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예수. 윤 상원

“We Will Fight Until The Last Man. 우리가 오늘 진다고 해도 영원히 패배하진 않을 것입니다.” 항쟁자의 눈빛은 차분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 80년 5월 26일. 윤상원의 마지막 기자회견중 / 80년 5월 28일 브레들리 마틴기자가 송고한 <볼티모어선> 1면 머리기사 제목

“아침 6시 반께 도청회의실에 옷과 머리가 불에 그을리고 손을 오그린채 등에 총상을 입고 오른쪽 옆구리에서 창자가 터져 나온 시신이 있었다. 겉옷을 벗겨보니 [10번 대변인] 이란 명찰이 나왔고 그제야 기자는 26일 도청에서 자기가 몸을 피신하라고 일렀던 그 사람임을 확인했다.

기자는 번뜻 26일 “내일 계엄군이 쳐들어와도 싸우다 죽겠으며 우리의 죽음은 항쟁의 참뜻을 후세 역사화의 거름이 될것” 이라는 그와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으며, 27일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기름을 끼얹고 분신도중 계엄군의 총을 맞았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 27일 아침 그의 시신을 최초로 목격한 기자의 증언

윤상원은 광주항쟁이 이후 한국민중들의 투쟁의 구심점이 될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투쟁의 구심점에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는 기꺼이 자신을 죽였다.

2000여년전 예루살렘의 보잘것 없는 한 노동자 청년은 핍박받는 자신의 동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죽였다. 이후 그의 <사랑의 복음>은 세상을 바꾸었다.

그리고 1980년, 아시아의 신생독립국가 광주의 보잘것 없는 한 노동자 청년은, 핍박받는 자신의 동족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죽였다. 이후 그의 <민주주의의 복음>은 동아시아 민주주의 투쟁의 정신적 토대로 학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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