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한마디로 ‘돈지랄’이다

내가 마이클 무어를 실제로 본 것은 2002년 5월 23일 오후 7시 반, 칸느 영화제 마지막 날 시상식장에서였다. 그는 경쟁 부문에 「볼링 포 컬럼바인」을 들고 왔고, 이 영화는 그해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그해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한 학생의 총기 난사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마이클 무어는 여기서 미국이 총으로 세워진 나라이며, 이 사건은 그 총을 팔아먹으려는 지구상 최대의 군산복합체 국가, 미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파고들었다.

마이클 무어는 자신이 상을 받을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약간 수줍은 얼굴로 흥분해서 올라왔고, 갑자기 마이크를 잡더니 미국이라는 나라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거의 5분이 넘는 연설을 했다. 유럽에서 미국을 욕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은 아니다. 유럽은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장내는 박수소리와 웃음소리로 넘쳐났다.

미국을 향해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치자 장내의 박수는 절정에 달했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그 다음이다. 마이클 무어는 장내를 향해서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당신들도 부끄러운 줄 알라고 그 박수소리에 대답했다. 장내는 썰렁해졌고, 마이클 무어는 개의치 않고 내려갔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세상에서 그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는 세상과 싸우려고 작정을 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의 칼은 카메라이다.

세상과 싸우려고 작정한 인간, 마이클 무어

마이클 무어는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 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이클 무어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할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는 플린트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 이 도시 주민의 대부분은 제너럴모터스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 산업의 불황을 이유로 감원이 시작되었다. 도시는 순식간에 실직자들로 넘쳐나고, 폐허처럼 변한다.

마이클 무어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16밀리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제너럴모터스 회장 로저 스미드를 만나서 그 설명을 듣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로저 스미드 회장은 마이클 무어를 만날 생각이 없다. 이제 마이클 무어와 로저 스미드 사이에서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그러는 동안 플린트는 거의 쑥밭이 되다시피 변해간다. 그것이 마이클 무어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이다. 1990년의 일이다.

그 이후 마이클 무어는 카메라를 들고 질문한다. 도대체 미국인이란 무엇인가?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이 미국을 움직이는가? 로저 스미드를 만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마이클 무어는 자신이 평생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건 미국과 싸우는 일이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5분, 두 대의 비행기가 뉴욕 한복판의 금융 중심지인 쌍둥이 빌딩을 향해서 날아들었고,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피바다가 되었다. 테러리즘에 대해서 세계는 경악하였고, 미국은 피의 복수를 맹세하였다. 범인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조직 알 카에다로 밝혀졌고, 그를 체포하기 위하여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이 보내졌다. 여기까지는 잘 알겠다. 그런데 그 다음이 이상하다. 갑자기 테러 배후세력이 있다고 미국 CIA가 발표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나타나서 이라크가 테러 수출국이라고 주장했다.

거기에는 핵무기뿐만 아니라 생화학 무기도 잔뜩 있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이라크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가 되었으며, 사담 후세인은 21세기 지구상 모든 나라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갑자기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후세인은 모든 공공시설에 대한 유엔의 사찰을 받아들이겠다고 애걸을 하다시피 서둘러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미처 듣지 못한 것처럼 그냥 폭격을 시작했다. 세계 6대 문명 발생지 중의 하나인 바그다드는 불바다가 되었다. 전쟁은 곧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말한다. 이라크는 베트남이 되어 가고 있다.(그리고 그 베트남에 한국군을 보내겠다고 노무현 정부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화씨 9/11」은 공포영화

[#M_ more.. | less.. | 여기까지는 모두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마이클 무어는 이상한 사실을 몇 가지 더 알게 된다. 이야기는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9월 11일 비행기 테러 이후 일주일 동안 미국의 모든 비행기 편은 운항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모든 중동인들은 FBI의 조사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미국에 유학 중인 빈 라덴 일가 30여명이 미국 정부의 보호 아래 아무런 제재나 수사 없이 대통령이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유유히 미국을 빠져나갔다. 도대체 누가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단 한 명,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왜? 마이클 무어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도대체 조지 부시가 누구야? 그 대통령이라는 자의 주변에서 그걸 말리기는커녕 수수방관하면서 돕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야? 도대체 그들은 왜 돕는 거야?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은 무서운 영화이다. 그건 거의 목숨을 걸었다는 말이 떠오를 만큼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

마이클 무어는 그 대답을 찾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는 부시의 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거기서 탄식할 만한 장면을 목격하고야 만다. 빈 라덴 일가는 아버지 조지 부시와도 잘 알고 지내는, 매우 친밀한 우정관계를 대대손손 물려받고 있는 사이였다. 어떻게? 석유는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돈이다. 그리고 중동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나라들이다. 중동은 미국 경제의 7퍼센트를 쥐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은 그냥 간단하게 단언한다. “그 돈이 빠져나가면 미국은 끝장이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유전을 갖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사관은 백악관 바로 앞에 있으며, 이 대사관을 백악관 대통령 경호원들이 보호하고 있다. 여기에 조지 부시 일가는 난마처럼 얽혀들고, 그런 다음 지금 백악관 주변의 조지 부시를 둘러싼 거의 모든 행정 각료들과 매스컴 소유주들과 간부들의 인맥이 그 친인척과 석유 주식들로 뒤엉킨 복마전이라는 사실을 마이클 무어는 파고 들어간다.

이렇게 그는 이라크 전쟁까지 가기 위한 자료들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마이클 무어는 단순 명쾌하게 말한다. “전쟁이란 한 나라가 외국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건 가진 자들의 계급이 갖지 못한 계급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그것을 더 분명하게 만들기 위해서 벌이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학자 에릭 홉스바움의 말이기도 하다. 에릭 홉스바움은 점점 더 전쟁이 전 세계적 규모가 되어 가고, 그것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는 이유는 단지 교통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러한 전쟁을 자본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며, 착취가 그만큼 세계적인 규모로 되어 가기 때문이다.

마이클 무어는 이라크 전쟁이 그 구체적인 사례임을 보여준다. 더 끔찍한 진실은 이것이 미국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혹은 될 뿐만 아니라) 조지 부시 일가와 그 친구들의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는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구상의 미친놈들과 바보같이 순진한 놈들, 그리고 그 이익을 함께 나누려는 교활한 놈들만이 이 전쟁에 기꺼이 동참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이를테면 (셋 중의 하나) 한국말이다.

“이라크는 돈벌이에 가장 좋은 기회”

마이클 무어는 세상이 알고 있는 사실과 함께 그가 방송국의 친구들과 백악관에서 찍어 놓은 (것을 몰래 반출한) 홈 비디오테이프와, 부정할 수 없는 주식 증명서류들을 동원해서 이 전쟁과 관련된 미국 기업의 주식과, (누구보다도) 조지 부시 가문의 저 가증스러운 부의 원천을 파고들어간다. 심지어 이라크 침공 이전에 이란 우회 송유관을 매설하려는 기업을 위해 시간을 벌려고, 소수 미군 병력을 보내 아프가니스탄과 아무 이유도 없는 전쟁을 치렀다는 대목에 이르면 거의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21세기의 전쟁이 이제까지 그러해 온 것처럼 사실상 돈을 놓고 벌이는 자본주의의 한 과정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음은 「화씨 9/11」의 가장 솔직한 장면 중의 하나.

이라크에서 전쟁이 나던 날 미 군수업체에서는 파티를 연다. 여기에 미국 항공업체 주주들과 DHL(국제특송업체) 등의 주주들이 모인다. 그 중 한 명이 인터뷰에 응한다. “이런 말이 좀 뭐하긴 하지만 이라크는 돈을 벌기에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거기엔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게 다 있으니까요.” 그렇게 이라크 전쟁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 동안 정작 미국 국경 해안가는 예산 부족으로 그 넓은 지역을 텅 비워 놓은 상태로 방치한다. 담당자는 자기 혼자라서 서류를 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하소연한다. 백악관은 돈이 되는 곳에는 투자하지만, 돈이 벌리지 않는 곳은 그냥 방치한다.(북한에서 석유가 나지 않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마이클 무어는 그 자본주의의 무시무시한 탐욕을 보여주는 이라크 전쟁 과정에서 생략되어 있는 부분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라크에 간 병사들과 그들의 가족이다. 그들은 모두들 처음에는 이라크에 놀러 간 것처럼 밝고 명랑하다. 그들은 엠피3에 담은 헤비메탈 음악을 들으면서 신나게 총을 ‘갈겨대고,’ 대포를 쏘고, 탱크로 짓밟는다. 럼스펠드는 모든 공격은 일절 오차 없이 전쟁에만 맞추어져 있으며, 이라크 주민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화면에 즐비하게 늘어선 것은 아이들과 부녀자들의 시체와 끔찍한 화상이다. 방금 웃고 들어간 미군 병사가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죽음은 일상사가 되고, 미군들은 더 이상 웃지 않는다. 그 중 한 명이 대답한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나도 죽는 느낌입니다. 마치 영혼의 일부가 죽어 가는 것 같아요.”

전쟁은 전염병이다. 그건 실존주의자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죽어 가는 동안 조지 부시가 한 일은 참전 군인들의 보너스를 깎고, 건강보험 공제삭감을 통과시키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조지 부시 정부는 이라크에서 죽은 병사가 그 죽음으로 인해 미처 근무일자를 채우지 못했다고 3일간의 급여를 공제하는 공정성(?)을 발휘하기까지 한다. 이라크 전선에서 편지를 보내는 병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지 부시는 미친놈이에요, 정말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쓴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흑인 장교는 “감옥에 갈지언정 다시는 거기에 가고 싶지 않다”고 카메라 앞에서 증언한다.(그런데 그런 곳에 자기 나라 병사를 보내지 못해서 환장한 나라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실천

그래서 마이클 무어는 다시 한 번 기록을 들쳐본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미국 의원의 자식 중 이라크 전에 간 자식을 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이클 무어는 입영지원서류를 들고 의회 앞에서 의원들을 만나 “모범을 보이기 위해 자식을 이라크에 보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그래서 나도 궁금해졌다. 이라크 파병에 찬성하는 우리나라 의원들 자식들과 친척들의 자식들을 먼저 보내는 게 나라의 모범이 되지 않겠는가? 청와대 각료들의 자식들부터 보내는 게 도리가 아닌가? 파병에 찬성하는 언론사 간부들의 자식들부터 보내는 게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참! 홍사덕 전 의원은 언제쯤 출발하실 참인가?) 그리고 마이클 무어는 빈 서류를 들고 말한다. “누가 자기 자식을 전쟁터에 보내고 싶겠는가?”

남의 자식이라고 전쟁터에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곤란하다. 자기 자식은 군대도 안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남의 자식은 전쟁터에 가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건 정말 곤란하다. 더더구나 자기 돈벌이를 위해서 남의 자식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안 된다. 그런데 그렇게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마이클 무어는 지금 미국 곳곳에서 자원 입대병을 찾아 돌아다니는 국방부 인사처 장교 뒤를 쫓는다. 그들은 부자 동네는 갈 엄두도 못 낸다.

그 대신 가난한 동네를 뒤진다. 그 동네에는 마이클 무어의 고향 플린트도 포함되어 있다. 그 동네 사람들은 말한다. “바그다드의 거리보다 우리 동네가 더 폐허처럼 보이지 않아요?” 제네럴 모터스가 떠나고 실직이 만연되어 있는 이 동네의 가난은 정말 전쟁으로 인하여 폭격 맞은 거리를 연상케 한다. 그렇게 전쟁과 가난은 가까이 있다. 그 동네의 젊은이들은 여기서 굶느니 차라리 전쟁에 가서 기회를 잡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다음 장면은 이라크에서 다리가 잘려나가고, 척추가 망가진 채 모르핀으로 연명하는 젊은이들의 얼굴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부자들은 전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는 자기를 지지하는 부자들 앞에 나가서 자랑스럽게 연설한다. “부자들, 그리고 더 부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저의 반석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그들의 부의 새로운 원천인 이라크가 있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이런 표현을 용서하시라) “돈지랄”이다.

이미 사람이 죽었다. 김선일씨는 참수를 당해서 죽었다. 좀 더 정확하게 우리는 그를 살리지 않았다. 그를 죽인 것은 우리들이다. 그런데 지금 그 전쟁에 가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른다. 왜 웃음거리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왜 조지 부시의 주식을 올려주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것일까? 마이클 무어처럼 질문해 보자. 누가 한국에서 그로 인하여 돈을 버는가? 누가 그로 인하여 이익을 챙기는가? 누가 그로 인하여 대신 죽어야 하는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광화문에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소리쳐야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기 전에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을 보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행동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우리에게, 이 영화는 시급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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