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순신 이야기

“수군이 패하면, 조선은 완전히 멸망한다.”이 절체절명의 위기가 주는 무게, 그것도 눈앞에서 선연하게 꿈틀거리는 위기가 미친 듯이 짓누르는 무게를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하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 무게를 칼 한 자루에 의지해 온 몸으로 맞서 싸운 사람을 우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 한국인의 머릿속에 자기 희생적 성웅(聖雄)으로 깊게 각인된 그 사람, 이순신.

하지만 그 역시 한계를 지닌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그가 ”사람”으로서 느꼈던 희노애락·애오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은 현재에 와서 느릿느릿 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다.

칼의 노래의 저자 김훈. 공중파나 신문이나

할것없이 인터뷰 싸가지 없게 하기로 유명. ” tt_link=”” tt_w=”150px” tt_h=”195px” tt_alt=”” />얼마 전까지 이런 시도는 주목받지 못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고결하고 기품있는 인품, 완벽한 전술전략과 통쾌한 승리, 나라에 대한 맹목적 충성, 그리고 비장미 흐르는 최후였을 뿐이다. 거기에 개인으로서의 ”이순신”은 끼어 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 우리가 감동 받은 건 그 부분을 바늘로 찔렀기 때문이다. 호사가들이 뭐라고 떠들어대건, 역사가들이 어떻게 기술했건, 국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미화시켰건 그에 구애받지 않고, 1인칭 관점의 개인으로서의 ”이순신”을 보여주어, 그의 생각과 마음을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참기 힘든 노여움으로 동감(同感) 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훈이 밝혔듯, 그건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이순신으로 픽션일 뿐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제 이순신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전히 성웅으로 신격화된 이순신일까? 그 가치가 절대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걸까? 하지만 이순신은 무엇을 원할까? 그는 오랜 시간 우리를 원망했을 지 모른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하나의 상징적인 대상으로만 기억되길 원치 않는다. 피가 흐르고 눈물을 흘리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픈 존재인가. 그를 한 여인의 남편 혹은 자식으로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외롭게 고군분투해야 했던 장군으로서 보고 겪고 느껴야 했던 인간적 면모를 이제 찾아줘야 하지 않을까? 현란한 색상으로 장식된 포장지를 벗기고,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알아주는 일, 이순신이 원하는 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김태훈이 저술한 <이순신의 두 얼굴>(창해출판)은 아마도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알아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

김훈의 칼의 노래. 무지무지 맛있게 읽었다.
문제는 이순신의 전공 보고서와 이조좌랑 김신국의 보고서가 조정에 동시에 올라온 것이다. 김신국은 이순신의 보고서가 잘못이라는 것을 조정에 알렸다. 부산방화사건은 이원익의 부하들이 한 것이고 이순신의 부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이 두 보고서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 간에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자료와 정황으로 볼 때 이순신이 부하들의 말만 믿고 보고서를 제출한 실수였다.

불행히도 조정의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뜻밖에 적장 고니시가 경상우병사 김응서의 진지에 파견한 밀사 요시라에서 비롯되었다.

가 토와 정적이었던 고니시가 가토의 도해 정보를 조선 조정에 흘림으로써 가토의 제거를 획책하는 정보였다. 선조는 가토의 도해 정보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생각할 정도로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속이는 일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리면서 이순신에게 가토의 군대가 바다를 건널 때 격퇴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선조의 판단에 조정이 마냥 따른 것은 아니었다. 비변사는 고니시의 간계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였다. 그래서 비변사는 공문에 “수군의 여러 장수들은 십분 계엄하여 전후로 나누어 지키며 야간에는 더욱 기습을 대비하여야 한다는 뜻”을 담아야 한다고 선조에게 아뢰었다.

그러나 한산도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순신을 두고 조정은 황망해졌다. 선조와 조정이 얼마나 고심어리게 내린 결정이던가! 이 항명이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요시라가 말한 대로, 가토가 바다를 건너 조선에 상륙했기 때문이었다. 조정은 들끓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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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의 평가는 이순신의 실각이 잘못되었다는 데에 모두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제2차 조일전쟁이 발발할 때, 즉 적의 대부대가 조선을 침공해오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이때 이순신은 막강한 수군을 보유하고도 바다를 건너 속속 육지에 도착하는 강력한 적의 육군에게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조정과 이순신의 판단,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이순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적군을 바다에서 요격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채 차후를 대비하여 수군을 보존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순신은 후자를 선택했고 그 결과를 조정의 노여움과 그의 실각이었다.

– 본문 중에서우리는 일본군 상륙 20여 일만에 수도를 버리고 피난을 가야할 정도로 선조와 조정이 무능력하고 한심한 존재였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와 달랐다.

선 조가 귀가 얇고 적장에 대한 무분별한 분노로 인해 고니시의 정보를 한번에 믿고 이순신에게 출정을 강요하는 어리석은 수를 두었다고 알고 있지만 선조와 조정은 고니시의 정보를 모든 가능한 경우를 동원하여 곱씹고 곱씹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절대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순신의 실각은 그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판단에 더 가치를 둔 이순신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또한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이해관계와 판단의 차이였을 뿐이다.

또 한 이순신은 우리 생각 만큼 인자하고 자애로운 사람도 아니었다. 비록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했지만, 그는 부대를 이끄는 최고 수장으로서 매우 엄격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난중일기>에 쓰여진 기록을 보면, 이순신에게 곤장을 맞은 자가 부지기수였고, 목을 베인 자도 무수히 많았다(이순신의 판단 실수로 백성의 목을 베기도 했다).

그는 부하가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없이 처단했고, 엄격한 군율 적용을 위해 부하의 잘못을 상부에 빠짐없이 보고했다. 이는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보통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일인데도 이순신은 그런 부류와 달랐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군대 기강 확립과 전투력 확보였을 뿐이다.

오늘날 원균을 다시 조명하는 작업으로 인해, 알만한 사람들은 원균이 간신이나 모략배가 아님을 알고 있다. 이순신과 여러 면에서 달라 둘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었다는 이유로, 이순신의 실각 이후 이순신의 자리에 올랐다는 이유로,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를 했다는 이유로, 이순신 영웅 만들기에서 악역이 필요한 이유로 아주 오랜 시간 원균은 사람들의 원성을 부당하게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순신 또한 원균에게 부당한 처사로 대하기 일쑤였다. 이순신은 원균의 공을 자주 폄하했고, 그를 인간적으로 무시했으며, 조정에 수시로 원균을 깎아 내림으로써 원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원균이 정말 간신배에 역적에 무능한 장수였다면 조일전쟁이 끝난 뒤 선무공신 3인(이순신, 권율, 원균) 중에 한 명으로 선정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순신은 경쟁자에게 냉정했고, 가족의 비극에 대해 초연하지 못한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3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됐을 때, 이순신이 담담해했을 것 같은가? 그도 자신의 초특급 진급에 기뻐 감격했다.

뜻밖에도 이번에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을 변변치 않은 신에게 내리시니 놀랍고 황송하여 깊은 골에 떨어지는 듯합니다. 신과 같은 용렬한 사람으로는 도저히 감당치 못할 것이 분명하므로 신의 애타고 민망함이 이 때문에 더합니다.

–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올린 장계 중에서그 런데 왜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순신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인자하고, 자기 희생적인 성웅으로만 인식되는 걸까? 이는 역사적으로 활약을 펼친 무장(武裝)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발목에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의 족쇄를 채워 국가 이데올로기적 상징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적 필요성 때문 아닐까.

물론 이순신은 누구나 존경하는 훌륭한 인물이다. 앞으로도 그의 업적과 정신은 높게 평가되어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겨져야 한다.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패잔병들, 서열 2위였던 장군도 탈영할 만큼 절망적인 상황, 게다가 조선수군의 전부인 13척으로 일본수군 130여척(후방 부대에는 170여척)과 싸워야 하는 말도 되지 않은 전투 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선두에 선 명량 해전은 이순신에게 존경의 차원을 넘어 공포심까지 느낄 정도다.

이 책 또한 이순신의 용맹했던 해전 장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 잘못 읽으면 ”이순신 영웅 만들기”의 또 다른 아류가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을 기술한 것이기에 오해할 필요가 없다.

그 리고 거기에서 그쳤다면 이 책 또한 기존 영웅전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저자는 해전 외에도 이순신이 기록하고, 말하고, 행동했던 것들을 끄집어내고, 당시 조정과 일본, 육군 전투 상황 등 전체를 조망함으로써 조일전쟁의 실증에 주력하고 있다.

저 자가 제시하는 화두 또한 이순신의 영웅됨이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한 태도이다. 그것은 ”결코 물러서지 않음”이다. 평범했던 문신(文臣) 지망생이 32세에 무신(武臣)이 되어 결정적일 때마다 모략과 질시를 받아 위태로웠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이 순신의 영웅됨은 ”13척의 배만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명장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어쩔 수 없는 물리적 상황에 맞서 싸우며 ”평범한 인간에서 비범한 영웅으로 스스로 거듭나게 했다”는 점에 있다.

당연히 여기에는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좌절과 고뇌,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이것이 이순신을 바로 알자는 요점이지, 결코 이순신을 현재의 위치에서 한 단계 끌어내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 일전쟁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도 기록하지 않은 이순신. 그 기록에는 이순신의 무수한 피와 땀과 눈물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이순신의 승리에 통쾌함과 자부심만 느꼈을 뿐, 그 승리에 이르기까지 그가 뚫고 나가야 했던 과정은 무관심해왔다.

이제 이순신을 진정으로 알아주자. 딱딱하고 무감각한 신격화가 아니라 피와 살이 있는 인간으로, 그것은 이순신 그 자체를 폄하하는 것도, 그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도 아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 위에서 긴장으로 핏발 선 눈빛의 외롭게 서 있는 이순신. 그도 질투하고 시기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 경쟁자에게 냉혹하고 자신의 성공에 감격하고 이런 말들이 불경스러운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인간 이순신을 앎으로서 이순신을 더 존경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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