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나라

예전 교련 교과서였나 도덕 교과서였나,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993회 침략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남을 침략해 본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가르쳤던 기억이 납니다. 헌데 바로 그 다음 단원이 한민족의 웅비를 편 사례 중에 ‘대마도 정벌’을 들고 있어 황망했던 기억이 나구요.

뭐 지금 생각해 보면 대마도 정벌이야 지긋지긋했던 왜구의 극성에 대한 하나의 방어적 공세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국력을 기울여 일본을 공격한 것도 아니니까요. “힘이 없어 못했지 등신들….”하는 비아냥을 꾸짖어 물리친다면 남을 침략해 본 적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자긍을 가져도 무방하다 싶습니다. 단 단어 하나를 추가하면요. ‘스스로’

우리 스스로 남을 침략해 본 적은 없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그리고 우리는 ‘타의에 의해서’ 매우 다양한 국제전을 치렀습니다. 819년 신라 헌덕왕 때는 고구려의 유민 이정기가와 그 일족이 대를 이어 당나라 산동 지역을 점거하고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 3만 명이 파견됐었습니다. 세계 제국 당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손바닥만한 나라 신라에서 3만명이라는 대군을 보낸 겁니다. 물론 당나라의 ‘황명’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 당시 그 황명을 받자와 구원군을 보낸 건 갸륵한 신라가 유일했다지요.

[#M_ more.. | less.. | 몽고가 고려를 짓밟은 뒤에 몽고는 일본 침략의 전위대로 고려를 내몰았고 두 차례의 일본 원정에 수없는 고려 장정들이 현해탄의 물고기밥이 됐었지요. 역시 세계를 제패한 대원제국인데 그 요구를 어찌 거절하고 살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파병’이 아니었지요.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 참 불쌍하게도 몽고군의 앞잡이로 일본으로 들어가야 했지요. 평화롭게 잘 지내던 고려와 일본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고 먼 훗날 임진왜란 때 어떤 일본군들은 그 원수를 갚겠다고 나댔었지요. 누가 “우리 자의는 아니었다”고 볼멘 소리를 해 봐야 일본도에 목이나 날아가기밖에 더했겠습니까? “바가야로 니들은 등신들이냐? “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우리 민족의 스승 최영 장군도 2천명의 자이툰 부대를 이끌고 몽고에 항거하여 일어난 장사성의 난을 진압하러 가야 했습니다. 군대를 보내 자기를 도우라는 원나라의 요청에 응한 거지요. 기철, 권겸 류의 친원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니 요청 안해도 보냈을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한테 자기 백성 목숨이 귀했겠습니까? 장사성 보기에는 천하의 별 개떨거지같은 것들이 몰려와서 창을 겨누니 기가 막혔을 것도 같습니다.

” 저 까오리 팡즈들은 도대체 왜 우리랑 싸우겠다고 나서는 거지?”

장사성의 반란군과 고려군이 격돌했을 때 장사성의 졸개가 나서서 이렇게 외쳤을지 모르죠.

“어이 고려군들 도대체 니들 왜 온 거니?”

그러면 아마 최영 장군은 할 말이 없었을 거고, 부장이 알아서 대답했겠지요,

“몰라 씨바. 하여간 느네들한테 평화를 주러 왔어.”

조선 시대 효종 때, 청나라에서 갑자기 군대를 도와 자기네를 도우라고 요구해 옵니다. 한창 동쪽으로 동쪽으로 그러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세를 뻗쳐 오던 ‘나선’ 즉 러시아와의 국경 분쟁에 조선 조총병들을 써먹으려고 한 겁니다. 북벌의 의지를 불태우던 효종의 군대는 청나라 방위군이 되어 두만강을 넘어 저 멀리 흑룡강까지 진격해서 열심히 싸웁니다. 용감히 싸웁니다. 러시아의 정예부대 스테파노프 부대가 아작이 납니다. 용맹한 조선군의 기세가 시베리아 벌판을 울렸습니다. 조선군에게 혼쭐이 난 러시아인들은 도망치면서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을지도 모르지요.

“쟤네 뭐냐? 중국놈은 아닌 거 같은데.”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왔대. 그 나라는 중국이 시키면 죽는 시늉까지 한대.”

한 번도 ‘스스로’는 남을 침략해 본 적이 없는 나라의 후예 대한민국 군대 역시 스스로는 누구를 때려 본 적이 손톱만큼도 없지만, 연인원 수십만의 군대를 보내 베트남 민중과 싸웠습니다.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적을 상대로 했던 잘못된 전쟁’에 미국의 가장 큰 동맹국이 되어서 말입니다.

베트남 민중들은 아마 당연히 물었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겠지요.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먹고 살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먹고 살러 우리를 죽이러 왔느냐 .”
“우린 미국 없으면 못산다 못산다 못산다.”

그리고 이제 또 또 또……. 이라크 정벌을 위해 자이툰 부대가 파병되었습니다. 그래도 지난 시절 당나라를 돕고 원나라 군대에 묻어가고, 원나라를 구원하고 청나라를 건드리는 러시아를 때리기 위해 군대가 파병될 때, 부산 앞바다에 월남 가는 수송선이 뜰 때는 성대한 환송이라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자이툰 부대는 고양이 쥐잡는 걸음 걷듯 소리없이 사라졌습니다. 공수특전단과 707 여단, 해병대 등이 주력인 ‘재건 부대’ 자이툰 부대, 세계에서 미국과 그 섹스 파트너 영국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병력의 자이툰 부대는 그 ‘재건’ 와중에 또 이라크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겠죠.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그러면 아마 한국군은 월남전보다는 세련되게 이렇게 말하겠지요?

“한미동맹 때문에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그러고보니 고칠게 교과서 만이 아니군요.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역사상 993회의 침략을 받았지만 한 번도 ‘스스로’ 침략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고 고쳐야 하는 건 물론이지만 헌법도 고쳐야지요. 헌법 제5조 제1항,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는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스스로는’ 부인한다.”

강대국의 편의에 따라 이렇게 쉽게 군대를 동원해 주고, 강대국을 위해 충성스럽게 싸워 주고, 피는 피대로 보고, 그래도 지칠 줄 모르고 “명령만 내리소서.”를 부르짖는, 제 나라 백성이 목이 잘릴 위기에 처해도 “사람 하나 죽는다고 파병 철회하는 나라 봤냐?”라고 감연히 나서는 이런 고급 용병국은 세계사에 드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핏값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상한 용병국이었지요. 그 용병국은 수천년 동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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