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안보는 이유

오래전에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한국을 뒤흔든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표현하기 힘든 예민한 사안들까지 과감하게 도입한 이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역사의 전설로 등극했다. 거기엔 강하고 힘있는 자와 약한자가 함께 공존한다. 눈치를 보며 만든 흔적도 없다.

그런데 이런 수준높은 드라마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더니, 어느새부터 왕자 공주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의 이슈는 약속이나 한듯이 단 두가지. 사랑과 혈연이다. 사랑에 고민하고 밀고 당기는 남녀. 삼각관계. 그리고 출생의 비밀. 니 딸이냐 내 아들이냐.

우리나라 작가들이나 기획사. 혹은 방송사들은 퇴행을 시작했나보다. 아니면 왕자공주들을 우매한 시청자들이 좋아할것이라 생각해서 안전빵으로 가는가 보지.

그런데 요즘 이 젊은 왕자공주들의 꼬라지들이 더 접입가경이다. 현실적에서 일어날수 있는 일들이라면 그나마 억지로라도 봐주겠는데, 이녀석들은 아예 동화책 속에서 논다. 대체 이런 작가년놈들은 무협지를 쓰다 방송국으로 잡혀왔나. 웃기지도 않는다.

멋진 대사들과 미남 미녀 출연자들의 화려함뒤에 숨은것은, 어느새 노예가 되어버린 방송국이 만들어낸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마약이다. 많이 보기만 하면 장땡이라는 이 팟쇼는, 티비에서 그나마 버티고 있던 서민들을 몰아내기에 한치의 거리낌도 없다.

IMF 이후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의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땀냄새 나는 아버지. 힘든 가계를 이끌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 엄마. 그리고 지옥같은 입시지옥. 경쟁속에서 목졸리는 아들딸들은, 이제 평상위에서 달보며 수박을 먹는 우리와 같은 서민들의 추억을 꿈꿀수도 없다.

뭐 물론 가끔 서민옷을 입은 선남선녀가 나올때도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면 자기 출생의 비밀은 바로 재벌인 아버지가 실수로 흘려버린 씨다. 사랑하던 남친은 알고보니 적의 아들이다. 치한만 하는게 아니라 드라마도 사람을 강간하는구나. 에이 시발.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삼각관계에 빠진 누군가의 아들딸인지도 모르는 이 왕자공주들의 동화책속 스토리를 매일저녁 보면서, 어쩌면 우린 하루밤이라도 왕자 공주가 되고 싶어, 그렇게 갚을수도 없는 카드를 긁어댔는지도 모른다. 왜 난 재벌의 아들이 아니었을까. 왜 난 권력자의 딸이 아니었을까 하면서 말이지.

난 이 망할놈의 한국드라마가 싫다. 생활고에 찌들어 아파트에서 아들과 함께 투신했다는 어느 여인에 대한 9시 뉴스가 끝나고 난후, 보통 10시쯤부터 시작하는 그 염병할놈의 선남선녀들 사랑놀음. 가진놈들의 돈지랄. 행복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싸는 그 동화책속 꼬라지들이 정말 짜증나고 화가나서 보기 싫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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