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 이야기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진상규명통합특별법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한껏 높아진 가운데 한국전쟁 당시 한국정부가 조직적으로 형무소 수감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을 집단 학살했음을 보여주는 미국 기밀문서가 최초로 공개돼 충격을 던지고 있다.

6 일자 <부산일보> 인터넷판에 의하면, “초기 형무소 수감자와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집단학살이 당시 한국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입증하는 미국 기밀문서가 최초로 발견됐다. 이와 함께 당시 국군을 통제하고 있던 미군이 집단학살을 허락한 사실도 처음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 사실은 <부산일보> 김기진 기자가 1년 동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1950년 미 군사고문단 기밀문서와 미 대사관 상황보고서, 미군 CIC 활동보고서 등 관련 기록 상당수를 입수, 공개함에 따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미 군사고문단 롤링스 에머리치 중령이 작성한 ‘1950년 한국전쟁 초기의 역사’란 공식 자료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일 부산과 대구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좌익혐의자 8천여 명을 집단 처형키로 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당시 현장 책임자는 이승만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국군 3사단 23연대장 김종원으로 그는 하루 1500명씩을 처형할 작전계획을 세웠다. 그는 ‘인민군이 남하할 경우 수감자들이 집단 봉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시 부산형무소에는 3500명, 대구형무소에는 4500명이 각각 수감돼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감자들은 전쟁 전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수감된 좌익혐의자가 대부분이었으나, 전쟁 발발 직후 집단적으로 예비검속된 국민보도연맹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의 이같은 학살 계획은 미 군사고문단의 개입으로 지연됐다. 하지만 군사고문단은 김종원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전황이 악화되면 형무소 문을 열고 기관총으로 모두 사살해도 좋다’는 조건부 허락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미군과 김종원이 협상을 벌이고 있던 순간에도 대전형무소에서는 미군 상당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1800여 명(미육군 G-2 보고서 기준)이 집단 총살됐다.

정부 지시로 대전형무소 수감자 학살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보도연맹원들을 집단 학살한 사건과 관련해 미군 제25 CIC 분견대는 1950년 11월 2일자 활동보고서에서 ’50년 7월 1일 한국 정부의 지시로 경찰이 대전과 그 인접지역에서 민간인을 집단 살해했다. 과거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였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한국 정부의 지시로 7월 1일 대전형무소 수감자가 살해됐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발견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보도연맹원 학살과 관련해 미 24사단 CIC팀 활동보고서에 드러난 희생자는 제주 700명, 경북 김천 1200명, 경북 의성 180명, 인천 40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제주의 경우 당시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2만7천명이 보도연맹에 가입돼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확인됐다. 제주에서 예비검속된 700명은 그 중 간부였던 것으로 보고됐다.

이밖에 충남 서산에서는 보도연맹원 400명이 트럭 6대에 실려 대전으로 가는 모습이 미군 군무원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군대 있을때 무장하고 행군할때면, 논밭에서 일하시던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님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우리 안보이는 먼곳으로 도망을 가셨다.

그날 밤 숙영지에서 새벽에 보초설때, 고참이 우리 11사단 화랑부대가 거창 양민학살도 했고, 보도연맹원들도 학살하고, 게다가 80년대때에는 삼청교육도 한 악명높은 부대란걸 이야기 해줬다.

우리 가계도 알고 보면, 6.25로 많은 굴곡이 있었지. 전쟁이 끝나고 50여년이 흘렀지만, 우리 아버지도 평생을 그 전쟁을 짊어지고 사셨고… 다시는 한반도에서, 아니 이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될텐데…..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한맺힌 절규와 외침이 내가 딛고 있는 땅속에 묻혀있음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기 이를데 없다. 사진속의 불귀의 객이 된 분들과 또 이렇게 죽어갔을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사족) 사진속에 중절모를 쓴 미군장교가 학살을 지휘하거나 혹은 감독하고 있다. 이승만정부와 미국은 보도연맹과 4.3 항쟁의 학살을 통해서, 참 많은 민중을 학살했네. 건국의 아버지란 미국 똘만이 새끼랑 영원한 우방이란 승냥이 새끼들이 말이지.

최근 미국이 기밀해제한 당시 양민학살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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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보도연맹 이야기

  1. 보도연맹이 우리편이었나요, 공산당 편이었나요. 공산당 편이었으면 6.25 발발후 곧 죽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6.25직후에 공산당 비난하다가 서울 함락되니까 바닥 빨갱이 노릇시작했다는데… 왜 그런 이야기는 안하고 자기들 필요한 이야기만 합니까. 공평해야죠.

  2. 보도연맹 그 분들은 가입은 단순하게 쌀을 준다는 공산당들의 말에 속아서 가입을 했는데 그 속인 조직 세력이 북괴이었다. 한사람, 한사람을 분석해보면 순박한 농민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이지만, 북괴가 점령 할시 그조직을 이용하여 병력 충원과 부역을 충분히 이끌어내어 남한 적화 통일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며, 그리 하지 않았다면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져 한반도는 완벽한 공산치하가 계속됐겠지 !!!
    우리 민족의 역사의 아픔이며 아킬레스건이다.
    일단 남북 통일 된 뒤에 그 분들에 대하여 역사적인 평가를 해 드려야하나 지금은 통일 이전이니 이슈화 되는게 시기상조 느낌이 드는군요 !!
    아무튼 애석한 마음은 금 할 수 없습니다.

  3. 핑백: 환수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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