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기 사건 재수사 논란

정형근 의원·안동일 변호사의 ‘재수사 반대’를 반박한다

현준희 전 감사원 직원

지난 7월 4일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의 ‘KAL기사건 재조사’ 언급 이래 다시 그 진실 여부가 수면에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의문사 진상규명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을 제출한 한나라당의 원희룡 의원조차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KAL기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만큼 그 사건이 진상규명의 대상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맞다. 이것이 바로 국민정서이다. 이 사건을 17년간 추적해온 필자로서는 천동설과 지동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다, 왜? 고귀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 암흑기까지 유럽을 지배해온 천동설이다. 다른 천동설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한국 정부가 1백15명의 희생과 관련될 수 있겠는가. 왜? 대한민국은 자유평화를 사랑하니까.”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 정서뿐이다.

반면 지동설은 과학이다. 다만 1천 년을 지배해 온 도그마가 무서워 코페르니쿠스는 임종(1543년)에 이르러서야 지동설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화는 브루노, 갈릴레오 등 후학들이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1987년 11월 29일 KAL기가 안다만에서 사라졌다고 했을 당시 일본에 있었던 필자는 이 사건에 관한 자료를 자유롭고 원없이 수집, 역추적한 결과 ‘아니다’라고 판단을 내렸다. 다만 ‘북한의 폭파사건’으로 굳어진 ‘천동설’이 무서워 14년간 쥐고 있기만 했다. 남북화해 시대인 2001년 9월에야 『내외저널』 창간호에 “북한이 했다는 증거도, 폭파됐다는 증거도 없는 실종사건이다”는 지동설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럼 안기부가 조작했다는 것인가? 수사권이 없는 필자로선 조작이라곤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수사결과가 엉망이니까 다시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집권당 대표 입에서 재조사가 제기된 만큼 의혹은 확실한 것 같다. 1라운드는 끝났다. 지금은 재조사를 해야 할 시점이고 그 결과에 따라 조작여부가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펄쩍 뛰는 KAL기 관련자들

[#M_ more.. | less.. | “앗, 뜨거라.”
특히 당시 사건에 직접 관여한 국정원(안기부), 검사, 변호인들은 펄쩍 뛰고 있다. 당시의 안기부 수사책임자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고, 검사는 현 이상형 변호사, 변호인은 안동일, 정재헌 국선변호사 등이다. 최근 언론에 비쳐진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김현희를 기소한 이상형 변호사는 “대명천지에 국민 1백15명의 목숨이 걸린 문제를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억측”이라며 “살아 있는 증거인 김씨가 현재 생존해 있는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안동일 변호사는 “16년여간 쌓인 유족들의 한은 이해되지만 KAL기 폭파사고가 북한의 테러행위라는 본질은 달라질 수 없다”며 진실규명 움직임들을 “의혹 부풀리기의 반복”이라고 폄훼했다. 그리고 “확정판결까지 난 사안을 다시 조사하는 것은 체제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경솔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정형근 의원 역시 빠질 양반이 아니다.
“초동수사 과정에서 김현희의 진술에 의존했던 만큼 지엽적인 부분에서 몇 가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재조사할 경우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김정일이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 김현희의 일본어 교사인 이은혜 납치사실을 시인한 적도 있지 않느냐.”
사건의 깊이를 모르는 사람에겐 그럴 듯하고, 국민정서에 딱 맞는 지당한 말씀이나 중요한 것은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그간 필자, 희생자가족회, 시민단체, TV 3사 등이 국내외에서 나온 여러 가지 증거들로 각개격파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재수사를 반대해도 소용없다.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대명천지에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겠냐고들 하지만, KAL기 사건 1년 전의 ‘금강산 댐 사기사건’은 누구의 작품인가? 그리고 같은 해의 ‘수지 김 살해 은폐조작’은?

정부에서 김현희를 살려둔 이유는 나중에 조작시비가 있을 경우를 대비한 산증인 역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상황이 막상 뜨거워지자 지난해 12월 추운 겨울에 젖먹이 딸과 함께 잠적하고 말았다.

김현희가 북한 여자라는 증거로 정 의원 등은 김정일이 이은혜 납치를 시인한 것처럼 각색해서 감초처럼 써먹고 있다. 이은혜는 김현희가 주장하는 바 그녀의 일본어 교사에게 부여된 한국 이름이다. 7월 11일 MBC의 일요일 토론프로에서 정 의원은 이를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북한에서는 다구치 야에코라는 여자를 납치했다고 시인한 바 있다. 그러나 다구치 야에코가 이은혜란 것을 시인하지는 않았다.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의 공식입장도 그렇다. 그런데도 장마철 폐수 흘리듯 이를 기화로 사건 전체를 호도하는 정형근 의원. 그는 방송에서 KAL기가 사라진 해역은 수심이 3천m라서 블랙박스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안다만 해역은 우리나라 서해와 같이 얕은 바다이다. 실제로 사건 발생 2년이 지나 KAL기 잔해라는 것을 건져낸 지점도 수심 40m에 불과했다.

자기(?) 사진도 몰랐던 김현희

필자는 KAL기 사건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을 이 대목으로 생각한다. 인양된 잔해는 이 사건의 유일한 직접 물증이 될 수 있었다. 통상 기체 조각 이면엔 제조번호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프랑스 마르세이유 해안에서 발견된 기체 조각의 경우 제조번호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해당 기체가 1944년 실종된 생텍쥐베리의 정찰기임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안기부는 관리 소홀(?)로 이 중요한 물증을 고물상에게 팔아버렸다.

국정원이나 정 의원은 으레 ‘초동수사에서 몇 가지 지엽적인 오류일 뿐’이라고 두루뭉술 넘어가고 있으나 어림없다. 예컨대 이제 장기영에게 꽃을 준 사진 속 화동의 귀가 김현희의 귀 모양과 다르다는 것은 만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김현희는 범인이 아니다.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지엽적인 게 아니라 사건 전체가 뒤집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실이 1심 판결문엔 쏙 빠졌다는 것이다. 김현희는 화동이 “나다”라고 자백했고 재판정에서도 “(그 사진은) 평양의 집에도 있어요”라고 증언했는데 왜 뺏을까? 김현희의 말이 거짓말이라서? 아니면 진실이 두려워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그런데도 안동일 변호사는 최근 『나는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동아일보』 발간)라는 단행본까지 내면서 “의혹 부풀리기”라고 주장한다. 좋다. 무엇이 부풀리기인지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적시해 달라. 또 체제부정이라고 색깔론까지 펴고 있는데, 대법원 판결이 중세 교회의 도그마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는 “내가 변론한 김현희가 조작된 가짜였다면 나는 가짜를 위해 변론한 셈이 된다. 내가 가짜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변호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자 견딜 수가 없었다”고 집필동기를 밝히고 있다.

자신의 표현대로 ‘견딜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엔 몇 배나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번 의혹들은 증거로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두 번 망신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는 거짓말쟁이 김현희를 감싸는 글로 일관했다. 또한 도처에 김현희와 그녀의 자녀들을 그리워하는 휴먼 스토리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가 진정 김현희를 위했다면 재판정에서 “김현희는 범인이 아니다. 귀가 다르지 않느냐”고 싸웠어야 했다. 하지만 이 결정적 증거를 놔두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동정론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읽기 거북한 대목은 그의 책 19쪽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자백이 증거의 왕’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자백도 보강증거 없이는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의 기본원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KAL기 폭파사건의 증거는 김현희의 실체 그 자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김현희의 자백은 신빙성에서 완벽하기 때문이다.”

안변호사는 TV도 안 보는가. 2차대전이 끝난지도 모르고 밀림 속에서 나온 일본군 패잔병 딱 그대로다. 당시 안기부 수사관들은 김현희의 자백에만 의지하다 보니 잘못된 것이라고 수차 시인했다. 곧 김현희는 자신이 의도했든 안 했든 천하의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안 변호사는 김현희의 자백이 무슨 근거로 신빙성을 가진다는 것인지 밝힐 책임이 있다. 북한의 호적이라도 확인했는가? 책에는 없다. 아니면 당시 안기부 발표대로 앙골라주재 북한외교관 김원석이 그녀의 아버지임을 확인했는가? 이것도 아니다. 당시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현지 확인한 결과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자, 안기부는 ‘확인 중’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얼버무리고 있다.

8개국에 걸친 그녀의 파괴공작 행적도 무수한 거짓말로 점철됐다.
일본 노다 미네오 선생의 실제 답사로 거짓임이 드러나자 슬그머니 자신의 수기에 노다의 지적대로 고쳐 놓은 곳이 수십 군데이다. 그 중의 하이라이트는 바레인에서의 음독자살 시도다.

당시 언론이나 김현희의 수기에 의하면 그녀는 청산가리 음독을 시도하여 3일간이나 의식불명으로 사경을 헤맸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바레인 현장에 있었던 일본 외교관 스나가와씨가 자신 목격담을 실은 ‘극비지령’에 의하면 김현희는 의식이 멀쩡했고 꾀병임이 간파됐다.

왜 김현희는 있지도 않은 사람을 자기 아버지로, 엉뚱한 학생을 자기라고 우기는 것일까? 이 희대의 거짓말쟁이의 실체는? 이런 엉뚱한 짓은 이를테면 조폭세계에서 사후 보상대가로 졸개가 죄를 뒤집어쓰고 감방에 가는 것 같은 각본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닐까.

따라서 실체를 알려면 각본 없는 김현희를 만나야 한다. 다음 소개하는 4가지 사례는 임의성이 높은 만큼 순도 99%라고 믿어도 좋다.
먼저 임수경과의 만남이다. 1989년 8월 말 방북으로 구속된 임수경은 안기부 특별면회실에서 김현희와 3시간 동안 만났다. 당시 안기부는 언니격인 김현희로 하여금 “얘, 네가 북한 실상을 모르고 그러는 거야”식으로 타이르려는 의도였으나 임씨의 입장이 강경하여 실패했다. 당시 임수경의 김현희에 대한 인상은 “시간이 있으면 내 방에 놀러 와. 맛있는 차 타줄게”라며 참으로 수다스러웠다고 한다. TV에 비쳐진 다소곳하고 청순가련한 구석은 조금도 없었다.

알려지기론 김현희는 67kg의 역기를 단숨에 들고, 줄넘기도 1회 수천 번, 사격도 명사수에다 수영도 2km는 거뜬한 철인이다. 주먹엔 굳은살이 박히고 어깨에는 칼자국을 새긴 필살의 테러리스트이다. 안 변호사도 이를 실제로 확인해 준다.
“나는 그를 위로하고자 등을 토닥거리며 한쪽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자그만 얼굴처럼 젊은 여인의 가냘픈 어깨를 상상했던 나는 순간 놀랐다. 역도선수의 단련된 어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안변호사의 책 26쪽)

그러나 희생자 가족회장인 차옥정씨의 경험으론 반대다.
“김현희가 마포구 서교동 한 교회에서 신앙간증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간증 후 연단을 내려오는 그녀를 갑자기 껴안고, ‘야, 니가 무슨 간첩이냐, 바른대로 말해라’고 있는 힘을 다하여 허리를 조였다.”
주위 보디가드들은 떼어놓으려 했지만 그간의 회한이 초인적인 힘으로 변한 차씨는 김현희를 안고 한참동안 딩굴었다고 한다. 그때 김현희는 아무 말도 못하고 힘도 못 썼다. 무시무시한 근육과 달리 섬섬옥수의 고운 손에 나긋나긋한 여자였다.

김현희는 북한 출신 맞나

그럼 과연 김현희가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은 옳은가?
한 사람의 목격담은 열 사람의 증언보다 낫다는 법언같이 필자는 김현희와 바그다드에서 아부다비까지 동행한 KAL기 사무장 박길영씨의 인터뷰에 주목하고 있다.
박 사무장은 당시 70대 병약한 노인(김승일)과 20대 예쁜 아가씨(김현희)의 이상한 커플을 눈여겨봤다며, 기내식이 끝난 후, 김현희가 담배 피우는 것을 목격했다.
‘식후연초’는 골초들의 행복한 순간이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은 지독한 가부장적 유교 사회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도 1960~1970년대만해도 처녀가 공공연한 장소에서 담배 피웠다가는 시집가기 틀린 시절이었다. 하물며 할아버지뻘인 70대 노인 앞에서의 흡연은 북한 여성으론 상상할 수 없는 행동거지다. 그러나 재일교포나 조선족이라면 무방하다. 그쪽에선 여성흡연이 흠이 아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필자는 그녀가 북한 출신이 아니라고 본다.

그럼 어느 나라 사람일까?
이에 대해선 김의 중국말을 분석한 일본 음향과학연구소 스즈키 마츠미의 분석자료가 있다. 지문처럼 목소리로도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데 그에 의하면 김현희는 적어도 초등학교때까지는 북경어권에서 자랐다고 한다. 북경어권이라면 조선족 거주지역도 포함되는바, 이상을 종합하면 조선족일 가능성이 1순위다.
청순가련형 김현희의 이미지는 그녀의 수기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등 3편의 책으로 각인됐다. 필자는 그 책을 읽을 때마다 대필냄새를 느꼈으나 알 도리는 없는 법. 그러나 讀書百編義自見(많이 읽다 보면 보인다). 결정적 대필증거를 찾았다. 이 책 318쪽 이하의 이야기다.

1988년 1월 15일의 안기부 수사발표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연일 조사를 받던 김현희는 기분전환상 수사관과 함께 덕수궁에 가 세종대왕 동상을 보고 그 할아버지가 한글을 만든 분이라는 설명에 쇼크를 먹는다. 북한에서는 바보 온달이 만들었다고 가르쳤을까.

김현희는 수기 곳곳에 이런 식으로 북한을 비하하고 있으나 한글에 관한 한 북한은 국수적일 정도로 한글을 전용한다. 한글날을 한글창제일을 기준한 1월 15일로 하는 게 다를 뿐이다. 이야기는 점점 더 이상해진다.

88년 1월15일 이전엔 김현희가 아니라 마유미

그녀 일행은 덕수궁에서 경기도 원당으로 야외바람을 쐰 후 다시 시내로 들어와 동대문시장을 쇼핑한다. 그런데 포목상 아주머니들이 “아니, 저 아가씨 김현희 아니야”하고 웅성거리는 바람에 황급히 다른 데로 피한다. 다시 자리잡은 곳은 냉면으로 유명한 중구 오장동 골목.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옆자리 손님들 대화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건 그렇고. 거, KAL기 김현희 말이야. 걔 얼굴 자세히 봤어?”
“봤지. 그년 색골로 생겼더라. 남자 꽤나 밝히겠더라니까?”
“몇 놈 잡아 먹겠다고들 하더라만…. 인물 값 좀 하겠지?”
“인물값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물 덕 보게 생겼다구, 모두 다 동정하는 게 왜 그렇겠어. 얼굴이 곱살하니까 동정하는 거지?”

김현희는 심한 모욕감과 수치감 때문에 “뭐가 어쩌고 어째? 너 말 다 했어? 이 개새끼야”라며 한마디 내뱉고 따귀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세인들이 김현희란 이름을 처음 알고, 얼굴을 자세히 본 것은 1988년 1월 15일 안기부 수사발표 때였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수사상 극비사항이었다. 그런데 시장 아주머니, 음식점 손님들이 그녀의 얼굴과 이름을 알 수 있었단 말인가.

이 정도 되면 더 이상 볼 것없다. 필자는 김현희가 가짜라고 생각한다. 다시 조사해야 한다.

KAL기사건의 진실규명은 국내문제가 아니다. 통일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 김정일이 사주범으로 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증거를 찾아 사과를 받든지, 증거가 없으면 이쪽에서 사과해야 한다.

지금처럼 어정쩡해선 통일은 요원하고 김정일의 답방도 불가능하다. 무슨 변고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KAL기사건에 관한 의혹제기를 김정일 답방을 위한 ‘연착륙 모의’로 보는 정형근 의원의 의혹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http://www.digitalmal.com/news/read.php?idxno=9290&rsec=MAIN&section=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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