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미국인 참수. 무장투쟁. 그리고 광주항쟁

“죽인다”는것은 다 똑같은 것이다. 그 행위가 어떻든 간에 죽인다는것은 모두 똑같은 행위이며 범죄행위이다. 그 행위를 치장하고 우회적으로 돌린다고 하더라도, 죽음은 다 같은것이며 죽이는것은 동일한 행위이다.

“처형”의 목적은 살아있는자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는것이며, 더 넓게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일종이다. 인터넷에 그 상황이 중계가 되던, 안되던.. 살해의지와 상황은 그런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실행된다. 특히 처형의식은 정치적 목적의 결정체다. 처형에는 광장이 필요하다. 인터넷은 그들에게는 광장이었다.

우리는 실체를 볼 필요가 있다. 상기한 파일의 가장 중요한 것은 살해자의 사진이 아닌 그들의 말이다. 그들의 의지와 의도가 더 중요하다.

팔루자에서 미국이 행한 학살은 임신부에 대한 저격에서 부터 병원응급차까지 다양했다. 이번의 처형은 국제법을 무시한 민간인 학살에서 크게는 미국의 더러운 전쟁에 대한 이라크 파르티잔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다. 살해된 죄없는 미국 민간인은 살해된 팔루자의 죄없는 민간인들의 죽음에 대한 정치적 항의 표현이다.

사족) 성명서는 영어로 작성하는게 더 나았을텐데, 왜 지렁이 글자를 꼭 써야하는지.. 이라크 국민들의 미제국주의 게릴라 항전에 승리가 있기를 … 미국인 인질 희생자의 명복을..

사족2) 광주항쟁의 궁국적 정체성은, 결국 동아시아 반제국주의 무장투쟁 전선의 구축이 아닐까? 그날 무장한 시민군은 전두환이 아니라, 그들을 인정하고 조종한 미국 대사관과 미국 관계시설을 점거하고 투쟁했어야 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신생독립국에 대한 정책은 독재정권의 지원인데, 그런 매커니즘에 폭력적인 방식을 통한 저항은 80년 대한민국이 처음이었고, 체계적이었다는 데서, 광주항쟁의 학술적 의의는 크다. 결국 그 항쟁의 최종 결론은 민중연대 투쟁이다. 탄압받는자들의 연대. 그리고 그것은 광주를 벗어난 모든 지구촌 피해자들의 동일 코드다.

우리나라 진보 운동세력은 너무 자국적 시각에만 편중되어있는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된다. 동아시아. 나아가서는 남미 반제국주의 세력들과 연합한 반 제국주의 반 세계화 무장투쟁 전선의 구축이 결국. 미국을 쓰러뜨리는 가장 최선의 길이 아닐까 싶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이유로 인해 미제에 의해 똑같이 살육당하고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사족3) 촘스키는 국가의 제한은 교묘한것이라고 했다. 결국 국가가 제시한 가이드 라인안에서 토의하고 푸념하고 바뀌어 나간다. 역사상 제국주의의 압제를 벗어난 나라중, 무장투쟁을 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현재의 이라크에서 베트남까지. 무장투쟁만이 궁극적 제국주의 압제 해방의 도구이다. 광주항쟁은 짧은 기간안에 일어난 교과서적 사건이다.

역사는 기억투쟁이다. 기억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는 역사는 잊혀진다.미국인 참수를 보고 우리는 광주무장항쟁을 떠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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