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약한 나라 민중을 죽이고 괴롭힌 미군 범죄사

김민웅/ 재미언론인 · 목사

로린스 상원의원: 한 마을을 그런 식으로 파괴하고,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죽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휴즈 소장: 이 파괴 작전은 어디까지나 응징의 수단이다. 여자와 어린아이는 남자들의 가족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응징만큼, 우리에게 저항하는 남자들을 처벌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로린스 상원의원: 그렇게 하는 것이 문명화된 세계의 전쟁방식에 속하는가?

휴즈 소장: 이자들은 문명화된 존재들이 아니다.

주검더미로 뒤덮인 필리핀의 산야

1901년, 미 상원에서는 필리핀 민중들에 대한 미군의 무차별 학살 사건과 관련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 병사들 중 일부가 집으로 보낸 편지를 통해 폭로되기 시작한 필리핀 민중 살육작전의 진상을 파헤치는 청문회였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슈만위원회와 태프트위원회가 구성되긴 했지만 이는 매킨리 정권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여론의 비난을 모면하려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이미 대세는 남북전쟁 종전 이후 강화된 독점자본의 정치적 패권에 장악됐고, 필리핀은 쿠바와 함께 미국의 식민지 침탈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청문회 과정에서, 루손섬 하나만을 따져도 주민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60만명 이상이 희생된 사실이 드러났다. 미 점령당국에 저항하는 자는 그 저항의 정도에 따라 사형 내지는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졌고, 이들에 대한 동조세력은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았다. 포로수용소는 연일 끌려온 사람들로 넘쳐났고, 이들에 대한 물고문, 밧줄고문, 밥 안 주기, 강간 살해 등은 예사였다. 수감자들은 평균 1천명에 100명꼴로 죽어나갔다.

필리핀의 산야는 그야말로 주검더미로 덮인 지옥이 됐다. 당시의 현장을 찍은 사진은 2차대전 때 나치스의 유대인 대학살을 떠올리게 하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주검 앞에서 마치 전리품을 획득한 듯 의기양양하게 미소짓는 미군들의 모습은, 1세기가 지난 뒤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똑같이 재현됐다. 제국의 야수적 본질은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했던 것이다.

[#M_ more.. | less.. | 이들 필리핀 민중은 ‘전쟁포로’가 아니라, 즉결처분해도 아무 상관없는 흉악범 또는 인간 이하의 동물로 취급받았다. 쿠바의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 끌려온 아프가니스탄 포로들이,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에 의해 제네바 협정에 따른 ‘전쟁포로’가 아닌 ‘적대적 전투원’(enemy combatants)으로 규정돼 인권유린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과 같았다.

이 시기 필리핀 침략전쟁의 최고 지휘관은 2차대전 시기와 종전 뒤 아시아 지역의 독존적 맹주와 같은 위치에 있던 더글러스 맥아더의 아버지 아서 맥아더였다. 그는 필리핀 민중들의 저항이 조직된 정규군 형태가 아니라 주민들 속에 근거지를 가진 게릴라전 양상을 띠고 있다면서, 바로 그러한 근거지가 되고 있는 마을과 마을 주민들에 대한 전면적 파괴와 토벌이 작전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전과 베트남 전쟁에서 진면목을 여실히 보였던 ‘초토화 작전’의 원형이었다. 필리핀 민중들에 대한 대학살은 이러한 작전개념 아래 필연적 현실이었다.

1898년 노쇠한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로 있던 필리핀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미국의 필리핀 침략전쟁은, 처음에는 미국을 해방자로 인식했다가 그 제국주의적 야망을 곧바로 알아차린 필리핀 민중들의 저항이 일면서 잔혹한 방식으로 이들을 몰살시키는 사태로 번져갔다. 필리핀은 그렇게 해서 미국의 식민지가 돼갔다.

필리핀에서 이와 같은 살육전을 주도한 세력들이, 1830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공포한 ‘인디언 이전 법안’(Indian Removal Act)에 따라 서부의 아메리카 토착민들을 대거 축출하고 무차별 학살하는 데 선봉에 섰던 전력이 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열등한 종족’에 대한 이른바 인종청소는 당연하다는 의식의 역사적 뿌리를 우리는 여기에서 보게 된다.

1915년, 미국은 해병대 병력을 아이티에 상륙시켰다. 그리고 아이티 국립은행에 예치돼 있던 아이티 정부 재산 50만달러를 강탈해 뉴욕 내셔널시티뱅크로 이전해버렸다. 미국은 아이티 정부가 세관을 아이티 정부 관할하에 둔 조처를 즉각 철회하고 미국에 관할권을 넘기라고 협박했다.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50만달러는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백주의 강도떼였다. 아이티 정부는 주권유린을 내세워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런 사태에 분노한 아이티 민중들의 시위에 미 해병대는 무차별 사격으로 응수해 2천여명이 사살당했다.

아이티 대살육, 윌슨의 두 얼굴

아이티 침공 명령을 내린 미국 대통령은 1919년 민족자결 운운으로 식민지 해방을 외친 것처럼 인식된 우드로 윌슨이었다. 미국의 아이티 정책을 비판한 아이티 언론들은 탄압받았고, 언론인들은 체포됐다. 1791년 카리브 해안의 식민지 가운데 최초의 노예해방 투쟁을 시작해, 1803년 프랑스 혁명의 모델에 따라 민중적 주권 국가를 건설했던 아이티의 운명은 이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1911년과 1927년에 발생한 니카라과 침공 역시 그 본질은 동일하며, 마찬가지로 니카라과 민중들의 피를 요구했다. 카리브 해안의 국가들과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우루과이 출신의 진보적 언론인 에두아르도 갈레노가 갈파했듯이, 그렇게 ‘절개된 정맥’(open vein)처럼 되어 아메리카 제국에게 피를 빨리고 약탈당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국지적 차원에 머물러 있던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이 더 세계적인 규모로 확장한 것은 2차대전 이후이다. 영국을 필두로 한 옛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 영역을 자신의 식민지로 강제 편입하는 전략이 추진됐고, 이 과정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공작 내지는 노골적 군사개입에 의한 학살과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그리스, 이란, 과테말라, 레바논, 라오스, 콩고, 쿠바 등에서는 대규모 유혈사태도 발생했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미국의 지원 아래 진행된 수카르노 제거 쿠데타는 50만∼100만명에 이르는 인도네시아 민중들과 좌파 인사들에 대한 살육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CIA는 수카르노 지지 세력으로 분류된 인물과, 공산주의자 5천명의 명단을 쿠데타 주도세력인 수하르토에게 넘겼고, 수하르토는 이들을 죽이거나 감금했다. 미국이 쿠데타 이후 자신들이 제공한 정보대로 ‘숙청’이 진행됐는지 일일이 검토까지 한 사실이 1990년 비로소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주권국가 침략이 사라지지 않는 한 …

수하르토 쿠데타를 배후 조종한 인물은 국무부 안에서 쿠데타 전문가로 불린 마셜 린이다. 그는 이승만 정권 교체에도 성공적으로 관여함으로써 국무부 내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던 터였다. 제3세계에 친미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민중의 희생도 불사하는 미국 제국주의의 면모가 지역을 초월해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03년 3월 이라크 침략이 시작되기 전, 미국은 이미 12년 동안 이라크에 극소형 핵무기에 해당하는 폭탄과 인체에 파편처럼 꽂혀서 내장을 파괴하는 포탄 등 국제적으로 사용 금지된 무기들을 투하하여 무수한 인명을 살상해왔다. 아프가니스탄 침략 과정에서는 단 8주 만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으로도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 3800여명을 살해했다. 미국의 진보적 정치학자 마이클 퍼렌티는 이러한 미국의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대외정책을 가리켜 ‘국가 살해’라고 부른다. 아메리카 제국의 군사주의는 이토록 무시무시한 죽음의 흉기인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의 인권유린과 가혹행위에 대한 세계적 비난과 미국 부시 정권의 궁지를 목격하고 있다. 주권국가에 대한 침략과 점령이야말로 이 모든 야만적 사태의 근원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 근본적 원인이 청산되지 않는 한, 이라크인들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해방의 미래는 없다.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4/05/0210030002004051205090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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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시 대통령때 있었던 파나마 침공에서는, 미 해병대가 도시 한가운데 있는 파나마 국방위원회를 공격하는데, 셀수 없이 많은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했고, 미군이 빠져나간 후에는 구덩이에서 미군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수갑을 뒤로 찬채로 총에 맞아 죽은 많은 사람들이 발견되었다.

뭐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제주도 4.3때는 또 어땠는지.. 이승만의 허락하에 시작된 빨갱이 사냥.. 미군정의 허락하에 미군 군사 고문관까지 파견해 이루어진 피비린내 나는 10여만의 민간인 학살은 또 어떤지.

오늘 뉴스에서 보니, 미국인 인질이 알카에다 요원들에게 목이 잘려 죽었네. 칼로 사람을 죽이는건 그래도 인간적이다. 버튼 하나 눌러서 수십. 수백명을 죽이는 방법보다는. 이 방법엔 책임자도 양심의 가책도 없거든.

팔루자에서 민간인들을 무작위로 쏴죽이는 미군들과 교도소에서 무작위로 잡아온 이라크인들을 고문하는 군인들이 디카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공개되었다면 어땠을까.

요즘 미국의 이라크전을 보고 있노라면, 인터넷과 미디어가 미국의 첨단 전쟁도구를 능가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더 알카에다의 지혜와 대안 미디어의 위력에 놀라게 된다.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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