한 황봉알의 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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