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권력자 “이문열”씨의 요즘 괴변들을 듣고 있노라면…

대표적 보수논객인 소설가 이문열씨가 한일합방이 국제법상 ‘합법’이라는 주장을 펴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발단은 이문열씨가 20일 <문화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청산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하며, “우리는 36년간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합방됐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그의 이같은 주장은 우선 1910년 일제에 의한 조선의 강제합병을 국제법상 합법이라고 보는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지적된다.

일본은 1876년 군함을 앞세워 조선과 강화도 수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뒤 조선을 식민지로 차지 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조선의 주권을 침탈했으며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를 통해 조선침략의 경쟁국이었던 청나라와 러시아를 제압하고 미국과 카쓰라-태프트 조약 체결을 통해 두나라가 조선과 필리핀을 각각 분할 점령키로 밀약을 맺었다. 그후 일본은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는 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통감으로 내세워 본격적인 조선의 식민지화에 나선 바 있다. 최근의 역사문서는 을사보호조약에 고종황제의 서명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 조약자체가 국제법상으로 무효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은 안중근 의사가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를 저격 살해하자 아예 조선의 강제합방 방침을 세우고 1910년 이완용 등을 비롯한 매국노들을 앞세워 강제합병했다. 한마디로 한일합방은 국력이 미약했던 조선을 무력을 앞세워 강제병합한 국제적 범죄행위였던 것이다.

이같은 치밀한 침략시나리오에 의해 이루어진 일본의 조선침략을 국제법상 합법적이라고 하는 이씨의 주장은 일본의 우익세력이 조선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씨의 주장대로라면 조선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살해한 안중근 의사는 합법적 합병을 방해한 테러리스트가 되며 합병 뒤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반일 의병활동도 모두 민란이 되는 셈이다.

그의 발언은 ‘한일합방은 합법’이라는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실제 1995년 10월 참의원 본회의에서 당시 무라야마 수상은 “일한 병합조약은 당시의 국제관계 등의 역사적 사정 가운데에서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되었다”고 주장했다. 무라야마 역시 그가 수상으로 재직하던 때인 1995년 10월 참의원 본회의에서 “일한 병합조약은 당시의 국제관계 등의 역사적 사정 가운데에서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되었다”고 밝힌바 있다. 이런 점에서 이문열씨의 발언이 일본 정부의 주장을 넘어서는 망언과 다를 바 없다.

뿐만 아니라 이씨의 주장은 ‘친일청산’을 바라는 국민여론과 크게 배치된다.

그의 발언은 친일 과거사 논쟁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친일의 내용과 기준을 말할 때 프랑스와 비교하는데, 프랑스는 전시점령 상황에서 4년8개월간 괴뢰정부가 존재했었던 반면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합방 당시 태어난 아이는 36살이 되도록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며 “바쁜 의원들은 여론에 떠밀려 과거청산에 올인하게 할 것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에 맡겨두어야 한다”며 ‘한일합방은 합법’이라는 논리를 폈다. 친일청산에 반대하는 그의 견해를 하나의 견해로 인정한다고 해도 한일합방이 국제법상으로 합법적이었다는 주장은 2차대전을 일으켜 수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는 등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던 나치정권이 합법적인 정권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궤변과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 그의 주장대로라면 과거사 진상규명이라는 원론에는 동조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합법적 합병’이라는 점에서 규명해야할 ‘과거사’ 자체가 없기 때문에 프랑스와는 달리 전시부역 등 청산할 과거가 없으며, 따라서 과거사 규명자체의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문열씨의 이같은 주장이 담긴 기사가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네티즌들은 크게 분노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관련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옮겨 싣거나 각종 사이트 게시판에 이문열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면서 ‘안티 이문열’ 동참을 호소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추세다.

네티즌 ‘hangurubang’는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36년간 우리는 국제법상으로 합법적으로 합방됐다’는 이문열의 이같은 역사관에 있다”며 흥분했고, 네티즌 ‘euywoong’는 “기득권자의 충실한 개인 이문열이 작가라고 설치니 가난한 시대의 시인은 진정 어디로 가느냐”며 개탄했다.

네티즌 ‘jin6431’도 “이문열의 말은 마치 ‘윤동주가 살아있는 동안(1917~1945 2월) 국제법상 조선이란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 윤동주가 대일본제국에 대한 저항시를 썼다는건 매국이다’라고 들린다”며 “이문열은 지금 친일조사를 연기해 과거조사가 불가능한 시점에 도달하게 해 민족정기를 흔들고 한나라당의 썩은 부분을 가리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또 자신을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네티즌 ‘neoplus’도 “한일합방이 합법이라고 하지만 고종이 옥새를 찍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지적한 뒤 “역사공부부터 제대로 하라”라며 이문열씨의 잘못된 역사관을 꼬집었다.

출처 : 한겨레신문,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오래전에 이문열씨의 단편을 보면, 가지지 못한 소수자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수 있는 글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는 그가 그렇게 갖고 싶어하고 오르고 싶어하던 “문학권력”의 최고봉에 올라섰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가장 높은 권력의 한 가운데에 말이다.

그의 젊을때. 산더미 처럼 큰 책들을 지고 집떠나는 사진을 볼수있다. 그는 문학을 아마도 “성공을 위한 도구”쯤으로 생각하고 고시공부하듯 했나보다. 그에게 있어서 문학은 <연좌제>를 피해 성공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었겠지.

지금의 그대를 보고 있노라면, 힘없는 민초들을 위해 살겠노라고 술집 나가는 아내의 뒷바라지로 법관이 되자마자, 부잣집 딸 잡아서 새장가들면서 독재정권에게 달라붙는 초임법관 스토리가 생각나는건 왜일까. 글속의 그 구두닦이 소년에 대한 이야기와 경찰에 잡혀간 여공에 대한 단편은, 지금의 영예를 위한 가슴이 아닌 머리속에서 나온 것들이었나.

그렇게 올라선 그 자리에서 그는 결국 극우의 홍위군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 논리의 괴변을 보고 있노라니, 이전에 노통의 당선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되려 황당해하는 인터뷰를 하고 앉아있던 위대한 우리의 문학 권력자님에게 하고 싶은 말은, <헛공부 하셨다>는 말씀 뿐.

물론 그런 시각의 소유는 자유지만, 난 더이상 그대의 편향된 시각으로 쓴 당신의 고적(孤寂)들에 대한 매력은 더이상 느끼지 못하겠다는 말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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