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 아나운서의 블로그중에서

12명의 남자를 인터뷰한 글. 인터뷰로 엮인 책은 술술 책장이 잘도 넘어간다. 입말의 힘이다. 생생함의 힘이기도 하다. 마치 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전해듣는 것 같은 효과, 현장음의 효과를 주는 작은 따옴표.
그러나 작은 따옴표를 그대로 믿지는 말자.

이 문장부호 안에 담겨야 하는 글의 원형은 아는 자는 단 한 사람 뿐이니까. 생략된 말들도 많을 것이 분명하니까. 펜 잡은 사람의 체에서 여러번 걸러낸 말들만이 보여질 테니까.

여하튼 그 중에서도 내 귀에 걸린 말들, 글들…

<<< 이윤기 >>>

… 그 형에게는 ‘참 따뜻한 버릇’이 있었다. 소나무를 자르기 전 톱 등으로 나무를 툭툭 치며 “나무요 나무요 톱 들어가니더”하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구처 없어서 베기는 한다만 백 살 넘은 나무 욕보일 수 없다”는 것이 형의 말이었다.

(미야자끼 하야오가 생각난다. 이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오만과 착각에서 이제 벗어날 때..)

“… 진정 허허롭게 ‘살아버리는 인간’은 아직 조르바 한 명밖에 못 봤어요. 세상과 미디어의 도전을 이길 수 없어 허허로움을 위장하는 것은 진짜 자유가 아니에요… 뭔가 이루고픈 욕망이 있다 해서 자신을 욕심 많은 사람이라 탓하지 마세요. 자기 증명이 끝나지 않은 자가 물러서는 건 비겁한 일이에요.”

<<<황석영>>>

“기자들은 듣고 싶은 말을 지들이 다 가지고 온다”
(맞다. 기자 뿐 아니라 무얼 ‘조금’ 아는 사람들은 다 그렇다. )

“작가는 관점이 다예요. 첫 문장부터 마지막까지 바로 세계관.”

“전 안티란 말을 싫어해요. 안티가 뭐요. 정치적 용어로 말하면 ‘충실한 반대당’ 아니에요? 그것에 반대하면 또 그것과 비슷한 체계가 생겨나는 거야. 전 그거 딱 질색이거든요.”

“이문열, 김성동, 김훈. 그런 후배들 보면 꼭 한국전쟁 때 길바닥에 버린 어린 동생 같아.”

“… 환각젠데, …… 먹으니까…… 세상이 까마득해… 난 그때 이마가 열렸어. 뜨거운 것이, 하- 기막힌 경지더라구. 근데 이게 다 좋은 게 아냐. 깨는 시간이 너무 길고 너무 고통스러운 거야……. 그런데 세상만사가 다 그런거야. 갈 때 너무 뿅 갔으니 올 때는 급행료를 내라 이거지.”
(나도 급행료 잘 낼 수 있는데.. ^^;;;)

<<<조영남>>>

“종교도 학문도 모두 기능적인 거야. 사랑만이 진정한 신의 영역이지. 설명이 안 되잖아?”

“노자는 물처럼 살라고 했지. 그건 틀린 말이야. 인간은 역류를 탈 줄 알아야 해요. 물살 따라 흘러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내 색깔을 낼 수 있어야지. 그러려면 솔직하고 용기가 있어야 돼.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되니까.”

어떤 인간도 타인 앞에서 완전히 무장해제될 수는 없다. 특히나 감춰져 있는 그 무엇이 상처거나 미움이거나 고독이거나 위악인 경우.(느슨한 인간의 대명사처럼 구는 조영남 인터뷰의 클로징, 정곡을 찔렀다.)

<<<진중권 >>>

“…… 소설은 그때부터 안 읽었어요. 사회과학서적에 판타지가 훨씬 더 많다고 생각했죠.”
(마자. ‘진짜’ 판타지. 판타지라고 작정하고 첨부터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룰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주는…)

“회색이었던 친구들이 지구전에 오히려 강하잖아요. 아주 열심이었던 사람은 확 피었다 가라앉고.“
(히~~ 나도 지구전 할 수 있겠다.)

“스타일은 곧 그 사람이죠. 현실적 문제들은 거기 접근하는 데에 특정한 철학적 스타일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스타일이란 그저 글의 바깥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진리가 있다는 뜻이에요.”

“저는 비꼬고 되받아칠 뿐 위험한 ‘인물론’은 펴지 않습니다. 사람은 변화하는 존재인데 그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고 칼을 들이대겠어요.”

“적이니 동지니 하는 개념은 낡은 거예요. …… 하나의 입장이 절대적 진리일 수는 없어요. 내가 못 보는 걸 상대는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 싸우긴 왜 싸워요.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전쟁적 사고방식은 버려야죠.”(밑줄 짝! “하나의 입장이 절대적 진리일 수는 없어요.” 자기 확신적 문장의 대가 진중권도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진중권에게 도저히 못 참을 것은 정치적 견해차가 아니라, ‘대의’를 위해 희생돼도 좋은 인권은 없다는 나름의 원칙이 훼손당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밑줄 짝! “‘대의’를 위해 희생돼도 좋은 인권은 없다”)

“제대로 된 공동체는 (패거리주의에서) 해방된 개인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유의미한 연대를 맺는 거죠.”

“시노페의 시민들이 그에게 추방형을 내렸다는 말을 듣고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럼 나는 그들에게 체류형을 내리노라’ ”

“제게 명예욕이란 ‘욕을 먹지만 나는 지킬 것을 지켰다’ 그거예요.”
(말이 곧 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진중권의 책들을 다시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은임 아나운서의 블로그에서
http://cyworld.nate.com/bastian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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