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영화속의 문화코드 읽기

누가 뭐래도 문화(文化)는 시대의 반영(反映)이다. 그런데 요즘 때아닌 좀비영화 시리즈로 난리다. 이런 좀비 영화들이 한창 부흥을 했던 1960년대에서 1970년대는 다름아닌 미국의 베트남전이 그 시대의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산업사회로의 발달로 인한 대량해고. 혹은 큰 병이 창궐할때도 이런 류의 영화들이 간간히 나오기는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 발발할때이다.

물리면 오염되어 좀비로 바뀌어가는 좀비의 피는, 당시 번져가던 공산주의나 이념. 혹은 사상전에 대한 대중의 잠재적 공포와 맞물려 대중의 심리(心理)속에 어려있는 공포에 호소하여, 큰 성공을 거둘수 있었다. 또한 총을 든 주인공들의 살육은, 그렇게 오염된 매체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살육을 정당화(正當化)하게 된다. 그렇다. 좀비 무비의 핵심은 대량살상의 정당화이다. 총을 사용하던 칼을 쓰던 아니면 차로 뭉개버리던, 부모던 형제건, 사랑하는 연인이건. 오염되었을때는 가차없이 죽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속의 살인은 정당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영웅(英雄)으로 묘사된다.

2003년 말기부터 나오기 시작한 좀비류 무비의 재탕인 <바이오헤저드>시리즈를 필두로 <언데드>류의 다양한 좀비 무비들이 상영되고 있으며, 이때와 동시에 미국의 911 이후의 이라크전이 시작되는 때와 거의 일치한다. 왜 오래된 고전들을 리메이크 하면서 까지, 미국대중들이 찾는 좀비속의 코드는 과연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오래전에는 마치 지도속을 빨간색으로 물들여가던 공산주의 세력에서 지금은 자신들이 타국에서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는 몽환제로, 장르는 바뀌지 않았지만 코드는 바뀌어 주사되고 있는 것이다.

폭력적인 시대. 대량살육의 분위기에 문화는 그 시대의 반영으로 좀비류의 영화를 잉태하게 되는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歸結)이겠지.

그런데 다시 요즘 B급 하류 문화의 전유물이었던, 이 좀비무비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단지 다른점이라면 큰 배급망을 가진 거대 영화사에서 만들어내는 블럭버스터형 좀비무비란 사실.

어쩌면 이런 미국의 좀비류 영화가, 이미 오염된 생명체들에 대한 살육들을 통해, 어쩌면 요즘 벌어지고 있는 타국에 대한 미국의 범죄 행동들에 대한 (잠재적 정당성 부여를 위한)미국의 문화적 면죄부 욕구는 아닐까?

미국을 공격한, 테러라는 바이러스로 오염된 이라크인들을 죽이고 쳐들어 가고 강간하고 고문하는 지금 미국인들의 심리속에는 아마도 그 상대방이 바로 영화속의 오염된 좀비들이기를 바라는 심리적 자위는 아닐른지 싶어 웬지 씁쓸한 기분이.

” 자아. 쏘고 폭격하고 고문하고 강간해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 이라크 놈들은 테러라는 바이러스로 오염된 좀비들이거든.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아니란 말이야. 마음것 조롱하면서 죽여라. 죽여란 말이야. 우린 정당하단 말이야”

– 최신작인 새벽의 저주라는 좀비물에서는 무기력한 좀비들을 옥상에 고립된 주인공들이 장난삼아 쏴죽이는 장면을 볼수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이전의 여러 장르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이런 조롱의 행위들이 이라크 포로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현실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사족> 그나저나 난 다시 냉전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냉전이 시작되면 내가 좋아하는 UFO나 기타 외계인류 영화가 창궐(?)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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