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두가지 기억

아버지에게 감사해야할지 아니면 항의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어릴때부터 두가지 끔찍한 전쟁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둘다 국민학교 때였으니, 분단된 이땅에서 살아가는 한 구성원으로써 어쩌면 당연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해야할지.

첫번째 기억은 국민학교 3-4학년때 즈음이었을까 확실하지 않지만, 당신과 함께 갔던 영화관에서였다. (가족들이 모두 함께 갔었는지는 가물가물…)그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는데 <일본의 중국침략>에 관한 것. 뭐 긴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것은 일본군이 중국 아이들을 학살하는 장면이었다.

무더기로 있는 중국아이들을 두명의 총검을 든 일본인이 죽이는 장명이었는데, 한명이 아이를 들어서 하늘로 던지면, 한명의 일본인은 떨어지는 그 아이를 총검으로 찔러서 휙 – 던지는 장면…

떨어지면서 얼굴이 일그러지는 아이의 모습을 참 잘도 잡아낸걸 보면, 지금도 그 장면을 일본놈들이 찍은 것인듯 싶다. 그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온몸에 식은 땀이 맺혀져 있었던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너무 어려서 그 영화를 봐도 잘 모를것이라고 당신께서는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뜻이 있으셨는지는 아직도 알수 없다.

두번째는 당신께서 사오신 책이었는데, 타임즈지에서 낸 두꺼운 사진집이었다. 두권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이 책은 아직도 어머님댁에 있다) 한권은 영화와 관련된 사진들이었고, 또 한권은 전쟁에 관한것이었는데, 시체들과 군인들이 나오는 ….

거기서 난 목이 잘려 죽은 중국인들과 함께, 수많은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볼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사진들을 나는 마음만 먹으면 마음대로 볼수 있었다. (나같으면 안보여 줬을텐데.. 아이 정서상…)


당신께서는 전쟁고아셨다. 1.4 후퇴때 가족들을 모두 잃으시고 이리 저리 떠도시다가, 부산의 친척들을 만나시곤 평안을 찾으셨다. 그리고 그 당시의 기억에 대해서는 거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돌아가신 이후로도 당신의 그때 이야기들은 주위분들에게서 겨우 동냥하듯 조금씩 들을 뿐이다.

아마도 나는 아버님께서 평생을 그런 전쟁영화와 사진속에서 내가 보았던 끔찍한 기억들과 싸우시면서 살아가셨다고 짐작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생이별한 충격. 그리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 전란통의 기억들과 당신이 살아오셨 이후의 삶들도… 누구에게도 말할수 없는 끔찍한 기억은 아마도 당신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다가 당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거기서 괴롭지 않게 되는 방법은 단 한가지. 그 기억들과 친구가 되고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겠지. 당신이 보여주셨던 그 끔찍했던 영화와 사진첩들. 그리고 내게 그것들을 오픈하셨던 이유는, 아마도 그 끔찍했던 경험들과 기억들을 내게 말없이 고통속에 호소 계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후 오랜시간이 지난 어느날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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