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무당 조용기 목사

‘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삼박자 구원과 ‘중생·신유·재림·성령세례·축복’의 오중복음을 강조하는 조목사는 특유의 힘찬 어조로 주일예배에서도 부흥회처럼 치유와 영적 집회를 인도해왔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오직 성령의 사역만 강조했고 지나치게 기복적이며,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개인구원 지향적이고, 기적적 치유를 내용으로 하는 극단적 신비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 월간 기독교 사상중 <한국교회의 설교를 말한다>중 조용기 목사에 대한 분석

조용기 목사의 이교사상 정밀분석

― 바울 조용기 목사는 세계 최대의 오순절 프로테스탄트 교회(하나님의 성회)인 성도 70만명의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목사”이다. (92년 11월호 카리스마지 는 바울 조용기 목사가 가족간의 승강이 끝에 이름을 다윗으로 바꾸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조용기 목사의 가르침은 성서적 가르침 약간에다가 사교(邪敎)적 병고침과 예언, 시각화, 마법, 이교적 심령술을 혼합한 우상 숭배적인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아무리 어리석고 천박하다고 하더라도, 4차원에서 영의 세계를 부르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상상(가시화)함으로써,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는 또한 적극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언어, 그리고 적극적으로 시각화 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이며, 자신의 마음에 생생한 영상을 창조하여 그에 집중함으로써 누구나 육적인 현실을 문자적으로 “배양”하여 출산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M_ 글 더 읽기 | 닫기 |― 제 13회 연례 교회 성장 국제 회의가 92년 9월 28일부터 10월 6일에 걸쳐 한국 서울에 위치한 조용기의 순복음 교회(한국의 하나님의 성회)에서 열렸다.(조용기는 교회 성장 국제 기구[CGI]의 대표이다.) 미국 서부에서 이 회의에 참가하는 비용은 일인당 US1,750 달러였다. 이 교회성장 회의의 일주일간의 긴 일정은 진정 분파들의 바벨탑과 같은 일종의 연합 “신앙”이었다. (풀러 신학교의 교회 성장 및 골상학의 도날드 맥가브란 교수인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는 특별 초대 연사였다. 조용기의 미국 쪽 연줄은 풀러 신학교와 와그너 박사를 통한 것이다. 와그너는 조용기의 동료이며 같은 오순절주의자이고, 현재 미국의 교회 성장 운동의 구루이다.) 교회 성장에 관한 조용기 목사의 여러 가지 거짓된 가르침 외에도(세부 사항은 본 보고서 뒷부분에 있음), 다른 두 개의 주된 잘못은 조직을 통한 교회의 성장 가르침에 관한 것이다. 첫째, 그는 역학적인 조직에 지나치게 집중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있다. 둘째, 그는 여자를 남자를 가르치고 그들에게 전파하는 지도자와 목회자로 임명함으로써 여자에 대한 성서적 위치의 역할을 범하고 있다.

― 1990년대 후반에 조용기는 70만명이 구독(전체 발행 부수는 1백만부)하는 일간지(국민일보Daily News)를 서울에서 창간했는데, 세계 전역에서 500명의 정규 통신원이 있고, 국내에 800명의 정규 직원과 400명의 시간제 직원들을 두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경건한 도덕관과 생활 방식을 널리 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 신문을 창간했다고 주장하는데, 각 호는 네 페이지에는 “그리스도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스물 네 페이지에는 세속적 정보를 담고 있다.(그외 스포츠 투데이지와 케블 TV등 많은 언론 매체들은 그의 아들이나 가족이 운영하고 있음 – 역자주)

― 적극적 사고, 예언과 기적적인 병 고침, 카리스마적인 예배, 번영의 신학 이론, 또 세계적인 복음 전파 운동에 관련됨으로써, 조 목사는 오늘날 “성공”이나 “번영”의 실례로 여겨져 왔다. 그가 교회 성장에 두드러진 성공을 이룩했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상당수의 그의 저서를 추천하고 사용한다. 하지만 조목사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성경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인 가르침을 번영 복음이나 적극적인 사고방식, 시각화, 사차원 개념, 그리고 다른 위험한 생각들을 포함한 세상적이고 인간 중심적 체계로 대치하는 것이다. 그의 신학 이론과 방법론은 전통적인 기독교적 믿음에 근거한 진리로부터 벗어나 있다.

― 다음은 (크리스쳔 웨이Christian Wei의 박사학위 논문으로부터) 조 목사의 가르침을 요약한 것이다. 특정 사항 중 일부는 본 보고서에서 부연된다.

A. 잘못된 성경해석 원리(Bibliology)

조 목사의 성서학은 크게 두 가지가 잘못되었는데, 이는 계시의 정도와 해석의 방법이다. 그는 불가능한 견해 – 즉 교회법의 종결과 특정한 계시의 연속성에 대한 상호 배타적인 견해에 대한 있을 수 없는 입장을 지지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손상시킨다. 조용기의 해석적 방법은 매우 우화적이고 자의적이며 주관적이어서, 성서의 진리와 문맥상의 의미를 사실상 왜곡한다.

B. 잘못된 신론(神論 doctrine of God)

하나님의 교리에서, 조목사는 인간 중심적인 철학으로 하나님의 선하심 및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주권에 관련된 영역에서 성경적인 가르침을 벗어나고 있다. 자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번영과 건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만족에 대한 성서의 명백한 가르침을 무시하고 있다. 조목사는 인간의 협력 없이는 하나님이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 중심적인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주권자로서의 의지와 능력 및 지위를 손상시킨다.

C. 잘못된 성령론(doctrine of Holy Spirit)

조목사의 성령론에서(성령에 대한 교리) 세 가지의 주된 오류는 작용, 성령을 받는 것, 그리고 성령의 은사에 있다. 성령의 작용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범신론(자연신론)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인간이 성령의 힘을 얻고 조종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 조목사는 기껏해야 성령님의 주권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인격을 위협하고 있으며, 최악으로는 사실상 신비주의(occultism)에 손을 대고 다루고 있다. 그는 성령을 받는 표징이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기적적인 증거물이 아닌 도덕적인 미덕에 부여된 경험과 같은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다. 조목사는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아직도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은사를 주신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에 따라 은사를 나누어주기 때문에(고전 12:11), 조목사가 성도들에게 이러한 선물을 추구하도록 격려하는 것은, 명백한 성서적 가르침을 위반하는 것이다.

D. 잘못된 구원론(Soteriology)

구원론과 관련해서, 조목사가 가르치는 복음의 본질과 믿음에 대한 교리는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는 복음이 죄 사함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적절한” 믿음이 있다면 분명히 기적을 경험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믿음에 대한 조용기의 견해는 다소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기적이 없다는 것은 믿음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E. 잘못된 죄론(doctrine of Sin)

죄에 관한 교리와 관련해서, 조목사는 인간이 죄로 향하는 성향을 간과하고 있다. 그는 상상력과 사고력을 포함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짐으로써 인간이 무한의 잠재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념은 믿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옛 인간성과 새 인간성간의 다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하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이다. (롬 7:15-24) 조용기는 인간의 죄를 인간 주권으로 대체하고 있다.

F. 잘못된 천사론(doctrine of angelology)

천사론에 대한 조용기의 교리는 그를 이원론과 신비주의로 이끌어 온 그 자신의 “사차원”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악의 사차원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그는 마귀의 영향을 마귀 들린 것과 혼동하고 있어서, 모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거나 마귀가 들어가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목사는 모든 죄와 병을 마귀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G. 잘못된 교회 성장학(Church growth)

조목사는 시각화가 되지 않으면 교회가 성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목회자들이 시각화(사람의 정신 속에서 환상 혹은 꿈의 영상이 기적이나 능력을 가져오는 과정)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우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은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알려진 신비술적 기법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서, 수 천년 전에 무당이나 마술치료사가 사용했던 것이다. 그 것은 우선, 근거가 비성경적인데, 조목사는 그의 이상한 이론에 맞추기 위해 성경의 구절을 곡해하고 있다. 그는 또한 꿈과 환상의 위험성과 속임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신명기 13:1-5; 예레미야 23:25-32; 27:9-10). 둘째, 그것은 건전하지 못한 행위인데, 인간의 정신에 의지하고 신비술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 행위를 정죄하는 것이다. 셋째, 그것은 편견에 치우친 것인데, 왜냐하면 조용기가 성경적 예들과 그의 개인적 경험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H. 잘못된 신유은사론(Divine healing)

신성한 병고침은 조목사가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하며, 교회성장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또 다른 수단이다. 이것이 성경적이 아니라는 많은 증거가 있다. 첫째, 이는 잘못된 전제에 근거한 것이다. 성경은 병고침이나 기적이 사람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가르침에 이르는 데 필수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준다. (비교 마태 9:22-25, 32-34; 11:20-24; 사도 4:5-22) 둘째, 사람들이 동기를 감추고 교회에 오도록 부추김으로써 잘못된 동기를 유발한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이심과 사도들이 진정한 사도들임을 증명하는 병고침의 진정한 목적을 흐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용기의 개념은 기능상의 장애를 기질적인 질병과 혼돈함으로써 병고침의 참된 본질을 숨기는 것이다. 더욱이 성경적 실례와는 반대로, 조용기는 병고침을 원하는 일부(모든?) 사람들을 “고치는” 데 실패한다.

I. 잘못된 기도론(doctrine of prayer)

조목사는 기도가 분명히 물질 세계를 바꾸고 교회 성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는 참된 기도가 반드시 인간이 처한 환경이나 물질 세계의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모르고 있다. 오히려 참된 기도는 신자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복종시키는 것을 요구한다. 조목사는 또한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 의미를 곡해하고 있다. 오히려 바울과 유다가 신자들에게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쳤을 때, 그들은 성령의 도움과 영향과 중재를 의미했던 것이었다. (로마 8:26) 이는 조용기가 가르치는 방언을 말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 조목사는 그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나는 하나님이 이러한 것들을 주시는 데 실패하지 않도록 매우 명료하게 주문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믿음이 뒤따르는 걸 느낍니다…” 그는 주께서 애매 모호한 기도를 결코 반가워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면서, 신자들은 특정한 필요를 시각화하여 믿음으로 실재하게 만듦으로서 그것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여기가 카리스마적인 발전이 기독교적 신앙을 넘어서서 이교(사교)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지점이다.

그는 생생한 심적 영상을 그리는 것에 더해 불타는 갈망과 그 목표가 이미 성취되었다는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조목사는 이 과정을 목표를 시각화시키는 것, 그리고 나서, 믿음의 힘―아니, 의지력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으로서 그것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신자들이 원하는 것이 도덕적이기만 하다면 부와 성공, 즉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문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것들을 얻는 열쇠는 그것들을 공상하는 것인데, 이는 개인이 그 영상을 배양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이 그것을 실재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 조목사가 그의 생각들을 성경적으로 정당화시키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그가 처음으로 그것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물질 세계를 삼차원에 속하는 것으로 묘사하셨다고 주장한다. 추측컨대, 모든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며(신체적 존재이기도 하면서) 그들의 마음에 사차원을 갖고 있어서, 상상으로 영상과 꿈에 집중하는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하나님이 원시 지구에 내려오셨을 때 성령이 그러했던 것처럼, 삼차원(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나님이 조박사에게 말씀하신 듯 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불교도들과 요가 신도들은 그들의 사차원적 힘을 찾아 개발하고, 건강한 모습을 상상해서 자신의 신체에 기꺼이 들여오고자 했기 때문에 “기적”적인 병고침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은 이러한 사차원적 활동을 통해 물질 세계에 대한 합법적 지배권을 행사할 능력이 있다고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신비주의 밀교의 가르침

조목사의 가르침은 문제에 대한 정신 체계에 관련된 문제이다. (혹은 문제에 대한 상상 체계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는 이것이 불교도와 요가 주창자, 그리고 기타 밀교적 신비주의적 이교도 조직의 추종자들이 행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을 그리스도교화 시킨 것이라고 솔직히 인정한다.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의 사차원적 힘은 마귀의 협조로 얻는 것인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아마도 성령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우리 정신을 어리석고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지키는 이상, 상상의 캔버스에 우리가 갖고자 하는 것을 성령이 그릴 수 있도록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용기는 그의 교회가 현재의 거대한 규모로 성장해 왔고, 지금도 성장을 계속하는 것은 이 시각화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먼저 교회가 특정한 규모로 성장하는 것을 상상하고, 모든 외관을 가시화해서 현실로 배양한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신체, 영혼, 영에 있어서 번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그 성패는 전적으로 그들의 시각화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 정신에 생기는 “갈망”이라는 생각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조목사의 특징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에 따르면, 믿음은 단지 하나님께서 성서에서 약속하신 것만을 믿는 것만이 아니다. 믿음은 사람의 정신에 주관적으로 생기는 갈망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라고 재정의하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생각이나 갈망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의사 소통이라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것에 대한 결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발전시켜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견해를 받아들이고, 실현하기 위해 상상하고 배양시킨다면, 우리는 “기적”을 약속 받게 되고, 이는 평생에 걸쳐 지속되는 경험일 것이라는 것이다.

잠재의식과 신념을 중시함

― 조목사는 소위 말하는 “잠재 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능성 사고, 적극적인 회개와 확증, 자존의 메시지, 상상, “내부적 치료” 및 시각화 등 모두는 보이지 않는 잠재 의식 세계를 재편성하는 모태로부터 분기된 것들이다. 그는 참된 믿음은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잠재 의식에 자리잡는다고 말한다. 이와 흡사하게 적극적인 회개, 확증 및 시각화는 잠재 의식에 “현실성을 창조”한다. “내부적 치료”는 병고침이 “적극적인” 경험으로 잠재 의식을 재편성함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근거한 것이다. 그것은 “부정적” 경험에 대한 용서를 대신한다. 조목사의 말에 따르면, 잠재의식을 편성하고 “기도”의 응답을 얻는 데는 세 단계의 공식이 필요하다. 그 두 번째 단계는 영적으로 “영상이 실현될 때까지 영상화시키는” “창의적인 기도”이다. 그는 이 영적 영상화를 “배양 : 믿음의 법”이라고 부른다. (조용기는 키가 크고 마른, 음악을 애호하는 코카서스인 학교 선생을 남편 감으로 하나님께 주문하도록 한 “노처녀”를 가르쳤다고 주장한다.)

조목사의 신학은 잠재 의식에서 출발해서 하나님과 조용기의 역할 바꿈으로 끝난다. 조목사는 성령이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성령의 사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내 교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님께 말한다. 그러면 그 일을 수행해 주신다.” (사차원 49쪽) [예수의 태도는 이에 상반되는 것이었다.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태 26:39)] 그는 사람을 하나님의 동료 창조자로 여기는 새시대(New Age) 복음과 같은 반역적인 복음을 만들었다.

― 조목사의 시각화 신학은 적 그리스도교리에 이바지한다. 다음은 그가 어떻게 그것을 전개해 나가는가를 보여준다. (모든 내용은 사차원 36-47쪽에서 인용.)

∙ 사람의 영은 상상을 포함한 그의 잠재 의식이다.

∙ 잠재 의식은 영적인 사차원에 있다.

∙ 사차원(영/잠재 의식의 안식처)은 선과 악을 다 포함하며, 삼차원의 자연계를 제어하고 창조하고 “배양”한다.

∙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모든 사람의 영이나 잠재 의식은 자연계를 제어할 정도로 발전될 수 있으며, 삼차원 환경을 “지배할” 수 있다. (예. “자전거를 시각화하면, 자전거가 생긴다.”)

∙ 이것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영/잠재 의식은 악한 사차원이나 선한 사차원 중 하나와 결합해야만 한다. 따라서 불교도들도 그리스도인과 같은 잠재 의식의 힘을 가진다.

∙ 조목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성령의 사차원을 성부의 사차원과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환경을 더욱 더 많이 지배할 수 있고―삼차원을 더 잘 통제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나를 가르치셨다.”

∙ 우리는 상상과 시각화를 통해서 잠재의식을 “배양”한다. 따라서 “환상과 꿈을 통해서만 더 큰 교회를 시각화하고 꿈꿀 수 있다.”

∙ 우리의 상상과 시각화를 통해서 “성령은 우리와 협력하여” 창조한다.

∙ 그리고 나서 성령은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조목사는 이 신학을 성경에 더함으로 정당화한다. 아브라함과의 계약은 창세기 15:5에서 확언되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성경(창15:6)은 아 브라함이 주를 믿으니 그가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알려준다. 조용기의 해석은 상당히 다르다. 아브라함이 “감정에 사로잡혀… 모든 별들이 그의 후손의 모습으로 변해서, 다시 한번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영상은 그의 마음에 반복해서 들어왔고, 그 자신의 꿈과 영상이 되었다. 그 영상들은 영적인 해석과 꿈의 언어로 즉시 그의 사차원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해석과 꿈은 그의 백살이 된 늙은 몸에 지배력을 행사하여, 마치 젊은이의 몸처럼 즉시 변화되었다.” (사차원 48쪽)

모래 위에 세워진 사상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신뢰는(창15:6) 시각화와 신비술에 대한 신뢰로 바뀌어졌다. 조용기의 신비주의적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고전 3:11)이 아니라, 시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와 칼 융(Carl Jung)의 잠재의식이라는 모래 위에 건축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상상이 헛되고(로마 1:21),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것이며 (고후 10:15), 어려서부터 악하고(창 8:21), 악 및 교만과 연결되어 있다(렘 18:12; 눅 1:51)고 알려준다. 영이 잠재의식과 상상이라고 주장하는 “사차원 신학”은 다시 태어난 영을 다시 태어난 상상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시각화와 “잠재 의식의 창조적인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식을 성경적으로 새롭게 하는 대신, 조용기는 “잠재의식”을 재편성해야 하며, 그리하여 확증과 영상화로 창조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 예레미야 23:16 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한편 조용기는 이렇게 말한다 : “잠재의식은 너의 영이다. 너는 어떻게 잠재의식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그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상상을 통하고 우리의 환상과 우리의 꿈을 통하는 것이다… 환상과 꿈은 사차원의 언어이고, 성령은 그것을 통해 이야기한다. 환상과 꿈을 통해서만 너는 더 큰 교회를 꿈꾸고 시각화할 수 있다.” (사차원 42-44쪽)

“사차원”의 열매는 “응답된 기도와 교회 부흥을 위해 밝혀진 비밀”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그 뿌리는 신비술과 관련되어 있는 복음을 드러낸다. 상상을 통해 창조하라는 조목사의 교리는 적극적인 회개와 정신력을 지지하는 그릇된 기초를 이루는 또 하나의 벽돌에 불과하다. 그의 정신력 “비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성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에게 자신을 노예로 내어주는 것이다. “사차원”은 신자들이 “삼차원”의 물질 세계를 지배하도록 준비시켜 준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거짓 그리스도를 섬기는 배교한 교회를 준비시키는 것뿐이다.

― 모든 인간이 공통의 심령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 새시대(New Age) 사상은 “집단적 무의식”을 조장한다.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이 선이나 악을 창조하는 것은 무의식 상태를 통해서이다. “악한 생각 형태”는 새로운 적극적인 의식을 만드는 “에너지”를 방출하는 적극적 생각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개인으로서 시각화하고, 집중하고 그 에너지를 감독하는데 달려있다. 우리는 마음의 죄가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생각”이 문제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의식”을 감독할 무한한 잠재력을 우리의 정신에 가지고 있다. 새시대(New Age)로의 전환은 인류가 집단적으로 적극적 생각에 동참할 때 일어난다. “사차원”이 삼차원의 물질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에, 집단적인 적극적 시각화는 사랑과 평화와 조화의 새시대(New Age)를 창조할 수 있다고 한다.

조목사는 기독교적인 설명도 한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자아상이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능력 있는 창조물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창조주에 따르면, 사람은 단지 자신의 상상에 국한된다. 상상은 어떤 사람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영상을 만드는 인간 정신의 일부다… 인간의 잠재력에 가장 큰 장애물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바벨탑에서 언어의 혼란이 사람들을 흩어지게 했던 것처럼, 오순절에 언어가 통일된 것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았다.” 조목사는 우리가 지금 성령을 받았으며, 그래서 우리의 상상력의 제한이 해제되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상상의 통일은 “현 세계와 그리고 앞으로 올 세계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위대한 미래”로 인도한다. (조용기, 믿음의 도약, 15-17쪽). [Diakrisis지(1992년 여름호―영국 런던에서 출간되는 학술지)에 “마법의 도제, 마술에 걸린 교회의 영을 시험함”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는 공언하는 기독교회에 침입한 새시대(New Age) 사상을 심층 취재한 것이다. Diakrisis지의 기사는 조목사의 신비주의적인 언어의 예를 만이 들고 있으며, 신비주의 서적과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 신비주의자들은 수천 년 동안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과학자들이었다. “물질화 현상의 법칙”을 통해 자신들의 마법을 행하기 위해, 신비주의자들은 언제나 세 가지 과학적인 기술을 사용했다: 적극적인 사고, 적극적인 화법, 시각화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모두가 공언하는 복음주의 교회에 받아들여지고 사용되고 있지만, 이러한 기술을 장려해서 조목사처럼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만적인 자아애와 이기심

적극적인 화법(회개)에 관해서, 조용기는 이렇게 단언한다 : “당신의 입으로 예수의 임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는 당신의 입술과 당신의 말에 구속을 받는다.” 가장 강력한 신비주의의 기술인 시각화와 관련해서 조용기는 다음과 같이 썼다. “시각화와 꿈을 통해서 당신의 미래를 배양하고, 결과를 부화시킬 수 있다.”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인 사차원의 서문에서,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는 시각화에 대해 쓰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려 하지 말라. 단지 즐기기 시작하라! 이것은 진실이며, 이것은 실제로 작용하고 자체 검증된다. 성령으로 하여금 이 메시지를 우리와 세상에 주도록 한 바울 조용기에게 감사한다.” (조목사 자신도 그의 희망의 메시지는 언제나 사람을 높이고, 오로지 번영과 건강, 그리고 문제없는 삶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자기애/자존/자기 가치를 통해 인간을 높이는 위험한 메시지를 옹호하며, 기만적인 이기심을 조장한다.)

물질적 축복에 치중하는 한국 기독교

― 한국의 기독교는 그 특성상 기독교를 물질적 번영으로 인도하는 길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과 그 외 동북아시아 국가들에서 수세기간 전해진 민속 신앙인 샤머니즘(shamanism 무당신앙)의 잔재이다. 샤머니즘에서는 건강이나 사업상의 성공을 위해 영과 자신 사이를 중재해 주도록 무당(일종의 남녀 의사)에게 부탁한다. 한국 샤머니즘에는 다른 영들 위에, 무당을 통해 접촉할 수 없는 한 위대한 영이 있다. 루터교 선교인인 데이비드 수잔(David Susan)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한국에서 기독교가 시작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왜냐하면 초기에 기독교 선교인이 와서 ‘당신이 죽을 때 심판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하면, 한국인들은 ‘아, 맞아요. 이전에 그 신에 대해 들어봤어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는 한국인들이 기독교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샤머니즘의 신들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동류의 영이라고 생각한다.

조목사의 기독교는 마법과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 자기 중심, 신쿄(Sinkyo), 일본 불교 및 기독교를 후안무치하게 혼합하여 한국인의 종교적 성향을 이용하고 착취하고 있다. 그러나 순수한 그리스도의 종교에 이교도의 생각과 행위를 혼합하는 것은 성경에서 우상숭배의 중죄로 정죄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와 신비술의 결합으로서 바울은 이러한 말로 그것을 금지했다: “빛과 어둠이 어찌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하겠느냐?”(고후6:14-18)

무엇이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도록 했는가? 그 해답은 성경적 가르침과 이교도적 정신 기술의 우상 숭배적 혼합 때문이다. 신자들의 행동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없어졌고,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적인 메시지와 상상의 산물로 대치되었다.

– 피터 마스터스(Peter Masters), 병고침의 유행(The Healing Epidemic), 35쪽〕

http://www.omega.or.kr/lecture/read.php?table=mission&sn=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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