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획일적 복종에 의한 좆같은 상황에 대한 왕짜증

요즘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다양한 미디어와 다양한 성향의 채널들이 단 하나의 현상에 대해 얼마나 획일적(劃一的)으로 복종(服從)할수 있는지 알수 있게 된다. 종합체널은 물론이고, 뉴스. 요리 하다못해 홈쇼핑 채널까지 그 짜증나는 올림픽 개나발을 불어대느라 난리지랄들이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올림픽을 좋아하는 사람이외의 다수들은 요즘 티브이를 켤 일이 없다. 게다가 그나마 잘 골라서 보고 있는 체널들은 시시때때로 송출을 중단하고, 중요한 그 현상의 명장면을 생방송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금메달 따는 장면을 이체널 저체널에서 다양한 양념을 넣어서 재탕 삼탕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젠 두들겨 맞는것만 폭력이 아니란 생각에 정말 동의할수 있을것 같다. 미디어의 폭력이 섹스. 전쟁. 폭력 같은거라고 정의되었다면, 난 하나더 넣어서 <담합송출>이라고 외치고 싶다.

또한 이런 현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양한 채널이 우리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켜 줄 것이란 믿음은, 단지 보잘것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수 있다.

또한 역으로…

춈스키의 말대로, 우린 국가가 지정한 규율안에서 자유를 허락받은 불쌍한 존재들이란 사실을 깨닳는다. 다양한 채널들은 결국 이런 획일화된 복종의 규율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보다 더 셀수없이 많은 미디어의 자유를 누리는 미국안에서는 이런 <보이지 않는 미디어의 담합>이 결국 그들의 그런 만행들을 희석시키는 동조자의 역활까지 맡고 있는거잖아.

결국 다양성(多樣性)이란것들의 담합(談合)은, 획일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채널들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돕는 미국의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결국,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런 빈곤(貧困)들은, 이전시대를 살아갔던 그들보다 더 못한 삶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은 이런 빈곤을 딛고 일어날 반란이나 혁명의 자유는 있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스포츠… 평생 몇번 들어보지도 못했던 선수들의 경기장면을, 몇번이나 슬로우비디오로 봐야만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것도 여러체널에서 담합(談合)해서 틀어대느라, 다른 프로그램의 선택권도 없는 이 좆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One thought on “미디어의 획일적 복종에 의한 좆같은 상황에 대한 왕짜증

  1. 미디어라는 단어가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게 새삼 느껴지는군요. 피아노맨님

    거 혹시 오묘한 책임감 같은거 느껴지지 않습니까? 방송국 하나 만드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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